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월인데 이렇게 한가해도 괜찮겠냐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직은 빡세게 일한 4/4 분기의 수확을 곶감 빼먹듯 거둬 먹는 시기라 실감하는 불편은 없다.
몇년간 뻐꾸기만 날린 취미 생활을 이 참에 끝을 내라는 하늘의 계시려니 하고 나름대로 달리려고 노력은 하는데... 왜 낮에는 하루종일 창을 열고 있어도 몇줄 써지지도 않는 글이 0시를 넘기고 나면 귀신처럼 슬슬 발동이 걸리고 1시 넘으면 그때부터 달리게 되는 것일까. ㅜ.ㅜ 재작년, 아니 작년 여름 정도만 해도 날마다 새벽 3-4시까지 달려도 다음날 늦잠 푹 자는 리듬으로 달려주면 별 타격이 없었는데 요즘은 이틀만 2시 넘겨도 사흘 째엔 몸에서 '너 죽고 싶냐!!!'는 빨간불이 팍팍 켜진다. 욕심 내지 말고 하루 한 쪽을 목표로 그냥 쉬엄쉬엄 가야겠음. 어쨌든 이제는 저 까마득히 구름 속에 있던 고지가 보이고 있으니.
2. 우리 가족 안에서 뽀삐양의 애정 순위를 따지자면 난 제일 바닥인데, 얘가 유일하게 나를 최우선으로 찾는 때가 에너지 수치가 바닥을 향했을 때이다. 지난 주에 날씨가 계속 따뜻하니까 동생이 날마다 산책을 데리고 다녔는데 그게 나름대로 엄청 피곤했던 모양. 그저께인가 한밤중에 다크서클이 배까지 내려간 얼굴로 문을 벅벅 긁으면서 내 방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새벽까지 자고 아침 먹으러 나갔다가 또 문 열라고 하더니 올라와서 점심 때까지 빈사 상태. 그렇게 자고 또 자면서 다크 서클이 사라지자 다시 나를 완전히 쌩까고 동생에게로 돌아갔음. 배은망덕한 뇬..... --;
3. 김인혜 교수 사건 초반부터 계속 관심있게 봤는데 파면 조치가 났다. 정직 정도로 일단 시간 벌어놓고 스리슬쩍 유야무야로 다시 복직시키지 않을까 했는데 솔직히 쫌 의외긴 했다. 저 아주머니가 분명 악명이 높기는 하고, 자기가 뿌린 씨를 거둔 것이긴 하지만 내부에 엄청난 반대 세력이 있기는 했던 모양이라는 - 김인혜 교수 측의 음해설- 확신이 살짝 들기도 한다.
성악과 출신들이 이 글을 보면 펄쩍 뛸지 모르겠지만... 음대 안에서 성악과는 좀 왕따다. 성악과 자체가 자기를 음대 안에서 스스로 따시키는 것도 이유지만 뭐랄까, 선후배끼리 엄청 각 잡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시도 때도 없이 민폐 왕창왕창 끼치는 등등. 음대 특유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렇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 학교 음대의 분위기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서로에게 욕 먹거나 피해 줄 일은 피한다는... 끈끈한 한국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좀 멀었다. 아마 이런 성향은 지금은 더했음 더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모두 다 그런다'는 저 아주머니가 늘어놓은 변명 중 상당수는 동의하지 않지만 몇 가지는 동의.
나도 선생님 연주회 표 엄청 많이 샀고, 품앗이로 친구들 -특히 성악과. --;-의 비싼 오페라 표도 많이 사줬다. 내가 둔해서 그게 비싼 선물 내놓으라는 준다는 걸 알아 듣지 못해서 그렇지, 배웠던 선생님 중 한 분도 선물 엄청 밝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지금에는 알겠다. 잊고 있었던 기억 몇가지가 떠오르고 있음. ㅋㅋ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도 좀 웃긴 게 대학원 때는 선생님 시다바리도 꽤 하긴 했는데... 엄청 까칠하고 귀찮은 거 싫어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그게 불합리하다는 생각 자체를 못 했었다. 다른 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술 계통에서는 이 시다바리라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너는 내 애제자' 내지 '넌 내 후계자'의 반열에 들어야만 허용받는 일종의 영광(ㅎㅎ;)이거든.
교수들간 알력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기도 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투자를 다 포기하고 그 바닥을 떠나오긴 했는데... 그냥 있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정말 최대한 잘 풀렸으면 머나먼 지방 어느 곳에서 전임 자리 겨우 하나 잡고 앉아 지겨워 죽으면서 살고 있거나, 그럭저럭 풀렸으면 매년 독주회나 협연 해야 한다는 스트래스 팍팍 받으면서 열심히 여기저기 학교 시간강사 뛰고 있었겠지. 아직까지도 투자비는 절대 회수 못하고 있었을 테고.
나 밀어냈던 교수 하나는 비리로 짤렸다는 소식을 몇년 전에 들었는데 그때 밀어내줘서 고맙단 메일이라도 하나 보내줘야 하나. 그리고 -가짜 정신 질환 진단서로 군대 면제 받은- 또 한 명은 그럴리야 없겠지만 나중에라도 문화부 장관 같은 걸로 나오면 찌르고 싶어 고민 좀 될 것 같다. 쓰다 보니 나도 뒤끝이 정말 엄청 길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