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관 | 살림 | 2010.6.11-20
산지는 꽤 됐는데 어영부영 책장에서 돌다가 빨리 읽혀질 것 같은 책들부터 치우자 주간에 선택한 책이다. 전봉관 교수가 쓴 이 식민지 시대 관련 책은 컬렉션이 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긴 한데... 초창기 저작들에 비해 신선도나 주제의 일관성이 조금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억지스럽지 않고 적당한 무게김과 재미를 주는 책이다.
지금 우리나라 자살율이 OECD 국가 중에 최고라던가 2위라던가... 그러던데 몇십 년 전에도 자살은 적지 않았고 또 그 화제성이나 사회 파급력 역시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굳이 자살만을 예로 드는 게 아니라 이 책에서 자살과 엮여서 소개되는 사건들과 그 인물들의 관계, 그리고 이어지는 남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1920년부터 40년대까지 식민지 조선이나 지금 21세기 한국은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삶의 형태만 살짝 바뀌어 있지 자살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나 온갖 추측과 소설로 죽은 사람을 모욕하는 언론, 그리고 죽은 사람만 불쌍해지는, 결코 죽음으로 해결되지 않는 모순들이 소름끼칠 정도로 그대로이다.
자살이라는 비극을 갖고 신문은 물론이고 잡지에서도 온갖 소설을 써서 두고두고 울궈먹는 모습을 보면서 찌라시의 유구한 전통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류의 찌라시 기자들이 책이나 한 권 제대로 볼지는 의문이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선배 찌라시 기자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다고 이제 나름대로 자긍심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
이 안에서 여러가지 죽음들이 나오고 있지만 가장 지금 모습과 오버랩 되는 건 이화학당 학생의 자살이었다.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왕따를 당하고 또 교수들에게까지 모욕을 당하다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결국 자살을 택한다. 그녀가 자살했을 때 언론은 물론 앞장 서서 질타를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그녀를 그렇게까지 몰아갔던 교수들은 자기들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회피했고 남은 생도 가졌던 명성과 지위를 지키면서 행복하게 마무리를 했다. 동급생들 역시 마찬가지. 자신은 왕따의 선봉에 서지 않았다고 -아마 그 선봉에 섰던 사람조차도- 자기 기억을 왜곡하고 잊어버리고 살았을 것이다.
이 사건을 다루면서 저자는 당시 기숙사 생활을 하던 이화학당 학생들의 사치 풍조에 대해 짚고 넘어갔는데... 이대=멋내는 여대생의 이미지는 이미 이때부터 형성이 된 건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잠시 웃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대학 때는 일단 이대라고 하면 최소한의 물관리는 되어 있다고 봤는데 그때도 그랬었구나.
영화 사의 찬미에서 세기의 사랑으로 로맨틱하게 묘사됐던 윤심덕과 김우진의 현해탄 동반 자살은 요즘 식으로 하자만 인터넷 자살 클럽에서 만난 동반자살과 마찬가지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어서 쫌 서글펐음. 이렇게 내 어린 날에 믿언 달나라 토끼 한마리가 또 달나라를 떠나갔다.
이 책은 -대놓고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사건들을 보면 그렇게 느끼게 된다- 절대 억울함을 풀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서 자살해서는 안 된다는 아주 확고한 교훈을 준다. 이 책에 언급된 사건들 중에 죽음으로 문제가 해결된 경우는 없다. 대다수가 이제는 이름마저 희미해지고 있는 그 장자연씨처럼 실컷 흥밋거리로 이용되다 잊혀져 버리는, 즉 죽은 놈만 억울하고 오히려 더 나쁜 놈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병신 취급을 받는다.
옛날 전설의 고향에 등장한, 자신을 죽게 한 집안을 7대에 걸쳐 아작내는 그런 원귀 (전설의 고향에 등장했던 원귀 언니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결국 퇴치될 때 정말 안타까웠음.) 가 될 자신이 없으면 절대 죽지 말고 이를 악물고 바락바락 살아내야 한다는 의지를 갖게 해주는, 저자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재미도 있지만 삶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읽어두면 좋을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