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말씀으로는 이 김설문이라는 요리사는 70년부터 서린(서진? 확인해봐야 함) 호텔에서 튀김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하심. 그때 장안의 식도락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여기서 튀김을 먹어야 뭘 좀 먹어봤다고 목에 힘을 줄 수 있었고, 우리 부친도 거~한 접대 때나 구경을 가봤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몰래 엄마랑 둘이서만 드시고 오신 적이 있었다는 게 어제 들통 났음. -_-+++- 우리나라 아이스크림 튀김의 원조라고 함.
튀김은 요리사의 신선한 재료와 기술도 중요하지만 금방 튀긴 게 생명인 고로 일부러 카운터를 예약했는데, 일찍 가서 그런지 굳이 예약할 필요는 없었던 듯. 6시 반에 갔는데 우리가 다 먹고 나올 즈음에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일반 일식집처럼 초밥이나 회 등의 메뉴도 있었지만 이 집에서 그런 걸 먹는 건 김밥천국에서 된장찌개 시켜먹는 바보짓인 고로 우리는 튀김에 집중. 회가 포함되는 튀김A 정식이 있고 그냥 모듬 튀김이 있다. 회가 포함되는 건 35000원. 모듬 튀김은 30000원. 나나 내 동생이 돈을 내는 거면 모듬 튀김이었겠지만 물주가 부친인 터라 주저없이 35000원짜리로. ㅎㅎ;
처음엔 마늘쫑, 오이, 당근, 양상추가 놓이고, 두 종류의 튀김 찍어먹는 소스와 함께 호박죽이 나오는데, 호박죽의 맛은 평범. 튀김을 양껏 먹어야 하기 때문에 맛만 보고 난 패스. 그 다음에 광어와 농어로 짐작되는 두 종류의 회가 6점 나왔다. 회의 크기도 크고 두툼하니 꽤 실하지만 맛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횟집의 회.
회를 먹는 동안 튀김을 준비하기 시작하더니 먼저 보리새우(새우튀김은 진리!) 와 관자, 오징어, 얇게 썬 닭, 정체가 모호한 흰살 생선, 갑오징어 튀김이 1차로 나오고, 그 다음에는 메로, 김에 싼 마 (<-정말 특이하고 맛있었음), 멍게(<- 이것도 진짜 신기!), 전복, 열빙어가 줄줄이~ 메로랑 닭, 마는 하나만 주지만 새우 포함 다른 종류는 두 조각씩 나오니까 이 양만 해도 상당하다. 사실 마 등이 깔리는 시점에 이미 배가 불렀지만 멍게나 전복, 새우들의 향연에 무리를 하게 된다. 이렇게 먹고 수삼을 튀김 것과 단호박, 고구마로 1차 마무리~
튀김이 나올 때 양파를 절인 걸 주는데 이게 참 깔끔하니 맛이 환상이다. 느끼한 튀김의 맛을 싹 씻어주는 피클인듯. 일반적인 튀김 소스외에 레몬과 소금을 섞은 것으로 짐작되는 소스가 하나 나오는데 생선이나 해산물은 튀김장보다 여기에 찍어먹는게 더 맛있다. 그리고 야채를 찍어먹게 나온 쌈장은 달지도 않으면서 짜지 않고 너무 깔끔하고 맛있었음. 뭘 어떻게 섞었는지 그 비율이 개인적으로 아주 궁금했다.
이렇게 배 터지게 먹고 알밥과 매운탕으로 식사를 마친 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튀김을 해서 준다. 이렇게 먹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여. ㅎㅎ; 얘기도 하지 않고 진짜 열심히 잘 먹었음.
회나 매운탕은 평범했지만 튀김으로 날리는 요리사 답게 튀김과 튀김에 딸린 것들은 가히 최고 수준. 무엇보다 튀김옷이 두껍지 않다는 게 정말 내겐 딱이었다.
어떤 곳에 가면 이게 튀김옷을 튀긴 게 메인인지 그 속재료가 메인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얇고 파삭하니, 종잇장처럼 얇은 튀김옷 안에 남은 열로 보드랍게 익은 속재료는 환상. 특히 멍게에서 이 기술의 진가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겉은 뜨겁고 속은 보드랍게 녹으면서 멍게향이 확 퍼지고 엄청난 칼로리는 눈을 딱 감게 된다. 튀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전 코스를 낙오하지 않고 다 먹었다.
모듬 튀김이 1인분에 3만원이니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쩌다 한 번 큰 마음 먹고 제대로 된 맛있는 튀김을 배 터지게 먹는데 투자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금액. 내일 모임은 초록 바구니에 가기로 했지만... 다른 모임이 있으면 여기를 추천해야겠다.
남대문 시장 건너편, 신한은행이 있는 길로 들어가서 오른쪽 첫번째 골목으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금방 보인다. 해마루 식당인가가 있는 그 골목.
지금 엄청 속썩이는 거 하나 원고료 들어오면 부친 모시고 기꾸 과장님이 독립해 차린 우메에 가서 스시 한번 쏴드려야겠다. ㅋㅋ 어제 엄청난 콜레스테롤의 향연을 펼쳤으니 당분간은 풀만 먹고 살아야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