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피터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음악: 현을 위한 세레나데 C 장조
안무: 조지 발란신
의상: 카린스카
조명: 로널드 베이츠
세계 초연:
초연 무용수: 린다 안츄티나, 홀리 하워드, 엘리제 라이만, 엘레나 드 리바스, 실비아 지젤
(지젤 카치아란자), 헬렌 라이치, 아나벨 리옹, 캐스린 물로브니, 하이디 보셀러,
찰스 라스키, 루산나 보리스
한국 초연:
세레나데는 춤의 역사에서 한 표석을 이루고 있다. 이 발레는 발란신이 미국에서 만든 최초의 작품이고, 뉴욕시티 발레의 기념비적인 레퍼토리이다.
발레는 파란 배경 앞에 푸른 의상을 입은 28명의 무용수들의 무대 수업으로 시작되는데 발란신은 예상하지 않은 리허설 중의 사건들을 안무에 포함시켰다. 안무를 진행하던 중 한 학생이 쓰러졌을 때, 그는 그것을 집어넣었고 다음날 다른 학생이 늦었을 때 그것도 발레의 일부분이 되었다.
최초의 프리젠테이션 후, 세레나데는 몇 번 고쳐졌다.
마침내 완결된 현재의 형태는 소나티네. 왈츠. 러시아의 춤. 엘레지라는 4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2개의 부분은 차이코프스키의 악보에 따라 마지막 발레는 슬픈 음으로 되어있다.
발란신은 차이코프스키를 특별히 좋아했다. “내가 안무했던 차이코프스키의 모든 음악에서 나는 그의 도움을 감지했다. 물론 이것은 진짜 대화는 아니었지만 내가 일하고 볼 때 무엇인가 오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꼈단. 나는 그것이 차이코프스가 나를 돕고 있는 것이다 라고 느꼈다”
“나는 오늘날 우리들이 몇가지 간소한 안무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란신은 1934년에 젊은 무용가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언어를 선택했고, 그의 작품생활을 함축하는 발레를 세레나데의 작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미국에서 발란신이 처음으로 한 일이었고 그는 이 나라에서 고전발레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미국의 발레는 발란신에서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미국의 발레를 확실하게 정립하고 정의했다.
발란신은 아메리칸 발레학교의 학생들을 위해 세레나데를 편성했다, 그리고 그는 유럽에서 이주한지 몇 달 후에 링컨 커스타인과 함께 다시 제작한다. 이미 훈련되어 있었고 전문적인 발레 댄서들이 되기를 바랐던 32명의 학생들에 있었기 때문에 SAB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발란신은 배역들을 각각 개별적으로 만들었다. 발란신이 발레를 안무를 하기 시작했던 날에17명의 소녀들이 학급에 있었는데 그 숫자는 오프닝에서 사용된다. 그는 “17명의 소녀들의 위치가 캘리포니아에서 오렌지 나무숲처럼 보였다" 고 말했다. "꼭 16명인 것처럼 두개의 라인에 있었다. 사람들은 왜 그들을 그렇게 배치했냐고 묻는데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17명이었다. 9명의 소녀들은 다음날 나왔고 그는 그들을 위해 새로운 부분을 첨가했다." 그는 그가 쓸 수 있는 무용수들의 숫자에 맞춰 안무를 계속 변행했다
그 결과 창조된 세레나데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특징은 바로 변화무쌍한 패턴, 쉬지않는 움직임, 친숙한 아름다움이다. 세레나데는 아무 스토리도 없지만 분위기를 계속 반향하고 있고 발레는 로맨스와 그리움, 미스터리 그리고 죽음과 같은 가슴아픈 사연을 담고 있다는 힌트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그의 ‘걸작들 이야기’에서 발란신이 “그 발레에서 유일한 이야기는 음악의 이야기이다. 세레나데와 춤, 그리고 당신이 원한다면 달빛이 있는 단순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긴 했지만.
이 작품의 초연이 있은 1934년에서 65년 이상 지난 지금에도 세레나데는 청중을 매혹시키고 있다. 이것은 뉴욕시티 발레단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발란신의 안무중 가장 인기있는 것 중 하나로 세계 각국의 수많은 발레단에서 공연하고 있다. 1952년 세레나데는 발란신의 작품 중 최초로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에서 공연됐고 이후 발란신과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은 많은 작품들을 함께 작업한다.
케이크 워크의 안무가로 알려진 루산나 보리스는 샌프란시스코 발레의 세레나데 초연 때 최초의 학생역을 맡은 무용수이기도 했다. 몇 년 전 그녀는 이 발레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발란신이 이 첫번째 움직임인, 잘 알려지지 않은 공포의 상징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부분을 어떻게 안무했는지에 대해 생생하게 회고했다.
“우리는 음악을 잘 듣지 못하고 있었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있었어요. 발란신은 미국에 오기 전 독일에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죠. ‘독일에는 정말 끔찍한 사람이 하나 있다. 나 정도 크기의 남자가 콧수염을 기르고 있다. 나는 콧수염이 없다. 그러니까 난 끔찍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계속해서 끔찍한 남자에 대한 얘기를 했지만 그의 이름을 절대 말하지 않았죠. 그가 말하길 ‘내가 엄청난 인파 속에서 그 사람을 봤을 때 그들은 이렇게 헀다’면서 나찌스 경례를 했습니다” (이 콧수염난 쪼끄만 남자가 누군지는 따로 설명 안드려도 아시겠죠?)
갑자기 발란신은 무용수들에게 그들의 발을 나란히 하라고 요구했다. 발레는 5개의 기본 포지션으로 구성되는데 나란히 하는 포즈는 없었다. 발란신은 “이 자세는 기본 자세에는 없지만 난 이것을 언제나 사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6번째 동작이라고 이름붙였다고 보리스는 회고했다. 그리고 그가 돌아왔을 때 끔찍한 남자는 나찌스 경례를 했고 그가 다시 말했다. “나는 끔찍하지 않다. 그래서 당신들은 이것을 아마 좋아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경례를 부드럽게 수정해 세레나데의 정교한 시작 부분의 이미지가 탄생했다. 17번째 여성 무용수는 6번 자세로 서서 오른팔을 높이 들고 있고 그들은 그들의 손을 바라본다. “나는 발란신이 정치적으로 통찰력있고 인간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는 히틀러에게 공포심을 갖고 있어야 했다. 나는 그가 그 끔찍한 경례를 할 때 그의 표정을 보았는데 그것은 아이가 뭔가 신기한 것을 발견했을 때와 흡사했다. 조명이 비치자 그는 의식하지 않고 대단한 것을 만들어냈다”
이 발레에 대한 몇가지 전설적인 얘기들은 무용수들이 연습기간동안 얼마나 발란신과 그의 작품에 빠졌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정말 흥분했었다. 그리고 하이디 보셀러는 그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녀는 정말 고생하면서 나갔는데 발란신은 “아니, 거기서 멈춰”라고 지시했다. 다음날 아나벨 리옹이 늦게 왔는데 그는 그것을 그대로 이용했다. 이것은 17번째 소녀의 본래 포즈로 다른 여성은 어슬렁거리는 순간이다. 그녀는 여기저기를 살펴보다가 아래 무대로 내려와 앙상블에 합류해 같은 포즈를 취한다.
세레나데는 초연 때부터 다양하게 중요한 부분과 주변 부분이 계속 변화했지만 작품의 정수가 되는 부분은 남아있다. 보리스에 따르면 이 발레는 발란신에게 아주 개인적인 것이다. 그가 미국에 오기 전에 그는 중증 결핵에 걸려 있었고 아주 위독했었다. 연습 중에 발란신은 무용수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들도 알다시피 나는 죽을 뻔 했다. 그러나 나는 병을 이겨냈다. 그 이후 내게 있어 날마다가 새롭고 매일 매일이 유일한 하루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 와있고 지금이 바로 전부이다” 그리고 그것을 세레나데에서 우리는 볼 수 있다. 만약 세레나데가 무엇인가라면 그것은 바로 화합이다.
MENT:
발란신의 인간적인 면을 만날 수 있는 드문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국에서는 유니버설 발레단이 공연을 했는데... 멀리서 롱테이크로 영상물로만 봤지 실제 공연은 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뉴욕시티 발레단의 공연으로 꼭 보고야 말거야~~~를 외치고 있지만... 뉴욕시티 발레단은 언제 한국에 좀 와줄지. 요원하네요.
김연아 선수의 올림픽 프리 프로그램 거쉰 협주곡을 볼 때 바로 발란신과 세레나데를 많이 떠올렸었습니다.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장식과 광채를 떼어내고 완벽하게 음악 자체를 표현하기 원했던 발란신의 신고전주의 발레와 윌슨의 거쉰 안무가 일맥상통한다고 느꼈었는데...
여하튼 군더더기 없이 음악과 몸의 움직임이 일치되는 정말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위의 내용은 거의 초벌번역 수준이니 문맥 안 맞거나 문장 딱딱한 건 이해를~ 원문 보면서 다시 다듬으려니 귀찮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