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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2/인터뷰

찰스 암스트롱 콜롬비아 대학 교수

by choco 2012. 12. 25.

가편본 나머지가 넘어오길 기다리면서 또 이렇게 호작질.

 

탄력 붙었을 때 몰아쳐서 해야하는데... ;ㅁ;

 

노는 김에 염불한다고 어차피 써야할 것들 복습 겸 인터뷰 퍼오기나 하련다.

 

이렇게 보다가 쓸 거 찾으면 고마운 거고~

 

찰스암스트롱

 

소개를 하면?

0039 저는 찰스 암스트롱이며 역사학 교수이며, 콜롬비아 대학의 코리안 리서치 센터의 디렉터를 맡고 있습니다

0050 한국 현대사 20세기 특히 1945년 이후 역사 남북한의 역사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내년에 출간될 North Korean Foreign Relations 이라는 책을 막 마쳤구요, 또한 이전에 출간되었던 Contemporary Korea를 수정 중 입니다. 그리고 Modern East Asian History를 집필 중이며, US East Asia Relations 등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또한 학생들과 동료들과도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입니다. 0130

 

0138 제 주된 전공은 1945년 이후 한국 현대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특히 북한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1945년과 1950년 사이의 북한의 성립 과정에 대한 책을 썼습니다. 두 번째 책은 북한의 외교 정책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현대 한국의 역사와 민주주의 과정과 한국의 외교 관계와 북한과의 관계, 동아시아에서의 국제 정치 관계 등 저는 한국 현대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역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입니다. 0227

 

몇 년 전 Korea at the Center 라는 책을 수정했습니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다이내믹함에 대한 내용인데요, 어떻게 한국이 식민지를 겪고도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강대국 사이에서 어떻게 변해왔는지, 동북아시아에 대한 역사 연구는 서로서로를 둘러싼 파워 관계에 대한 것인데, 저는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또한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정중앙에 위치한 한국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0320

 

미국은 19세기 말에 동아시아로까지 파워를 확장하였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캘리포니아, 그리고 19세기 말에 미국 영토로 하와이까지 획득하였습니다. 특히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동아시아는 무역과 파워 관계에 중요한 지역입니다. 한국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세기 전까지 간접적인 정보만이 있었다. 조선에는 경제적인 관심이 있었다. 조선과의 무역으로 열기 위한 시도가 있었고1866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셔먼 장군이 대동강 부근에 가서 배가 실종 되면서 실패한 시도였지만 가장 중요한 무역을 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0443

미국은 한국에 1875년 까지는 많은 관심을 두지 못했다. 미국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1850년대부터 시도했다. 미국이 동아시아와의 무역 관계를 열기 위하여 한국에 경제적 시도를 하려고 했다. 한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나라였다. 러시아 제국, 대영제국,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을 통하여 직간접적으로 조선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0550

 

그 지역의 여러 나라들 중에 미국은 한국에 가장 직접적인 관심이 적었던 나라이다. 러시아는 영토를 확장하려고 했고, 중국에게는 한국이 다른 떠오르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했던 나라였고, 일본이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심지어 영국 역시도 한국에 러시아를 제거 하기 위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반면에 미국은 경제적인 가능성을 이유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북쪽 지역의 미네랄이나 천연자원, 금을 통한 장래 무역 가능성에 관심이 많았다.

-> 통일비용을 부담하고서라도 북한을 끌어안고 통일을 해야 하는 중대한 이유 중 하나.

특히 희토류에 속하는 마그네슘 원광석의 북한 내 매장량은 정말 엄청나다.  (정확한 데이터는 가물가물이라 생략. 하지만 누가 딴지 걸면 포스코에서 나온 데이터 보여줄 수 있음)

한국에게 분명히 남는 장사인데... 중국에 접시에 고이 담아서 날로 갖다 바치려는 X들이야 말로 매국노다.

 미국은 아태지역에 글로벌 파워를 갖기 위해서 그 지역의 하나인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은 경제적으로, 향후 잠재적인 무역 가능성에 따라, 또한 한국이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글로벌 비전을 위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0717

한가지 덧붙이자면, 1880년대에 미국의 선교사들에게 한국은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중국에서 오랜 시간 활동을 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880년대 초부터 한국에 갔으며 미국에는 종교부흥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선교사들의 대외적인 활동이 중요해지면서 한국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0750     

 

미국의 인식은? 0800

한국은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중국과 오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고, 1850년대에는 일본과도 다소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또한 알기가 어려운 나라였다. 한국에 대한 인식은 미국인들이나 서구인들이 느끼기를 외부 세계와의 상호 작용을 꺼려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했고 그들이 좀 더 외부 세계와 외교를 하고 무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대 조선은 내부 문제들에 집중했다. 그 당시 영국은 중국과 전쟁이 있었고, 프랑스는 베트남을 침략했다. 그래서 아마도 조선에게는 서구 세력이 두려움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은 그러한 세력들을 적절하게 잘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 서구 세력 중 외교를 시작한 첫 나라이다. 아마도 미국이 다른 서방 국가들보다는 덜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0943

     

한반도를 둘러싸고 그 당시 동아시아에는 제국주의 확장이 아주 많았다. 러시아는 태평양 지역에 1860년대에 뻗치게 되었고, 일본은 1868년에, 그들의 경제적 세력을 확장했다.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1899년에 필리핀을 점령함으로써 제국주의를 실행했다. 1875년 사이 19세기부터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 지역에 훨씬 고조된 경쟁 의식이 생겨났다. 중국과 일본은 전쟁을 했고 1895년에 일본이 이겼고, 그 승리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큰 사건은 10년 후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을 했을 때 한국에 영향이 갔는데, 미국의 동아시아에 관한 역할과 생각에 큰 변화가 있었다. 필리핀을 점령하면서 미국은 제국이 되었고, 그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의 조약으로 미국의 제국주의 파워를 유지하게 되었다. 1130

-> 당시 국제 정세. 내레이션 용.

그는 또한 아주 러시아에 적재적이었다. 그들의 제국주의에 강하게 반대했고 그 파워를 항상 견제하려고 했다. 그리고 일본에는 아주 긍정적이었다. 이것은 미국이 일본의 한국 침략을 허락하는데 아주 중요한 근거가 된다.  1203

루즈벨트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힘을 가지게 되기를 바랬고, 1905년에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기를 바랬다. 사실상 러일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포츠머스 회담에서 그는 중개 역할을 했다. 일본이 한국에 영향력을 가지게 되기를 바랬고 한국을 좋게 바뀌게 하기를 바랬다. 그 당시 세상은 강한 종족은 살아남고 약한 민족은 패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었다. 1242

-> 사용할 인터뷰. 

당시 루즈벨트를 설득해 도움을 얻으려던 움직임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측은할 정도다.

아마 후대에 보면 지금 우리가 측은해 보이는 외교 비화들도 많겠지.

남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이때 민영환 공이 파견한 이승만(이때까진 멀쩡했음) 등 밀사를 박대한 당시 공사 김윤정 같은 X들은 정말 자손만대가 빌어먹으라고 빌어줘도 모자람이 없다.

이 놈에 대해 첨언하자면 귀족 작위 받고 잘 먹고 잘 살았다.

다만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 교포들에게 맞아죽을까봐 몰래 도망갔다고 함.

비슷한 시기에 비분강개해 자결한 영국 공사나 러시아 공사와 비교되는...

이완용이 2대 미국 공사였던 걸 보면 아무래도 미국 쪽에 매국노의 기가 세게 흐르는 모양이다. 

루즈벨트는 일본이 떠오르는 강대국이었고, 러시아는 사라져가고, 한국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 결정은 위너와 루저, 강자와 약자 사이에 관한 의견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중대한 사실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여전히 그들의 제국주의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312

 

비밀서약이 있었는데 루즈벨트의 비서 윌리엄 하워드와 일본 수상 가츠라는 도쿄에서 1905 12월에 동의서에 사인을 했는데 그것은 미국이 필리핀에 홀로 남을 수 있게 한다면(일본이 필리핀을 떠나고),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밀실회담이었다. 따라서 그것이 일본의 한국 침략의 길을 닦아주게 된 것이다   1343

-> 역시 사용 인터뷰.

카쓰라 테프트 밀약이겠군

 

한국은 외국인을 멀리 했던 긴 기간 이후, 1876년에 고종황제가 되면서, 중국과 일본과 같은 국가적 자격을 갖게 되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에게 보호를 받기를 원치 않았다. 그 중 몇몇은 일본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본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은 1907년에 헤이그에 비밀 특사를 보내고 한국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일본의 보호를 제거하고 한국의 주권을 천명하기 위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했다. 이준 열사는 자살을 하고, 한국은 자주독립국으로 나타나지 못했다. 불과 3년이 지난 후 한국은 일본에 지배를 받게 되었다. 1526

한국은 주권을 가지고 독립된 국가로 남기를 원했지만, 그 당시 강대국들이 그것을 지지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미국을 포함한 국가들은 그들 자신의 이익을 찾고 있었고,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성장하게 되었고, 근본적으로 한국은 홀로 남게 된 것이다. 1550

미국 사람들은 한국의 자주통치권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의 자주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미국이 일본을 지지하기를 원하는 목소리를 뛰어넘지 못했다.  1609

->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다큐하면서 지금 한국의 상황과 19세기 말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조선, 대한제국의 상황이 얼마나 흡사한지 소름이 끼칠 지경.

부디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할 텐데.

지금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남북통일은 좀 요원할 것 같아 그게 제일 걱정. --;

 

1882년부터 조선과 미국은 외교 관계를 시작했고, 한국은 서구로부터 배우기를 원했고 젠틀멘미션이라고 불리는 중국, 일본 등 미국에 사절을 보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여러 가지를 배우려고 했다. 1880년대에 대표단을 보내왔고 마침내 1890년대에 성공했다. 1702

 

미국에게 독립된 자주국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노력했고 그들은 꽤 성공적이었다. 미국에게 호기심 어린 관심과 환영을 받았고 한국 학생들이 처음으로 공부를 하러 오기도 했다. 꽤 많은 숫자였다. 한국은 미국과 생산적인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890년대부터 보호조약이 바뀌기 전까지 말이다. 1751

-> 한 마디로 요악하자면 믿을 놈 하나도 없다.

 

일본이 전쟁에서 중국 그리고 러시아를 패배시킨 이후, 한국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려 했고, 다른 나라들이 한국에 관심을 두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들은 한국의 근대화를 돕는다고 했다.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 이후에 그들이 한국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려는 결정을 내렸다. 조약에는 한국은 독립국이라고 했으며, 일본이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본은 전체적으로 한국을 지배했다. 외교 관계와 내외적 정치가 모두 일본의 지배 아래 놓인 것이다. 한국에서 물론 반대를 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그 당시 많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지정학상 환경이 일본에 맞서 한국을 보호해줄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사실 을사조약을 지지했고, 이 상황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 것이다. 1916

 

다시 시작~

2000 루즈벨트 대통령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이 끼어드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 그는 세계를 우열한 민족과 열등한 민족으로 나누어 세상을 바라보았다. 예를 들면 우열한 민족은 백인 유러피안들, 열등한 민족은 미국 원주민들이다. 따라서 어떤 민족은 누군가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루즈벨트 대통령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2025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중국과의 무역 관계를 유지하고, 한국을 일본에 팔아 넘기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2054

 

한국은 강대국 사이의 외교 관계에서 희생양이 된 것이다. 미국은 미국 고유의 이익에 관심을 두었고, 한국을 일본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중국은 한국을 보호하기에 힘이 약했고, 마침내 1905년 조약이 체결되면서 중국은 영향력이 없어졌다. 러시아는 일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일본은 러시아를 제어하기 위해서도 가장 강력하게 한국을 지배하려고 했다. 2146

영국은 당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고 일본과 동맹을 맺었다. 따라서 러시아는 위험을 느꼈다. 이 모든 강대국의 관계들이 일본이 한국의 지배하게 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2212

 

중국의 떠오르는 파워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미국은 중국의 강해지는 파워와 중국 주위 바다를 둘러싼 군사력 증대에 대해 아주 염려를 하고 있다. 미국의 관심은 이제 중동에서 동아시아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2300

미국은 중국을 포함하거나 그들의 파워가 더 멀리 미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일본과 그리고 대한민국과의 강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기를 바란다. 미국이 그 지역에서 중요하고 긍정적인 파워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2323

-> 빙빙 돌려 말하지만 100여년 전처럼 우리는 미국한테 젤 쓸모가 적다고. 

양자택일의 순간이 오면 미국은 이전과 똑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제발 현실 인식들 좀 해라.

 

최근 상황에 대해? 2350

지난 몇 년간 음한반도 이슈에 관한 진전이 많이 없었다. 북한이 아주 중국과 가까워지고, 중국이 경제적 지원을 많이 해주고, 정치적으로도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 남한과 북한은 아주 어려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중국과는 아주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미국과 중국 간의 입장은 많이 다를 것이다. 결과적으로 상호 관계에 있어서 북한에 대한 많은 진전이 있지는 않았다. 2447

-> 부드러운 표현을 찾느라 애를 쓰시는...

안 돌려도 되요... 우리 외교 대북 지금 ㅄ이에요. ㅜㅜ

 

그러나 한 가지 바뀐 사실은 북한의 리더쉽이 김정일의 사망으로 김정은이 뉴리더로 나오게 되면서 아무도 그가 어떤 지도자인지, 어떤 방식의 개혁을 취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북한이 세계로 어떤 것을 내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남한이나 미국에 어떤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2520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중국의 능력은?  2533

북한은 그들의 강력한 능력을 보여주고, 공식적으로는 김정일 사망 1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미사일을 발사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1998년에 김일성이 사망한 뒤에도 이와 같은 행동을 취했다. 북한에서는 평화를 위한 실용위성 발사라고 했지만, 외부에서는 그것이 미사일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했다. 2603

 

나는 이번에도 둘 다 라고 생각한다. 그들 내부의 사람들을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발사한 것이기도 하고, 또한 김정일의 사망을 추도하기 위해서 또한 외부로 보면 미사일 발사를 통해 그들 스스로의 능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2626

 

중국은 북한에게 핵미사일 실험은 막아야 한다고 했고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해서 비판을 했지만 중국은 역시 북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란다. 북한에 대해 중국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도 협조적이다. 하지만 결국은 중국의 능력이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북한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있는 중국의 힘은 아주 제한적이다. 외부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북한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2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