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n Watson (지은이) | 김성곤 (옮긴이) | 고려의학 | 2009.10.?~28
만날 비리비리하는 저놈의 개XX 때문에 본의 아니게 동종요법, 자연요법, 허브 요법 등의 세계로 입문을 하게 되다보니 만나게 된 책. 영어가 아니라 우리 말로 번역된 동종요법 책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빛의 속도로 주문을 했다.
그런데... '가이드'라고 제목에서 풍기는 뭔가 친절해 보이는 모양새와 달리 이건 아마도 전공자들을 위한 책이지 싶다. 정말 꼭 번역을 해줬어야 하는 주요 용어들은 물론이고, 국내에 번역된 다른 동종요법 서적들에서 번역해놓은 단어들 마저도 그냥 영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70년대에 출판된, 부모님이 보시던 책들에서 종종 보던 국한문혼용체가 21세기에는 국영문혼용체로 변화한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내가 이 책을 살 때 기대했던 것은 동종요법적인 치료에 주의점이나 기본적인 가이드, 그리고 조금 더 친절하자면 증상별로 어떤 처방을 해야하는지 잘 정리된 리스트였다. 그러나 뜨문뜨문 아는 이름들 몇명과 그래도 그동안 몇권 읽었다고 낯설지만은 않은 동종약이나 처방 관련 용어들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내게는 뜬구름 잡는 얘기들의 연속.
동종요법의 역사에서 쓰여왔던 접근법이나 처방법, 그리고 저자가 실제 임상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정리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개념적이다. 때문에 동종요법에 대해서 기본적인 것 이상의 공부와 이해가 없는 아마추어에게 이 책은 거의 쓸모가 없다. ㅠ.ㅠ
매 문장마다 모르는 단어가 기본 2-3개인 원서 좀 읽지 않고 편히 가보려고 했는데 헛돈을 썼음. 관련 원서를 몇권 읽은 다음에 다시 이 책을 보면 그때는 가치가 새롭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아쉬움이 가득.
정보적인 측면과 상관없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아이러니라는 감정. 이 책에 나온 치료법들은 동화나 소설 속에서 등장하던 늙고 경험 많은 동네 할머니 류의 치료사들, 혹은 미개지로 간 서구인들이 만난 원주민 무당 같은 돌팔이 의사들의 어설픈 치료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만났던 것들이 많다. 근대를 넘어 현대로 오는 과정에서 미개한 것, 절대적으로 타파되어야 하는 것으로 취급되던 부분들이 21세기에 다시 재조명 받고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그러나 동종 요법에서 주장하는 그 근거와 효능을 100% 받아들이고 따르기는 내게는 좀 무리이다. 현대 의학의 혜택을 받고 그 안에서 성장한 내 한계일 것이다. 진리라는 건 꼭 어느 한곳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중심을 잡고 적당한 선에서 취합을 하는 것이 자기 선택권을 가진 내 권리. 아마도 자가 관리가 가능한 단계에서는 이쪽에 기대더라도 위기 상황이 되면 뽀삐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가듯 나도 병원으로 달려갈 거다. 그리고 양방에서 손을 들면 그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쪽으로 달려올 듯.
서구의 경우는 현대 의학과 동종요법이 결합되어 치료를 하려는 시도가 많아지는 것 같은데 우리는 한방과 양방이 틈만 나면 싸우고 있다는 사실도 아쉽다. 한방이나 동종요법이나, 양방의 입장에서 보면 뜬구름 잡는 소리들이 많긴 하지만 이치를 따져보면 나름대로 맞는 것도 많은데... 아무래도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생각을 버리기 힘든 거겠지,
내가 5년만 더 어리거나 대학원 다닐 때 정도로 영어가 됐다면 동종요법을 배우러 영국이나 미국으로 떠났을 지도 모르겠다. ^^ 어렵지만 재미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