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휘트포드 | 이대일 | 시공사 | 2009.12.3-5
눈만 뜨면 대형 사고를 치는 정권이라 벌써 잊혀진 사건이 되어 버린, 한예종 사태로 난리가 났을 때 자주 등장했던 단어 중 하나가 '바우하우스'와 '나치'였다. 이전에도 이름은 들은 적이 있지만 도대체 이게 뭔지 궁금했는데 마침 집에 동생이 사놓은 책이 있어서 계속 노리고 있다가 읽기 시작했다.
한예종 사태와 연관되어 바우하우스라는 이름이 오르내릴 때 내가 가졌던 인상이랄까, 선입견은 뭔가 굉장히 혁신적인 예술 사조를 일으키고 시도한 미술 학교인 모양이다. 나치의 핍박을 받아 폐쇄됐다는 걸 보면 히틀러의 나치 제국과 한국의 현 정권이 이를 가는 그 소위 '빨갱이'들이 바우하우스에 많았나 보다 정도였다.
전체를 크게 뭉뚱그려볼 때 일부는 맞는 직관이었다. 마지막 교장이자 바우하우스의 종말을 지킨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우파였지만 바우하우스를 개교한 건축가이자 이론가인 그리피우스는 사회주의자였고 그의 뒤를 이은 마이어는 진짜 골수 빨갱이(^^)였고 우파 학생들에 비해 좌파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건 정치성향의 차별이나 교사들 때문이 아니라 바우하우스라는 학교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리피우스는 예술과 공예의 결합을 꿈꿨다. 다수 대중들에게 유리된 고고한 회화 같은 장식품이 아니라 공예나 건축의 형태로 융합되고 실생활에 적용되는 예술. 후반기로 가면서 퇴색되긴 했지만 바우하우스의 학생들은 마이스터로 불린 여러 분야 교수들의 수업과 공방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도제 형식으로 기술과 예술성을 습득하는 그런 이상을 가졌다.
공예나 건축이 아니라 순수 예술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비판을 샀고, 또 이런 새로운 형식의, 장르를 오가는 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 역시 반발을 했다. 바이마르에서 데사우로 학교를 옮기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정착되던 이런 바우하우스의 지향이 우파들에게 엄청난 비판의 대상이 된건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좌파들에게도 부르조아에게 아부하는 예술이니 하는 형태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예종과 바우하우스를 엮어서 얘기하던 사람들은 나치로 대표되던 우파를 가장한 파시스트 깡패들의 공격으로 결국 문을 닫게 되는 바우하우스의 운명과 역시 비슷한 시련에 봉착한 한예종을 놓고 비교를 했던 것 같은데, 난 이 책에서 비로소 알게된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시기에서 더한, 다가올 역사일지도 모를 유사성을 느꼈다.
3대 교장인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시대로 가면 바우하우스의 특징이었던, 학생들이 각 공방과 수업을 오가며 배울 수 있는 자유 - 한예종에서는 통섭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시도된- 가 사라진다.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클래스 혹은 공방에 소속되어 다른 영역을 넘볼 수가 없게 된다. 이전 과정이라면 가능했던, 직조 공방에 소속되지 않은 학생이 재미삼아 만든 직조작품이 그 전공자보다도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그런 자유로움 가운데 나올 수 있는 예술성의 발산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고, 바우하우스는 일종의 공방 내지 현대적인 의미에서 전공이 엄격하게 구분된 디자인 학교화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1933년 나치가 집권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진다.
한예종이라는 이름이 단시간 안에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바우하우스라는 존재를 보면서, 그들의 추구했지만 실패한 이상을 아쉬워하는 그런 감정을 한예종을 보면서 느끼고 싶지는 않다.
역사의 또다른 아이러니라면 나치가 바우하우스를 닫아버림으로 여기 속했던 학생들이나 교사들, 바우하우스 출신이기에 핍박받을 예술가들이 미국이나 유럽 각지로 흩어져 버리는데, 이들을 통해 바우하우스라는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아마도 지난 여름의 그 난리 때문에 한예종이라는 존재를 알게되었고 또 '통섭교육'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사람도 많을 테니 -나 역시 거기에 포함된다- 이 역시 비슷한 결과인가? 뿔뿔이 흩어진 바우하우스의 이상이나 커리큘럼이 후대 디자인 학교에 끼친 영향력이 막강했던 것을 떠올리며 또 미래를 기대해보는 게 현재를 사는 우리가 스스로를 위안하는 작은 방법이겠지.
이 책을 택한 명확한 이유가 있다보니 감상의 고리가 한쪽으로 몰려버렸는데, 15년도 존속하지 못했던 학교지만 그 역동성과 흥망성쇠는 마치 한 인간의 일대기를 보는 것 같았다.
클레, 칸딘스키 등 좋아하는 작가들이 작품이 아니라 교사로, 이론가로 등장해 그들의 이상을 학생들에게 펼치는 모습을 보는 건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알마 말러의 남편 중 하나일 뿐이었던 그리피우스라는 건축가가 가졌던 이상이나 그의 복합적인 부분을 발견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었다.
다만 이 시공 아트 시리즈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오는 불평인데, 명색이 '아트' 시리즈라면 최소한 도판들은 올컬러로 배치하는 성의를 좀 보여주길. 아니라면 아트 시리즈라는 이름을 빼던가. 간판에 따라 사람이 기대하는 게 달라지는데 이 정도면 허위과장광고의 수준이 아닌가?
거의 잊혀진 단어였던 서독이니 동독이니 하는 용어에 초판 연도를 보니까 1984년. 벌써 25년 전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이 출판된 뒤 바로 5년 뒤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하나가 될 거라고 그때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지 않은 독일 사람들이 부럽다는 잡상도 살짝 스쳐갔음.
바우하우스에 대한 책들이 꽤 번역되어 있던데 균형 잡힌 시각과 정보 획득을 위해서 기회 닿으면 두어 권 더 읽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