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하 | 사계절출판사 | 2010.8.17-19
입원한 날 병원에서 읽을 책을 고르다가 이걸로 간택을 했다. 너무 가벼워서 빨리 읽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무거워서 진도 나가지 않는 걸 찾느라고 한참 뒤집었는데 성공적인 선택이었음.
'김치, 한국인의 먹거리' 부터 팬이 된 주영하 선생의 신작으로 조금 낡은 감이 있었던 '음식전쟁 문화전쟁' 이후에 다음 책을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어떤 작가나 학자의 글을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하게 읽게 되면 본의 아니게 스토킹 내지 분석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약간의 내용 보충과 함께 책 제목과 바꿔서 내고, 그럴듯한 소개로 사람을 낚아서 분노하게 하는 일부가 있고, 차곡차곡 쌓은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는 일부, 그리고 지식과 함께 점점 농익는 생각과 사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일부가 있는데 주영하 선생의 경우는 세번째.
흥미로운 김치 탐구였던 첫 책 이후 발간되는 그의 책들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음식의 얘기들이 많았다. 중국 유학 이후에는 좀 더 넓어진 시각과 다른 문화에 대해 이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이 차폰 잔폰 짬뽕은 수용과 이해가 이제 어느 정도의 수준에 달해서 새로운 고찰의 단계로 넘어간 느낌이다.
짬뽕처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음식들. 칭기스칸처럼 본토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몽고의 음식처럼 알려진 그런 음식들.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으로 인해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난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이 비교적 잘 된 것이고 그들의 문화를 가능한 지켜준 거라고 믿고 있었다- 인정받은 그 50여 부족을 제외한 다른 소수민족들은 없는 존재가 되고 있다는 것, 더불어 그들의 문화와 음식도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등 지식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것을 많이 접했다.
소수 민족의 음식 주권... 이건 한국으로 가져오면 지역 음식의 주권이라는 걸로도 대입이 될듯. 어디에 가든 점점 특색이 없어지는 음식으로, 아니면 대표 음식 하나가 주변의 작은 소소한 음식들을 다 죽여버리는 보여주기식 음식 문화 축제는 이제 지양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가지 좋은 내용이 많지만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로컬 푸드에 관한 부분이다. 농업에 관한 식견은 쥐뿔만큼도 없이 설쳐대면서 그나마 남은 농업마저도 아작내고 있는 정부 덕분에 우리에게도 지금 턱 밑에 닥친 문제가 되고 이 문제의 해결책을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로컬 푸드 운동이라는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해주고, 서로 적절한 이윤과 이익을 얻어내는 시스템은 말로는 좋지만 실천하기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를 보여준 이 부분은 생명운동 내지 식량 자급이나 우리 농촌 살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연구하고 참고해야할 것 같다. 저자의 의도는 그게 아닐 수 있겠지만 이내게는 부분이 차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었다.
국수주의를 벗어난 비교와 이해는 자국 문화에 대한 자신감과 스스로의 내공에 대한 자신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저자들이 더 많이 나와서 우리 뿐 아니라 남들도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음식과 또 우리 주변 음식 문화에 대한 연구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