남싱부터 간단하게 느낌만 정리.
쥬베르.... 실수도 좀 했고 평소보다 컨디션이 안 좋아보이긴 했지만 레벨 크리가 너무 심했던듯. -_-; 더구나 안방에서... 작년 프로그램 재탕인데 의상까지도 재탕이었던 게 심판들 점수를 박하게 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4위니까 다음 경기에 1위를 하면 그파에서 볼 수 있겠지. 힘내자~
아담 리폰. 트악도 못 뛰는 주니어 챔프가 나오다니, 이런 말세가 하면서 툴툴거렸던 게 어제 같은데 쇼트에선 깔끔하게 휙 뛰어주시고, 프리에서도 실수하긴 했지만 어쨌든 뛸 수는 있게 된 것 같다. 보이타노 은퇴 이후 구경하기 힘들었던 타노 러츠를, 그것도 발레처럼 두 손을 예쁘게 들고 깔끔하게 뛰어주는 즐거움을 선사해줘서 감사. 양손을 들고 뛰는 타노 러츠는 아담의 시그니처가 되지 않을까 싶다.
프리 프로그램은 솔직히 그다지 재미없었고 쇼트는 딱 이 나이 때에, 그리고 이 친구 같은 외모와 분위기에서 가능한 그런 프로그램이란 생각을 했다. 미국 남싱이 다들 빵빵하다 못해 터질 지경이라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올 시즌이 기대가 된다.
베르너.... ;ㅁ; 쇼트부터 4-3을 휙 뛰어주시고 여유만만한 트악에다 스텝이며 안무 등등 정말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었다. 쇼트 보면서 로리 여사 만쉐~만쉐~ 만만쉐~를 정말 아무 사심없이 외쳤다는... 그런데 그 의상은 좀 어떻게 안 될까? 조르바가 아니라 발란신이나 제롬 로빈스의 미국스런 발레 같잖아. -_-;
그래도 모처럼 정신줄 제대로 잡고 (사실 이 친구의 본 캐릭터 같은 안무를 로리 여사가 해준 덕분에 정신줄을 잡았을 수도 있지만) 1위로 경기를 끝내기에 불안 가운데 기대를 안고 프리를 기다렸더니 초반까지 함께 계셨던 점프 신과 정신줄은 중반을 넘어가면서 역시나 떠나 가셨다. 4-3 뛰고 트토 뛰고 (<- 이건 쿼드토 뛰려다 못 뛴 것 같음) 트악 뛸 때까지만 해도 오오!!! 오늘 드디어 내가 베르너의 프리 클린을 볼 수 있겠구나! 기대를 했더니만 역시나... 잘 뛰던 룹까지 더블로 뛰어대는 더블과 싱글, 레벨 1의 향연에 기술점을 최소 10점 이상 날려먹으면서 2위로 주저 앉았다. 올해도 여지없이 희망 고문을 주시는 애증의 사나이신데... 제발 클린 좀. 이왕이면 올림픽에서 꼭. 올 시즌 베르너의 대부 정도라면 올림픽 챔프가 되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제냐에 대한 애정이 줄은 건 아니지만... 제냐의 올 시즌 프로그램은 올림픽 챔프로서의 위상에 걸맞는 그런 아우라가 없음. 일단 에드빈 마톤부터 짤라야 그쪽은 뭔가 희망이 보이지 싶다.
1위는 아슬아슬하게 쇼트 2위였던 오다. 내가 베르너 사랑 모드긴 하지만 이 친구가 1위인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음. 복사기 놀이 하는 모로조프가 1년에 한개씩은 세계적인 안무가다운 걸작을 하나씩 뽑아내는데 2007년에는 다카하시였고 올해는 오다가 당첨된 것 같다.
쇼트는 잘 만든 프로그램이고 오다가 잘 소화하기는 했지만 그의 캐릭터와 별반 어울린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음악, 의상이나 오다의 외모와 부조화에 (쏘리. ^^;) 몰입되지 않고 자꾸 웃겼는데 프리 프로그램인 채플린 매들리는 정말 딱 오다를 위한 맞춤 옷이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수퍼 마리오 이후 별반 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특히 양아치 양복을 훔쳐입은 모범 중딩 같았던 작년의 악몽에서 벗어난 멋진 프로그램. 시즌 초반인데 이 정도를 보여주면 좀 더 익숙해진 시즌 후반이나 올림픽 때는 어떨지 정말 기대된다.
현재까지 오픈된 올해 여싱 프로그램은 나름대도 다들 노력은 했겠지만 올림픽 시즌다운 아우라를 느끼는 게 별로 없었는데 남싱들은 여는 것마다 대박이다. (제냐 빼고. ㅠ.ㅠ)
아이스 댄스는 돔니냐& 샤발린의 기권으로 김이 빠졌음. -_-;
커 남매는 올림픽 시즌이라고 변화를 꾀하기 보다는 그냥 자기들이 가장 잘 하는 걸 그대로 가져가기로 한 모양. 심판들이 좋아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즐겁다. 아직은 빈 부분이 많지만 잘 채워서 멋지게 해주길~
버츄 & 모이어. 돔니냐와 샤발린이 없으니 무주공산인 동네에서 당근 1위. 달달하고 보들보들하고 매끈매끈 미끄러지는 아이스댄스의 매력을 모처럼 잘 살린 프로그램. 둘의 캐릭터와도 잘 맞는 것 같다. 여전히 후덜덜한 리프트를 보여줌에도 그게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아 보이는 걸 보면 얘네들도 이제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른 것 같기도 하고. 꼼꼼히 보면 안무가 좀 비어 있긴 하지만 역시 시즌 후반에 채워지리라 믿음~
페어는 모두가 당연히 1위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부첸코 & 졸코비 조가 3위가 됐다는 게 충격이라면 충격인데... 알리나가 다리 부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부상에는 당할 장사가 없으니 잘 회복해서 다음 경기 때는 본래 기량을 보여주길~
듀브& 데이비슨은.... 뭐 그냥저냥. 본디부터 북미의 페어 스타일과 별로 궁합이 맞지 않던 것도 있고 특히 2002년 이후로 캐나다와 미국 페어들에게는 정이 똑 떨어진 사심도 더해져서 별반 매력을 못 느끼겠다. 약간 어부지리인 것도 있지만 어쨌든 2위 축하.
무호토바& 트란코프. 러시아 페어의 향기를 그럭저럭 간직한, 그래서 많이 기대를 하는 팀인데 매년 시즌 끝날 때마다 얘네 찢어졌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덜덜 떨게 했던 커플. 말아 먹고 나와서 살벌한 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때때로 링크 위에서도 쟤네들 연기 관두고 머리 끄뎅이 잡지 않을까 간혹 걱정이 될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애들인데 그래도 헤어지지 않고 견딘 보람이 있었는지 주니어 월드 이후 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을 했다~ ^0^
작년에 쇼트는 너무 좋았는데 프리는 단 한번도 클린이 없었던 팀이라 올해도 어쩌려나 했는데 드디어 프리 클린을 하기도 했다는 것도 기쁨. 속내야 어떻든 간에 러브 스토리를 테마 음악으로 해서 요정 같은 의상에 아주 달달한 모습을 보여줬음. 가와구치&스미로프 팬들이 더 많긴 하지만 난 예쁜 애들 편애 모드라서 이쪽을 더. 제발 싸우지 말고 이 페이스대로 좀 밀고 나가자~
여자 싱글은 이상할 정도로 걱정이 되지 않아서 남의 나라 선수들 잔치를 보는 것처럼 아주 편안한 감상. 연아양의 시니어 진출 이후 이렇게 편안하게 경기를 보는 것도 처음인 것 같다. ^^;
키이라 코르피는... 미모의 20%만큼만 점프를 좀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신은 공평하다를 느낌. 만약 키이라의 미모에 유카리 정도의 실력만 더해졌으면 장난 아니었을 듯. 은퇴하고 의사 될 거라는데 이런 엄친딸을 낳은 부모님의 누굴지. 복도 많지. 환자도 행복할 것 같다. ^^
캐롤라인 장은 이제 한계에 온 느낌. 캐롤라인 장이 확 떠오를 때 미국 피겨를 즐겨보는 어느 분인가가 당시 아무도 이름도 모르던 나가수를 얘기하면서 장보다는 나가수가 더 위협적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아직 나가수의 경기를 보진 못해서 그쪽은 어느 정도일지 모르겠지만 지금 캐롤라인 장의 경기만을 놓고 보자면 그 말이 맞을 것 같다.
알렉스 길레스. 작년 미국 주니어 챔프라는데 쇼트는 최고의 연기를 했고 프리는 시니어 데뷔치고는 나쁘지 않은 그럭저럭 경기.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도 아니고 쬐끔은 특이해 보이기는 한데 좀 더 지켜봐야겠다.
엘렌 게데바니쉬빌리. 오랜 슬럼프를 끝내고 작년 월드부터 확실한 부활의 조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쇼트도 괜찮았고 (한 것보다 점수가 좀 짰던 느낌을 받았음) 프리도 카르멘이라기에 좀 뜨아~했는데 편곡도 나름 독특하게 잘 한 것 같다. 프로그램 수행도 잘 하고 있고. 식상한 카르멘이지만 의상도 안무도 음악도 다 매력이 있었다. 비슷한 약소국이라 동병상련의 정이 강한데... 러시아 아가씨들보다 잘 해서 국위선양을 잘 하길~
카롤리나 코스트너. 이제는 새가슴을 극복하는가 싶었는데 작년 월드부터 또 총체적인 난국. 음악은 나쁘지 않았고 안무는 로리 여사가 오랜 고객을 위해 아주 신경 쓴 티가 팍팍팍. 의상은 카발리 선생에게 한번 더 재고를 부탁하고 싶긴 하지만 이건 취향이니 그럴 수도 있고. 본인이 자기 마인드 컨트롤을 해서 컨시를 높이기 전에는 해결 방법이 없으니 뭐. 가진 능력은 있는 선수니 알아서 잘 하겠지.
유카리 나가노. 처음 4자 다리 점프를 봤을 때는 충격과 공포였는데 역시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건지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지만 저 불새 의상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질 것 같지 않다. 베르너의 쇼트 의상과 함께 유카리의 불새 의상이 든 가방이 비행기 이동 중에 어디론가 사라져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기도하고 싶음. 위쪽은 그대로 두더라도 아래를 저 시커먼 타이즈인지 바지가 아니라 불꽃이 휘날리는 것 같은 치마로 하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은데 백업용 의상이 없을까? 두번쨰 봐도 충격과 공포이다보니 쇼트 오페라의 유령 때 입은 그 희고 검은 크리넥스 휴지가 나풀거리는 의상이 괜찮아 보일 정도였다. ㅎㅎ;
재팬 오픈 때 어깨를 다쳤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악바리답게 깔끔한 연기를 보여줬음. 프로그램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 같다.
아사다 마오. -_-; 쇼트 의상을 봤을 때 뭔가가 자꾸 떠오르면서도 정확히 뭔지 몰랐는데 어느 사이트에선가 '슈팅 스타'라는 글을 보면서 맞아!를 해버렸다. 내 취향이 올드한지 타라소바 여사가 스케치해서 줬다는 그 쇼트 의상, 옷 자체만 놓고 보면 예쁘고 샤방하니 프리보다는 마오에게 어울리긴 한다. 단 그 너풀너풀거리는 핑크색 꽃들만 좀 해결을 한다면이라는 전제 하에. 알록달록이라고 해야하나 어수선하다고 해야하나... 형언할 수 없음. 그리고 음악과 가장 조화되지 않는 역대 최고의 의상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걸 택할 것 같다.
프리 프로그램은... 작년에 가면 무도회는 음악에 쫓겨다닌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자꾸 보니 약간은 매력도 있고 뭘 표현하려고 하는 건지 이해도 될 것 같았는데 이번 '종'은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작년엔 쫓겨다녔다면 이번엔 아예 짓눌린다고 해야하나? 전 같으면 트악 말아먹으면 완전 정신줄 놓고 뒷부분은 다 설렁설렁인데 쇼트 때 트악을 날려 먹어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걸 보면서 그래도 마오가 많이 컸다는 걸 느끼게 됨.
내가 마오라면, 아니 하다 못해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가진 측근이라면 지금 당장 타라소바 여사 날려버리고 로리 니콜한테 프로그램 새로 받고 라파엘인든, 얼굴마담 코치든 새로 찾아서 간다. 마오 정도의 재능에 악바리 정신 + 막강한 지원이라면 그런 모험이 충분히 가능할 텐데. 이대로는 올림픽 때 연아와 로셰트, 안도 미키가 동시에 코스트너 정도로 죽을 쑤면서 날려먹지 않는 한 금메달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김연아. 007은 말할 것도 없고. 프리 프로그램 거쉰의 피협은... 발레로 치자면 컨템퍼러리 댄스의 개막을 알리는 역사적인 현장을 지킨 느낌. 다른 선수들이 클래식을 할 때 드라마틱으로 나가더니 이제는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하는 것 같다. 굳이 안무가를 찾아서 대자면 발란신이나 이리 킬리안, 혹은 스포얼리? 내 취향은 노이마이어나 에이프만 류의 드라마틱 발레지만 내 취향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걸작의 향기를 무시할 수는 없지.
시즌 초반인데 이 정도이니 제대로 클린을 한다면 두고두고 피겨 역사에 새로운 트랜드를 연 작품으로 남지 싶다. 자기가 원하는 걸 그대로 구현해주는 뮤즈를 곁에 두고 예술가적인 상상을 다 구현해보는 윌슨이 참 복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둘의 파트너쉽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만들어낸 것들 외에 또 만들어낼 것들이 기대된다.
일개 팬인 나도 마음을 완전히 비울 수가 없는데 당사자들에게 그걸 요구할 수는 없지만... 되도록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올림픽까지 가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올 시즌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