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엉망이고 컨디션도 과히 좋지 않아서 가기 전까지는 좀 그랬지만 그래도 큰 기대가 없어서 그랬는지 오히려 나쁘지 않았음.
간단하게 감상만 정리하자면.
출연자들의 숫자가 많지 않고 그나마도 강수진을 제외하고는 다 한 작품씩만 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늘리려는 눈물 겨운 노력의 일환으로 끼어든 예프게니 오네긴 서막 연주. 정말 간만에 비쩍 마른 빈약한 사운드란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줬음. 코심이 그리웠다고 쓰면 대충 그 규모와 수준이 이해가 갈듯. 반주도 내내 이랬다. -_-;
KBA 프로젝트 발레단의 돈키호테 중 꿈의 장면. 프로젝트 발레단이라고 해서 손발이 맞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로 깔끔한 편이었다. 특히 어린 큐피드들 정말 귀여웠음. ^^ 연습도 많이 한 것 같다.
첫 공연은 네덜란드 국립 발레단에 있은 김세연 & 루비날드 로피노 프론크의 B SONATA.
바흐의 소나타를 Leo Musik란 안무가가 안무한 작품인데 김세연씨의 화려한 춤은 현대발레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멋지게 변신하고 발전한 모습이 좋긴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백조나 지젤이 가끔씩 그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서희& 코리 스턴스의 해적 중 침실 파드되.
보통 해적에선 알리와 메도라의 파드데를 갈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좀 특이했음.
ABT에서 이제 솔리스트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서희의 능력을 확인하는 무대였다고 해야겠다.
나이답지 않게 굉장히 부드럽고 자신감이 있다고 해야하나?
파트너와의 호흡도 잘 맞는 것 같다.
이고르 젤렌스키와 ???의 바로 이 침실 파드되 갈라 영상물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음.
김소연 & 알렉산드르 시몬스의 Sound of Silence.
뒤셀도르프 무용단에 있었던 허용순씨가 이제는 안무가로 완전히 전업을 한 모양이다.
그녀의 작품인데, 쓸데없이 난해하지 않고 음악과 잘 맞아떨지는 움직임이 마음에 들었음.
어쩌면 단순할 수도 있는 음악을 잘 표현해내는 무용수들의 능력도 칭찬해주고 싶음.
강수진 & 마리진 라데마커(라고 읽어야 하나?)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 발코니 2인무
슈트트가르트 발레단의 커플이라 크랑코의 대표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택한 모양이다.
수많은 로미오와 줄리엣 안무 중에서 솔직히 이제는 좀 낡고 매력이 떨어지는 크랑코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지만 이 발코니 장면 만큼은 어떤 안무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로미오는 솔직히 좀 방정맞았음.
이제 40대 중반인 강수진은 여전히 아름답고 이제 움직임 자체가 바로 춤이고 예술이 되는 경지에 이르른 모양.
오늘 존재감이며 움직임을 보면 50대까지 너끈하게 주연으로 무대에 설 수 있을 것 같다. (감사)
동생과 친구는 로미오 멋있다고 파닥파닥. 역시 남자는 잘 생겨야 함. ㅎㅎ;
휴식 후 KNUA 발레단의 Inspiration중에서.
라벨의 볼레로를 이용한 작품이었는데 조명을 잘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베자르 때문에 수많은 안무가들에게 이 볼레로가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버린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조주현이라는 안무가의 공간 활용이며 무용수들의 모티브 등은 꽤 괜찮았다.
앞으로 이 안무가의 이름이 나오면 주의 깊게 보게 될듯.
유서연 & 파비안 라이바이르의 지젤 2막 파드데.
영국 내셔널 발레단에 가 있는 유서연의 무대를 처음 봤는데... 아직 자라나는 새싹이니 간단히 한줄만 쓰겠음.
그녀도 그녀의 파트너오 아직 지젤은 무리다.
강수진 & 마리진 라데마커가 다시 등장해 Kazimir's Colours
Mauro Bigonzett라는 안무가의 작품인데... 확실히 현대 무용에도 트랜드가 있는 것 같다.
오늘 세 작품이 뭐라고 콕 찝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묘하게 비슷하달까... 그런 느낌이 들었음.
안무가들이 무조건 새로워야 하고 특이해야하고 난해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난 것은 평범한 애호가 입장에서 고마운 일이기는 한데 너무 무난하니 또 나름 서운하군. ^^;
데니스 & 아나스타샤 마트비엔코 부부의 돈키호테 3막 파드되
데니스는 갈라의 파닐라에 걸맞게 최선을 다한, 키로프 솔리스트 다운 모습을 보여줬고 아나스타샤는 한국을 무시한 건지, 아니면 다음날 전막 공연 때문에 몸을 사린 건지 모르겠지만 밋밋했다.
3막 키트리의 바리에이션은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춤추는 게 그 나름의 매력인데 어떻게 부채도 들지 않고 무대에 올라올 수 있는지. 몸 사리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좀 무성의하게 보여서 살짝 빈정이 상했음. -_-;
울산이나 포항공연의 프로그램이 훨씬 더 알찰 것 같다. ㅠ.ㅠ
몸상태 테스트 겸 해서 수술 후 처음으로 장시간 외출을 감행해 봤는데 버티려면 버티겠지만 역시 살짝 무리였음.
오래 앉아 있었더니 몸이 내 담낭이 있다가 사라진 부위를 계속 정확히 알려주는 바람에 집에 올 때는 체면불구하고 차 뒷좌석이 거의 누워서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