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와 인순이에 관해 험한 트윗을 했다고 난리가 났던데... 나도 '오옹?' 하고 들여다보니까 역시나 언론의 선정적인 헤드 카피. 에공. 그럼 그렇지. --a
언론의 권력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공지영 작가와 달리 연아양이나 인순이나 언론에게 찍히면 끝장 난다는 걸 좀 감안해 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는 한다. 특히 연아양은 딸린 식구도 많고 하려는 일도 언론의 협조가 절대적이니 우호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만 이제 공지영 작가에게 실망이네, 당신은 내게 끝났네~ 책 안 보겠네 하는 사람들 역시 좀 오버라는 생각이... 다른 연아빠들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피겨 관련으로 재미있는 글을 꾸준히 올려줘서 거의 매일 출근도장 찍고 있던 블로거의 반응은.... 나야말로 실망이다. 그 정도의 지성과 연륜이면 전후 파악을 좀 해야하지 않을까 싶음.
각설하고, 이 시점에서 적절한 포스팅이 될 듯 싶어서 예전에 다큐멘터리할 때 인터뷰 녹취록을 옮겨 온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만 해도 거대한 세상의 부조리와 문학으로 맞써 싸우는 시대는 정말 끝난 줄 알았는데....
0836 작품세계에 영향을 많이 준 작가는?
0842 여러 사람 계시겠지만요 국내 작가 중에서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읽고요, 장편이라는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요.
0856 황석영 선생님의 단편들을 보면서요, 시대와 작가가 함께 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두가지로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0908 80년대와 90년대를 구분할 때 시대 상황이 선생님의 문학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0918 80년대 문학은 아무래도 세계사적으로 볼때 우리나라가 후진국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요.
0928 군부독재하에서 오래 생활에 왔기 때문에 모든 것에 흑백 논리가 만연해 있었고, 생활 태도 같은 것도 거의 근대화가 되지 않았고. 이런 것들 때문에 저희 문학도 독재와 민주,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 짓밟히는 사람과 밟는 사람들 이런 식으로 이분법적인 사고를 많이 하게 되었고요.
1000 이제 사회주의가 동구에서 전체적으로 다 무너지고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되면서 다양성의 문제 그 다음에 다양화의 문제가 문학속으로 NG
--> 2011. 내가 지금 이 정권을 싫어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게 거의 스러져가던, 그 촌스럽기 한량없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최악의 방식으로 부활시켰다는 것이다.
1018 황석영 선생님에게 받은 영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1020 우선 그분의 가장 대표적인 단편인 객지라는 것이 70년대 제가 문학을 공부할 때 읽었던 달콤하고 로맨틱한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정말 삶의 현장, 노동판에서 시위, 그 다음에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자들이 합심해서 싸우는 것이 문학적으로 높은 완성도로 그것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놀랬죠.
1051 그리고 감동도 굉장히 많이 받았고. 이 사회적인 소재를 다뤘을 때의 감동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뤘을 때의 감동하고 비길 수가 없더라고요.
1104 그런데다가 ‘물기울에서’ 라는 작품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거의 단편소설이 한편의 시 같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1115 이 시의 소재는 월남전으로 떠나기 전의 어떤 병사의 이야기를 다룬 거였는데 너무나 아름답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사회 문제를 같이 생각하는 그런 점이 저로서는 그 작가를 존경할 수 밖에 없게 됐고 나도 저런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죠.
--> 2005. 무기의 그늘을 읽었을 때 그 엄청난 충격이 새삼... 스케줄이 안 맞아서 황석영 선생님을 다룰 수 없었던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이 된다. 분단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언급할 수 있었을 텐데. 다시 한번 ㅠ.ㅠ
--> 2011. 그때는 그분의 실체를 몰랐었지. ㅋㅋㅋㅋㅋ
1145 90년대에 들어서 아마 전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아요.
1150 일단은 군부독재가 어느 정도 뒤로 물러나면서 민주화가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측면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군부 독재와 싸우던 이론의 근간이던 동구 사회주의가 세계사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상황 속에서 이제는 흑백논리도 아니고 민주 대 비민주의 문제도 아니고 다원화된 것, 다양화 된 것 사람들의 그 어떤 다양한 삶을 다뤄야되는 것, 이런 것들이 제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던 90년대에 일어났기 때문에 제가 그 영향을 안받을 수가 없었죠.
1225 한편으로는 80년대부터 이어오던 사회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면서 90년대에 새로이 일어난 개인의 내면을 중요시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을 제가 한꺼번에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에 좀 힘든 점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가 70년대나 60년대, 80년대에 문학을 했던 사람들 보다는 뭐라 그럴까요. 세계화의 대열에 좀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여견들이 만들어졌다고 저는 생각해요.
--> 2005. 인터뷰로 직접 쓰기는 임팩트가 약해서 좀 어정쩡하고... 아마도 나레이션으로 이 얘기를 풀어줘야하지 싶음.
--> 2011.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여류 작가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내밀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였따는 걸 지금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느끼게 됨.
1257 80년대학번들의 노동계급에 대한 부채의식이 문학에 어떻게 반영되었나.
1311 부채의식 많았죠. 왜냐하면 어쨌든 저희가 태어났던 60년대부터 저희가 대학을 들어갔던 80년대까지 한국사회는 물질적으로 굉장한 발전을 했어요. 그러니까 아무튼 저희가 굉장히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됐는데 사실 그 혜택을 누린 것에 대학생이라는 우리들은 아무것도 기여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1333 그런데 우리 또래인 그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공장에 가서 철야노동을 하고 수출 시한에 대기 위해서 잠 안오는 약을 먹어가면서 박봉에 피를 흘리면서 노동을 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저희가 사실 공통적으로 미안하고 부끄럽고, 그런 혜택을 누린 사람으로서 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전세대가 같이 고민을 했었던 것 같아요.
--> 2005. 이 부채의식에서 살짝 벗어난 세대이면서도 이것을 절절히 가졌던 사람들과 직접 부대끼며 살았단 내 학번이 어찌 보면 행운이라고 해야겠지. 우리 학번까지만 해도 이 부채의식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별다른 죄책감 없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간 대학 생활과 호황기를 잘 즐긴 복받은 세대였던 것 같다. 요즘 대학생들 보면 선배들과 다른 의미에서 불쌍...
1404 그런 점이 저에게도 똑같이 왔었고 그래서 이제 구체적으로 더 이야기를 하면 87년에 제가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공장을 가게 됐는데 그때 저희 선배들이 저에게 요구했던 것이 너보니까 습작하는 문학소녀같은데 너 노동운동 하러가려면 문학같은 건 필요없다, 그러니까 네가 문학을 계속하려면 여기를 나가든지 아니면 우리와 함께 함께 합류하려면 문학에 손을 떼라는, 지금 생각하면 약간 어처구니가 없는 그런 요구를 했어요.
--> 2005. 군사독재와 방향이 다를 뿐 너무나 닮은 편협성. 이들의 편협성과 그들이 욕하던 정권 뺨치는 권위주의가 싫어서 난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행동하지는 않았다. 자기 위안이고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난 획일화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다. 방법을 달리하는 투쟁(?)에 대해서 절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탄핵사태 때 이미지 왕창 구기긴 했지만 내가 추미애씨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낮은 목소리로 자기 길 안에서 민주화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것. 그때 목소리 높이고 소리소리 지르다 지금 구태를 똑같이 재현하는 386들보다 차라리 도덕적이나 대부분의 면에서 낫다.
지금 386 정치인들은 욕하면서 닮는다는 우리 모친 입버릇의 산 증거들. -_-;;;
--> 2011. 386들은 여전히 싫지만 그래도 내 적의 적은 내 친구라는 관점에서... 한나라당 기어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은 X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불러주기로 했음. 근데 요즘 차원이 다른 쇼를 보여주고 있는 한나라당을 보면 저 때 386들을 두고 권위적이 됐다고 욕했던 게 좀 미안해질 지경.
1441 저는 굉장히 고민하다가, 문학도 우리의 삶이 어느 정도 기본은 갖춰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노동운동가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선배들에게 가서 나는 영원히 문학을 포기하겠다고 선언을 했어요. 약속을 한거죠.
1503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그 문학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결국 제가 작가가 된 지름길이었던 것 같아요.
1510 그래서 이제 소위 노동자가 되어보겠다고 공장에 취직을 하고 거기에 있는 프락치에게 걸려서 강제로 퇴사를 당하고 그러다 어떻게 하다가 시위에 연루가 되어서 처음으로 감옥이라는 곳에 들어갔을때 그 안에서 제가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고, 그것의 소재는 바로 그 감옥이었고.
1532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 불교에서 하는 용어대로 버리니까 정말 오더라고요. 그래서 가끔 저는 요새 글을 쓰고 싶다는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1544 글을 쓰고 싶다면 너는 삶의 현장에 가서 돈을 벌어라. 그것이 가장 글을 쓰는 지름길이 될거고 만약에 네가 정말 글을 써야하는 사람이면 네가 무엇을 하고 있든 글은 오는데 만약에 네가 무슨 문학 작품이나 들고 있다면 너는 사람들에게 생생한 작품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충고를 하게도 됐어요.
--> 2011. 이분 아버지도 우리 부친과 같은 과이신 것 같은데 딸 때문에 속 좀 많이 끓이셨을 듯. ㅎㅎ; 그런 의미에서 우리 부친은 내게 고마워해야 함. 입으로만 빨갱이였지 행동은 한 게 없으니. (자랑이 아니구나.... --;)
1611 뒤늦게 노동운동에 뛰어든 동기 다시 한번 부탁.
1622 요즘 젊은이들하고 저도 아마 비슷했던 것 같은데요.
1628 뭐가 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잡히지가 않았고 차라리 뭔가 저에게 명확한 꿈이 있었다면 노동운동을 안했을지도 모르겠어요
1640 그런 점이 하나 있었고 두 번째는 시대 자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정말 아침에 학교가면 몇 명이 끌려가서 없어지고, 또 그중에 정말 소수이긴 했지만 죽었고, 그러니까 우리도 언제 끌려가서 어떻게 인간성을 유린당하고 어떻게 죽을지 몰랐기 때문에 나름대로 전쟁터같은 상황에서 총을 들어야겠다, 이런 심정으로 간거죠.
1708 그러니까 적성 같은 건 사실 상관이 없었고 지금 생각하면 저는 거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적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지만 어쨌든 거기 공장에 가서 한달이었지만 노동운동을 하고 밤일도 하고 사람들과 같이 만났던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1725 왜냐하면 아무래도 커서는 만나기가 힘들어요. 그리고 만난다고 해도 동등하게 만나지는 않잖아요. 좀 일년 쯤 있다가 퇴사 당했으면 제가 더 좋은 글을 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요.
1740 데뷔 이후 문학적 경향의 변화를 정리해주세요.
1752 처음에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리고 ‘그것들의 아름다운 시작’은 학생운동에 관해서 쓴 거에요. 제가 20대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는 것이 학생운동 밖에 없었고, 거기에 노동운동이 약간 가미가 된거고요.
1126 그리고 90년도가 시작되면서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어떤 흑백논리는 무너지고 다양화의 사회가 밀려왔을 때 저희는 서른이 되었어요.
1822 그리고 주변 친구들이 모두다 결혼을 했고, 가정이라고 하는 보수적인 체제 속으로 들어갔죠. 그랬을 때 우리가 한번도 준비하지 않았던 결혼이라는 것들이 저희한테 밀려왔고 사람들이 그것을 페미니즘이라고 하는데 제가 썼던 것은 페미니즘이라기보다는 아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게 막중하고 연습도 없구나, 마치 그냥 수영 못하고 물 속에 팍 뛰어드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해서 물에 빠져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헤엄을 잘 치는 친구들고 있고 NG
1926 우연이었겠지만 90년대가 시작되면서 다양성의 세계가 몰려왔을 때 저희 모두가 일제히 30살이 되었고 모두가 결혼이라는 보수적인 체제 속으로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어요
1937 저희가 80년대에 20대로 진보를 이야기하다가 아무 방비없이 결혼이라는 체제 속으로 들어갔을 때 모두가 다양하게 방황을 하게 된거죠. 그래서 그런 양태를 소설로 써보고 싶다 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쓰니까 평론가들이 저에게 페미니스트라는 딱지를 붙여줬고요.
2000 지금 생각하면 페미니스트 괜찮아요. 어떤 의미냐하면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가지 억압을 당할 때 나는 그 편에 서서 이야기하겠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고 저도 그것을 받아들이고요.
--> 2005. 이번 다큐에서 공지영은 페미니스트적 작품의 대표로 몰아놨으니 이 인터뷰를 써야겠다. 필요한 말만 잘 해줘서 고마운 출연자. 봉순이 언니 때도 아들까지 데리고 나와줘서 전체적으로 참 이쁘게 그림이 나왔었다.
--> 2011. 억압을 당하는 편에 서서 이야기하겠다. 이게 아마 공지영 작가가 갖고 있는 사상의 핵심일듯 싶다.
2017 그렇게 하면서 소위, 시대가 많이 흘러갔기 때문에 제가 80년대에 상처받고, 90년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들의 이야기를 썼을 때 후일담이라는 소설가라는 말이 붙여졌고, 지금도 그것은 거부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소설은 과거의 이야기를 써야하는 것이고, 어떤 큰 사건이 지나갔을 때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게 어쩌면 소설 본연의 의무에요. 제가 예를 들자면, 625전쟁으로 인해서 파괴된 가족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소설의 의무이기도 하고, 동학농민혁명으로 파괴된 봉건가족, 419혁명 이후의 가족, 세계사적으로 유태인 학살 이후의 유태인 가족 이야기를 쓰는 것은 아무도 후일담이라고 하지 않는데, 유독 80년대 이후의 이야기를 후일담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여줬어요.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그 이름을 붙여주신 평론가 선생님께서는 요 몇 년동안 한번도 그 용어를 안 쓰시더라고요. (웃음)
2129 그래서 이제 그렇게 하다가 저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처음에 학생운동 소설가라고, 20대 때 했을 때 불만이 많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 당시에 스물 일곱 쯤 됐을 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소설을 쓸건데 저렇게 딱지를 붙일까, 그렇게 생각을 했고 크게 반항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이렇게 생각했어요. 앞으로 내가 쓰는 소설들을 보면서 너희들이 딱지를 어떻게 바꿀까 궁금하네, 이렇게 생각을 했고요.
2201 그렇게 하면서 최근에 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리뷰를 보니까 뭐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냈다, 그런데 제가 붙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냥 제가 17년동안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17년동안 한국 사회가 격변을 했기 때문에 그냥 그 추세를 따라서 저는 현실을 가장 저에게 받아들여서 소설을 썼을 뿐이고요.
2224 아마 제 소설의 변화가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 사회의 관심의 변화와도 비슷했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행운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2005. 이어령 선생님도 자신에 관해 이런 비슷한 얘기를 하셨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힘든 격변의 시대지만 문학에는 확실히 좋은 토양인 모양이다. 물론 이렇게 승화될 경우에만 해당.
--> 2011. 이어령 선생님은 지금 이 정권의 행태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라고 쓰고 보니 종편 편성표가 떠오르는군. TV 조선인가 JTBC인가에서 프로그램 하나 맡으셨음. 솔직히... 실망이네요, 선생님. 선생님은 걔들 눈치 볼 군번도 아니신데 왜?
2235 시대 참여적인 문학, 페미니즘까지 다양한 변신, 작품에 영향을 준 사건?
2248 아마 그 전체 사회가 계속 영향을 줬는데요, 83년,4년 노동현장으로 갈 무렵에 아주 친한 친구가 군대에서 죽었어요. 그 사건이 저에게 굉장히 충격을 줬고요.
2309 그 다음에 페미니즘으로 넘어가게 된 계기는 제 자신을 비롯해서 친구들 모두가 결혼이라는 시류 속으로 들어가서 당황했던 그 삶이 저에게 계기를 줬고. 뭐 그런 것들 뭐라고 하나의 사건은 아니었죠
2330 문학의 위기, 다음 문학의 방향, 추구할 방향.
2345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무튼 요즘 종이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위기라고 진단을 하는 것 같아요.
2354 그리고 제 자신도 7년만에 소설을 내보니까 그것을 확연하게 느끼겠어요. 그런데 뭐라 그럴까. 문학은 문학이 가지는 고유한 영역이 있어요.
2405 뭐냐면 아마도 그 이전의 대중적인 엔터테이먼트를 소설이 해주던 것을 영화나 인터넷으로 넘겨줄 때가 된 것이 된거 같아요.
2415 소설도 어떤 의미에서 낡은 장르로 가게 됐는데, 낡은 장르가 가지는 장점들이 있죠. 인간의 원초적인 문제들을 다뤄야할 때가 온거에요. 원초적인 문제라 삶이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이고 행복이란 무엇인지, 죄란 무엇이고 벌이란 무엇인지,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이 문학의 살 길이라고 생각을 해요.
2444 또 하나는 뭐라 그럴까요. 영화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상상력의 세계. 영화는 아무리 그것이 장편이라도 시간의 제약이 있어요. 공간의 제약도 어느 정도 있고. 그런데 문학의 상상력의 세계는 끝이 없고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문학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주면 과학이나 영화가 다른 장르에서 문학의 상상력을 재연해내기 위해서 따라 올 거거든요.
2514 이러한 상상력의 세계들을 문학이 선도해줘야 하는 이런 오락적인 기능도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2005. 절대 동감. 제작 일정과 제작비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하는 그 짜증과 괴로움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요즘에는 카메라만 들이대도 다들 돈 뜯어낼 궁리만 하는 세상이 되어서 더더욱. -_-a 거의 완벽한 상상의 자유는 시공 제약이 없는 문학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 와중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주는 문학도 있고... 또 쓰레기도 있는 거겠지. 그러나 쓰레기 없는 세상이 어딨냐. 막연히 바라볼 때는 문학의 위기라는 말에 동감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차라리 고전의 위기라고 해야겠지.
2005. 깔끔하고 똑똑한 사람. 그러면서도 여성성을 잃지 않은 페미니스트. 과격하지 않아서 좋았다. 봉순이 언니는 올해 starlit에서 유二하게 즐겁게 읽은 작품. ^^ 재밌었다~ 역시 베스트셀러라고 불리는 것은 이유가 있다.
2011. 나중에 명박 시대가 끝난 뒤 그녀가 이 시간을 어떻게 소설 속에서 그려낼지 기대가 된다. 소설 사보는데 아주 인색한 나지만 그 책은 꼭 사보겠음. 부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묘사하는 그런 내용은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