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잔 사트라피 | 새만화책 | 2010.1.10
원제는 Persepolis.
이란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이 쫓겨나던 시기에 이란에서 살았던 마르잔 사트라피라는, 이란 여성이 어른이 되어서 자기가 어릴 때 보고 겪었던 일들을 만화로 쓰고 그린 책이다. 형식은 만화를 빌렸지만 그 안의 내용과 사유는 한번 보고 던져버리는 만화가 아니다.
위대한 페르시아 대제국 시절 수도였던 (여름 수도였던가. 겨울 수도였던가는 생각나지 않는다. 페르시아 황제는 계절에 따라 도시를 바꿔가면서 살았는데 하나는 수사고, 하나는 페르세폴리스라는 것만 기억남) 페르세폴리스가 아마 지금의 테헤란인 모양이다.
읽으면서 엄청 몰입했고 또 이 나이에 흔치 않은 공감과 감동도 많이 받아서 제대로 감상을 정리하고 싶어서 미뤘는데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면서 다 증발하고 또 기운도 없어서 그냥 오늘 자투리 시간이 남은 김에 남은 단상이나 정리를 해야겠다고 앉았다.
1권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마르잔 사트라피는 자기가 속한 사회적인 굴레를 알고 있으면서, 그 한도 안에서 인생을 즐기고 또 주변이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극히 평범하면서도 합리적인 중상층 부모 밑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성장한다.
팔레비 왕조를 쫓아내는 데모에 지속적으로 부부가 참여하고, 반정부 인사들과 교류를 하고, 또 여성의 권리를 지키는데도 앞장서는 아내와 그 아내를 지지하는 남편이지만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고 다른 형태의 압박이 시작될 때 이들은 거기에 겉으로 순응하는 척은 하면서 한계를 비껴 가지 않는다. 반정부 활동에 참여했던 친구들이 죽고 망명을 갈 때, 마르잔의 어머니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고 하자 아버지는 '미국에 가서 나는 택시 운전을 하고 당신은 청소부로 일하고 싶냐'는 얘기를 한다. 자신들이 누리는 것을 버리기는 두려웠던 거겠지. 적당한 반항과 반대를 하는 걸로 양심의 가책을 위로하면서 온갖 모순이 가득하고 그들이 엄청 싫어하는 이란이라는 사회에 남아 그들이 누렸던 것을 계속 지키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반항적이고 똑똑한 딸은 유럽으로 유학을 보내는 걸로 현실과 이상을 적절히 타협한다.
이걸 보면서... 내 자신이 투영되어 공감이 갔다고 할까. 저 청기와집 일당들을 보면 천불이 나고 안 보면 속이 후련하겠지만 다 버리고 나가면 말마따나 청소나 세탁소 말고는 할 게 없으니... 저놈들 보다는 내가 더 오래 살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쟤들이 싫어하는 짓을 골라서 하고 쟤들이 미워하는 곳에 돈 주는 걸로 양심의 가책을 달래는 소시민. 자신을 바쳐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복장 터지는 일이겠지만... 내가 그래서 그런지 욕할 수는 없다고 생각. 그래도 투쟁을 업으로 삼다가 변절해서 더 큰 해악을 끼치는 김모모, 이모모 보다는 이쪽이 백배 더 유익하다고 생각함. ^^
마르잔의 성장을 보면 1979년 이란 회교 혁명의 승리와 이슬람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그 기간 동안 이란인들이 느꼈던 환호와 기쁨, 미래에 대한 기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대다수 외부인들에게는 호메이니로 대표되는 그 복고적인 원칙주의자들이 한 사회의 자유를 어떻게 억압해 나갔는지,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그 변화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림으로 보여지는 옷차림의 변화는 글만으로는 절대 감지할 수 없는 시각적인 자극을 선사한다. 만화라는 수단을 택한 건 아주 극적으로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마르잔 사트라피라는 여성의 독특함과 간략하면서도 아주 사실적으로 역사를 전달하는 그 능력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그녀가 참 행운아라는 생각도 했다. 유럽도 아니고 이란에서 10대 소녀가 그 시절에 유럽으로 유학 가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슬람 정권 이전에 성장하고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더불어 경제적인 여유까지 있는 부모를 두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 그렇게 유럽에 가서 공부하고 적당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거나, 혹은 흥청망청 옆길로 빠져서 망해버릴 수도 있었는데 자신의 행운을 낭비하지 않고 이렇게 건설적인 면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은 인정을 해줘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거나 인식을 바꾼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 같다.
일단 나부터도 역사적으로도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이 몇가지 교정이 됐다. 이란 혁명 자체에 관심도 없었고 아주 어릴 때라서 기억나는 것도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난 팔레비가 쫓겨나고 바로 호메이니가 이란을 휘어잡아 차도르를 뒤집어씌운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여자들에게 차도르나 히잡을 뒤집어 씌우기까지 꽤 많은 저항이 있었고 또 오래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다 함께 호메이니 만세~를 외치면서 그 뒤를 따라간 줄 알았는데 이란 사람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구나...라는 아주 당연한 깨달음도 얻었고.
또 카터를 대통령 재선에서 실패하게 한 결정적인 원인인 그 이란 대사관 인절 사태가 혁명과 동시에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것도. 혁명 후 1년 정도는 미국과 이란의 국교가 유지되었고 그 이후에 인질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면서 내가 생각보다 많이 무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호메이니 정권 때 미국이 부추긴 이란과 이라크 전쟁 때 후세인은 미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그렇게 후세인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던 미국이 몇십년 뒤에 이라크를 직접 침공하고 후세인을 잡아 죽이게 되다니... 역사란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책에는 이란 혁명의 상징인 호메이니란 이름이나 그의 존재가 단 한번도 드러나지 않는다. 이건 의도적인 게 아닌가 싶다. 이미 죽은지 한참이지만 그의 존재나 영향력은 아직도 이란에 시퍼렇게 살아 있어서 만약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모독적이거나 비판적인 내용이 들어가면 예전에 그 루시디라는 작가처럼 사형 선고를 받고 암살 위험에 평생을 도피하면서 지내야하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짐작 중.
유럽에 간 마르잔은 어떻게 성장했는지, 20대 때 잠시 이란으로 돌아갔던 것 같은데 그때 이란은 어떘는지를 알려주는 2권이 있는 것 같은데 조만간 구입을 해야겠음. 어떤 이란 현대사 책보다도 단시간에 많은 걸 알려주는 책인 것 같다.
한국 현대사가 요동을 치던 시절의 내 나니와 이 저자가 이란 혁명을 겪던 때 둘 다 비슷한 나이였데...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게 정답이겠지. ^^; 29만원의 대통령 취임식을 보면서 할머니와 했던 쪽팔린 대화 하나는 기억이 나지만 그건 내 흑역사인 고로 죽을 때까지 패스, 지난 두 정권을 제외하고 항상 여당인 부친이니 마르잔과 아버지와 같은 아이 눈높이에 맞춘 정치적인 대화는 있었을 리가 만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현재 이메가로 이어지는 저 일당들을 싫어하게 된 걸 보면 쫌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함.
아마 29만원 정권 내내 철없는 어린 애들 가방까지도 전경들이 까서 검사하고 (당해봤다. -_-;;;;) 말기에는 시시때때로 사대문의 통행까지 막는 무식한 짓을 해서 멀쩡한 길을 두고 미아리로 빙 돌아서 집에 가게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서 저쪽은 나쁜 X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학습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에 가서 데모를 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보면 기운 넘치던 대학 때도 안 하던 가투를 하게 만드는 이 정권의 능력은 29만원보다 한 길 위라고 평가해줘야 하나?
이란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이 쫓겨나던 시기에 이란에서 살았던 마르잔 사트라피라는, 이란 여성이 어른이 되어서 자기가 어릴 때 보고 겪었던 일들을 만화로 쓰고 그린 책이다. 형식은 만화를 빌렸지만 그 안의 내용과 사유는 한번 보고 던져버리는 만화가 아니다.
위대한 페르시아 대제국 시절 수도였던 (여름 수도였던가. 겨울 수도였던가는 생각나지 않는다. 페르시아 황제는 계절에 따라 도시를 바꿔가면서 살았는데 하나는 수사고, 하나는 페르세폴리스라는 것만 기억남) 페르세폴리스가 아마 지금의 테헤란인 모양이다.
읽으면서 엄청 몰입했고 또 이 나이에 흔치 않은 공감과 감동도 많이 받아서 제대로 감상을 정리하고 싶어서 미뤘는데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면서 다 증발하고 또 기운도 없어서 그냥 오늘 자투리 시간이 남은 김에 남은 단상이나 정리를 해야겠다고 앉았다.
1권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마르잔 사트라피는 자기가 속한 사회적인 굴레를 알고 있으면서, 그 한도 안에서 인생을 즐기고 또 주변이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극히 평범하면서도 합리적인 중상층 부모 밑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성장한다.
팔레비 왕조를 쫓아내는 데모에 지속적으로 부부가 참여하고, 반정부 인사들과 교류를 하고, 또 여성의 권리를 지키는데도 앞장서는 아내와 그 아내를 지지하는 남편이지만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고 다른 형태의 압박이 시작될 때 이들은 거기에 겉으로 순응하는 척은 하면서 한계를 비껴 가지 않는다. 반정부 활동에 참여했던 친구들이 죽고 망명을 갈 때, 마르잔의 어머니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고 하자 아버지는 '미국에 가서 나는 택시 운전을 하고 당신은 청소부로 일하고 싶냐'는 얘기를 한다. 자신들이 누리는 것을 버리기는 두려웠던 거겠지. 적당한 반항과 반대를 하는 걸로 양심의 가책을 위로하면서 온갖 모순이 가득하고 그들이 엄청 싫어하는 이란이라는 사회에 남아 그들이 누렸던 것을 계속 지키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반항적이고 똑똑한 딸은 유럽으로 유학을 보내는 걸로 현실과 이상을 적절히 타협한다.
이걸 보면서... 내 자신이 투영되어 공감이 갔다고 할까. 저 청기와집 일당들을 보면 천불이 나고 안 보면 속이 후련하겠지만 다 버리고 나가면 말마따나 청소나 세탁소 말고는 할 게 없으니... 저놈들 보다는 내가 더 오래 살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쟤들이 싫어하는 짓을 골라서 하고 쟤들이 미워하는 곳에 돈 주는 걸로 양심의 가책을 달래는 소시민. 자신을 바쳐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복장 터지는 일이겠지만... 내가 그래서 그런지 욕할 수는 없다고 생각. 그래도 투쟁을 업으로 삼다가 변절해서 더 큰 해악을 끼치는 김모모, 이모모 보다는 이쪽이 백배 더 유익하다고 생각함. ^^
마르잔의 성장을 보면 1979년 이란 회교 혁명의 승리와 이슬람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그 기간 동안 이란인들이 느꼈던 환호와 기쁨, 미래에 대한 기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대다수 외부인들에게는 호메이니로 대표되는 그 복고적인 원칙주의자들이 한 사회의 자유를 어떻게 억압해 나갔는지,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그 변화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림으로 보여지는 옷차림의 변화는 글만으로는 절대 감지할 수 없는 시각적인 자극을 선사한다. 만화라는 수단을 택한 건 아주 극적으로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마르잔 사트라피라는 여성의 독특함과 간략하면서도 아주 사실적으로 역사를 전달하는 그 능력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그녀가 참 행운아라는 생각도 했다. 유럽도 아니고 이란에서 10대 소녀가 그 시절에 유럽으로 유학 가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슬람 정권 이전에 성장하고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더불어 경제적인 여유까지 있는 부모를 두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 그렇게 유럽에 가서 공부하고 적당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거나, 혹은 흥청망청 옆길로 빠져서 망해버릴 수도 있었는데 자신의 행운을 낭비하지 않고 이렇게 건설적인 면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은 인정을 해줘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거나 인식을 바꾼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 같다.
일단 나부터도 역사적으로도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이 몇가지 교정이 됐다. 이란 혁명 자체에 관심도 없었고 아주 어릴 때라서 기억나는 것도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난 팔레비가 쫓겨나고 바로 호메이니가 이란을 휘어잡아 차도르를 뒤집어씌운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여자들에게 차도르나 히잡을 뒤집어 씌우기까지 꽤 많은 저항이 있었고 또 오래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다 함께 호메이니 만세~를 외치면서 그 뒤를 따라간 줄 알았는데 이란 사람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구나...라는 아주 당연한 깨달음도 얻었고.
또 카터를 대통령 재선에서 실패하게 한 결정적인 원인인 그 이란 대사관 인절 사태가 혁명과 동시에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것도. 혁명 후 1년 정도는 미국과 이란의 국교가 유지되었고 그 이후에 인질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면서 내가 생각보다 많이 무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호메이니 정권 때 미국이 부추긴 이란과 이라크 전쟁 때 후세인은 미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그렇게 후세인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던 미국이 몇십년 뒤에 이라크를 직접 침공하고 후세인을 잡아 죽이게 되다니... 역사란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책에는 이란 혁명의 상징인 호메이니란 이름이나 그의 존재가 단 한번도 드러나지 않는다. 이건 의도적인 게 아닌가 싶다. 이미 죽은지 한참이지만 그의 존재나 영향력은 아직도 이란에 시퍼렇게 살아 있어서 만약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모독적이거나 비판적인 내용이 들어가면 예전에 그 루시디라는 작가처럼 사형 선고를 받고 암살 위험에 평생을 도피하면서 지내야하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짐작 중.
유럽에 간 마르잔은 어떻게 성장했는지, 20대 때 잠시 이란으로 돌아갔던 것 같은데 그때 이란은 어떘는지를 알려주는 2권이 있는 것 같은데 조만간 구입을 해야겠음. 어떤 이란 현대사 책보다도 단시간에 많은 걸 알려주는 책인 것 같다.
한국 현대사가 요동을 치던 시절의 내 나니와 이 저자가 이란 혁명을 겪던 때 둘 다 비슷한 나이였데...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게 정답이겠지. ^^; 29만원의 대통령 취임식을 보면서 할머니와 했던 쪽팔린 대화 하나는 기억이 나지만 그건 내 흑역사인 고로 죽을 때까지 패스, 지난 두 정권을 제외하고 항상 여당인 부친이니 마르잔과 아버지와 같은 아이 눈높이에 맞춘 정치적인 대화는 있었을 리가 만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현재 이메가로 이어지는 저 일당들을 싫어하게 된 걸 보면 쫌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함.
아마 29만원 정권 내내 철없는 어린 애들 가방까지도 전경들이 까서 검사하고 (당해봤다. -_-;;;;) 말기에는 시시때때로 사대문의 통행까지 막는 무식한 짓을 해서 멀쩡한 길을 두고 미아리로 빙 돌아서 집에 가게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서 저쪽은 나쁜 X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학습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에 가서 데모를 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보면 기운 넘치던 대학 때도 안 하던 가투를 하게 만드는 이 정권의 능력은 29만원보다 한 길 위라고 평가해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