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 | 아트북스 | 2009.11.?-29
취향이 비슷한 듯 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사람과 책장을 공유한다는 건 독서의 폭을 넓히는데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라면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아마도 사지 않았을 책인데 언제 샀는지도 모를 동생의 컬렉션. 갖고 다니기 크게 부담이 없는 사이즈라서 외출할 때 선택했는데 나중에는 집에서 다 읽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수없이 등장한 매력적인 대상인 생 라자르 역의 그림과 그 건축에 얽힌 얘기들을 시작된 책은 영국의 세계 박람회 장소였던 수정궁과 화재가 났을 때 터너가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런던 시청사 등 근대에 존재했던 건축물들과 건축가들, 그 건축물을 화폭에 남긴 화가들의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놓는다.
내가 파리에서 -아니, 온 유럽을 통떨어- 가장 사랑해 마지 않는 장소인 가르니에 극장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화려한 무대를 펼치는 그저 배경 공간으로 생각했던 가르니에 극장이 어떤 과정으로 거쳐 건축되고 완성이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유제니 황후와 건축 위원회 의장이 각각 미는 설계의 알력 다툼의 결과, 서로를 만족시키는 절충안으로 선택된 제 3의 설계도가 가르니에의 설계였다는 내막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그런 다툼이 없었다면 가르니에 극장 자리에는 어떤 건축물이 서있을까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름대로 안목이 있는 두 사람이었으니 그들이 민 설계도 역시 꽤나 수준이 있고 볼만했을 것도 같은데. 결과물만 남는 역사라는 건 재미있기도 하지만 때때로 많은 의문을 남기는 것 같다.
건축과 미술의 결합이라면 빠질 수 없는 게 19세기말 빈 분리파와 공방, 클림트일텐데 이 책에도 어김없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올 봄에 한국에서 클림트 전이 있을 때 베토벤 프리즈의 일부가 전시되었고 그 공간을 보면서 2년 전 빈에 갔을 때 체제시온관 등 클림트의 흔적을 좀 더 자세하게 만나지 않고 벨베데레와 레오폴드만 훑고 들어온 걸 땅을 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아쉬움과 갈증이 더 커지는 걸 느낀다. 언젠가 다시 빈에 가면 그때는 오페라와 클림트에 촛점을 맞춰서 아주 철저하게 즐기고 와야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한다.
에펠탑이 세워지던 당시의 들끓던 파리의 소동과 반대야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니 좀 더 세세하게 재확인하는 정도였고, 자유의 여신상의 모델이 들라크루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었다는 뒷 얘기엥는 또 오호! 감탄사를 한번 터뜨려줬고, 마침 딱 맞게 등장한 브루클린 브리지에 대한 얘기와 사진들은 인천대교 영상관 대본을 쓸 때 큰 도움이 되었으니 이 책은 나와 궁합이 아주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동생에게 혹시 1권이 없나 물어봤더니 1권은 구입하지 않았다고 함. 다음 달 초에 책 구입할 때 이 책 1권도 구매 리스트에 올려놔야겠다. 세상은 넓고 진짜 읽을 책은 많군. 그리고 번역이 아니라 국내 저자가 쓴 읽을만한 책이 많아진다는 것도 개인적으로 참 고맙고 기쁘다. 내가 예술이나 인문 서적을 처음 읽기 시작하던 고딩 시절, 국내 저자가 쓴 책과 번역서와의 엄청난 수준 차이를 발견하고 한동안 국내 저자의 이름이 오르면 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별다른 고민없이 선택을 하게 된다. 인문학의 위기니 하는데, 동정해 마지 않는 다음 세대는 몰라도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동안에는 충분히 향유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