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10.8.?-9.18
이 책은 처음 나왔을 즈음에 샀는데 요즘 50% 할인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걸 보고 피눈물을 흘리는 중. 여하튼 거의 몇년을 묵혀놓고 있다가 올해 겨우 끝을 냈다.
목차에 나온 이름들이 다 생소해서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입을 했는데 정말 다른 곳에서는 만나보지 못한 인물들의 삶을 추적한 내용들이라 흥미로웠다. 예전에 조정래 선생이 태백산맥을 쓸 때 모래 속에서 쌀알을 하나씩 찾아내서 그걸 모아 밥을 짓는 것 같이 자료를 수집했다고 하던데 이 작가도 여기저기 파편을 찾아내는 작업을 참 열심히 한 것 같다.
왕을 둘러싼 왕비, 후궁이나 권력의 중심에 섰던 대신들, 아니면 사상이나 학문쪽에서 업적을 이뤘던 학자와 같은 지배층들의 얘기가 아니라 소위 마이너리티의 삶에 우리 사회가 흥미를 갖고 책으로 판매할 수 있는 정도의 시장이 형성된 건 허준이나 대장금의 성공 덕분이 아닐까 싶다. TV가 바보 상자니 어쩌니 해도 잘만 이용하면 시야를 넓히는 등 그 순기능이나 계도 기능이 확실히 있는 듯.
각설하고 책 내용을 간단히 언급하자면 마니아 (최신 인터넷 용어로 얘기하자면 덕후 ^^) 로 분류할 수 있는 조선 후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조선이라는 좁고 폐쇄적인 사회의 한계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자유롭고 치열하게 한 분야를 파고 들었던, 모든 것에 고고하고 오로지 고고한 성리학에만 몰두해야 하는 조선 사회에서는 정말 드문 인물들이다. 그 치열함과 수준이 일반적인 경지를 넘어섰기에 마이너들에게 철저하게 인색했던 조선에서 그나마 이렇게 몇장으로라도 훑을 수 있는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사람들. 여행가, 바둑기사, 화가, 조각가, 무용가, 책장사, 원예가, 시인, 음악가, 과학 기술자가 등장한다.
가장 이채로웠던 것은 솔직히 책장수인 조신선이었다. 다른 인물들은 납득이 가는데 책장수가 왜? 라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그의 기이한 행적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책장수의 역할이 지금과 그때는 조금 달랐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고 충분히 납득이 간다.
한때 비슷한 분야에서 놀아서 그런지 감정적으로 가장 이입을 했던 것은 음악가 김성기와 무용가 운심. 철저하게 일회성인 예술이기에 그 음악을, 그 춤을 후세에 전해주지 못하는 천재의 비애가 느껴지고 그들과 접할 수 없는 관객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제 그들의 예술이 당대인들이 묘사하던 그 수준이 미치지 않아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디아길레프의 말마따나 기억은 전설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게이 아저씨의 저 지론 때문에 우리가 니진스키의 그 전설적인 춤을 단 하나도 만날 수 없다는 비극적인 결말이 아쉽긴 하지만...
각설하고 아마 이 책에 언급된 인물들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사장되었을 수도 있고 비슷한 업적이나 수준을 가졌음에도 기록을 남기지 못해 완전히 사라진 이름도 있을 것이다. 더 찾아보면 또 다른 매력적인 프로페셔널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학문적인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공자왈 맹자왈로 채워진 조선의 이미지에 새로운 색깔을 칠하는 좋은 출발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받는 느낌은 씁쓸함. 아닌 척은 열심히 하지만 소위 프로페셔널에 대한 대접은 조선 시대나 21세기 대한민국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그때는 대놓고 차별을 했고, 지금은 대접하는 척 하면서 쥐어짠다는 정도가 차이랄까. 그나마 대접받게 된 직종은 의사 정도겠지. 아니다... 의사에 대한 대접은 조선 시대에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으니... 결국 나아진 건 없다는 소리. 암울하네. 정말 역사는 진보하는 것일까? 란 원론적인 의문이 든다.
그나저나... 다 읽고 ㅅ양에게 빌려주기로 했는데 이게 잘 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