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끝내고 나면 완전히 쭉~ 뻗어서 한 일주일 정도 쉬어야지 했는데 4/4분기라는 걸 증명하듯 내 밥줄인 홍보 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다행. ㅠ.ㅠ)
들어온 일 중에 하나가 지난 주에 친일파들은 어떤 과정을 밟아가면서 골수가 되었는지, 그 첫걸음에 대해 진지하게 자기 성찰을 할 기회를 줬다. 자화자찬에 세금을 쏟아붓기로 작정을 한 이메가 일당들이 정부 정책에 대한 무슨 거창~한 전시회를 기획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죄없는 애들이랑 학생들이 동원되서 출석부에 도장 찍고 오겠지) 그 전체 테마 카피와 전시 컨텐츠를 써달라고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고,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고픈 ㅈ씨에게 받았다.
그냥 일로만 만난 아는 감독 정도라면 바쁘다고 뻥을 치거나, 친한 감독이라면 아직 그 정도로 배고프지는 않네요~ 라고 살살 웃으면서 엎었겠지만 이쪽은 이도저도 안 되는 개인적인 친분으로 맺어진 사이. 그래도 이 바닥에서 오래 구른 순발력을 순간적으로 발휘해서 가격 신공을 펼쳤다. 보통은 네고를 치기 위해서 부르는 원고료를 이게 미니멈이고 마지노선이라고 뻥을 쳤다. 내부적으로 상의해보고 연락 준다고 하던데 당연히 연락이 없지. 내 평생에 참으로 드물게 일 하자고 연락이 올까봐 며칠동안 덜덜 떨었다. ㅎㅎ;
그런데 만약 내가 부른 가격으로 하자고 연락이 왔으면 난 어떻게 했을까? 신용 + 친분 때문에 아마도 -스트래스로 인한 악성 변X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괴로운 인간들을 띄워준다는 사실 때문에 소화불량에 시달리면서도 했을 거다.
그 원고료를 용산 참사민 돕기에 보탠다거나, 등등 좋은 일에 쓴다고 해도 내가 나쁜 짓을 찬앙햐는데 한 몫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다. 뭐든 처음이 제일 어렵지, 한번 한 거 두번 못 하냐 이러면서 반복이 되다보면 결국 무덤덤해지고 걔들에게 빌붙어서 돈 받아먹은 죄 때문에 씹지도 못했겠지. 아마 매국노니 친일파라고 낙인 찍힌 사람들 역시 비슷한 과정을 밟아나갔을 것이다.
그나마 아직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내가 벌어서 늙은 부친과 만날 병원에 돈 갖다 바치는 개를 건사하고 있었다면 과연 단칼에 못 한다는 게 가능했을까? 치사함의 극을 달리는 이번 정권의 최대 무기가 "내 말 안 들으면 네 밥줄을 끊어놓겠다!" 인데 내가 하늘을 우러러 아직 큰 부끄럼 없이 이메가 일당 욕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부친에게 다시 한번 감사.
더불어 40년 가까이 지조를 지켜 내신 독립지사들에게 진심으로 감동이다. 그리고 주류에 편입될 수 있는 요건을 다 갖췄음에도 온갖 안락과 권세가 보장되는 주류의 유혹에 휩쓸리지 않고 버텨낸 故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존경이라는 감정이 솟는다. 자신보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굽히고 싶지 않았을까? 어떻게 그 욕구를 떨쳐낼 수 있었을지. 감탄.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먹여살려주고 있는 딸이 덥석 받아 문 건은 영남보수우파인 부친이 알면 머리 싸매고 누우실 5.18 30주년에 관한 내용. ㅎㅎ; 이번 정권 들어서 자주 고민하던, 이게 매국노로 가는 첫걸음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는, 정말 깔끔한 일이다.
황석영 작가가 그 똘끼충만으로 욕은 욕대로 먹고 망신을 왕창 당하지 않았으면 오래된 정원을 이용해서 멋지게 만들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5.18에 황석영이 얽히는 기획을 넣었다가는 짱똘을 맞을듯. 주제는 마음에 드는데 머리가 돌지 않는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