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의 내한 공연.
정말 길었던 기다림인데 2시간이 눈 깜박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흘러갔다.
1부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라단조.
내 음악취향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듯이 난 낭만파 음악, 특히 피아노와의 궁합은 상극 수준인데 내 3대 회피 낭만 작곡가 중 한명인 슈베르트도 충분히 들을만 했다는 걸로 긴 감상은 생략하겠음.
어차피 그의 음악적 해석에 대한 평가며 분석 등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낱낱이 해부해서 할 테니 나까지 보탤 필요는 없을듯.
그냥 요약하자면... 슈베르트는 피아노에서도 정말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려고 했구나.
실제 공연이기 때문에 집에서 듣던 것과 내 집중도의 차이가 있었겠지만 피아노도 사람처럼 노래를 잘 한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2부는 120% 내 취향인 스크리아빈.
표기법이 바뀌었는지 프로그램에선 스크랴빈으로 나왔지만 여긴 개인 블로그니 그냥 내가 익숙한대로 옛 표기명을 고수하겠음.
첫곡은 피아노 소나타 2번 올림 사단조.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연주.
이런 스크리아빈을 무대에서 실황으로 직접 듣다니... 내가 비교적 착하게 살았구나란 생각을. ㅎㅎ
두번째는 스크리아빈의 12개의 연습곡 Op.8 중 2,4,5,8,9,11,12번.
이걸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지만... 말 타면 호령하고 싶은 게 인간인지라 12개 중 7개를 듣도 나니 못 들은 나머지 5개가 정말로 아쉬워진다.
어떻게 하나도 음이 뭉개지거나 미끄러지는 게 없이 왼손과 오른손이 명확하게 울리면서 그렇게 또 어우러지는지... 미스테리할 정도였다.
2006년과 2009년의 연주도 좋았지만 이번 연주는 내 취향에 더 맞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뭔가 좀 더 명징해지고 좀 더 탄탄하고 깊이 있는 울림의 피아니즘이었다.
예전 같으면 이것과 비슷한 연주의 예나 구성을 찾아서 나름대로 분석해서 해석해보고 어쩌고 하겠지만 이제는 그런 건 안 하고 편안히 즐기기로 했으니 이쯤에서 끝~
앙코르는 키신답지 않게 3곡만(ㅎㅎ) 해줘서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줬지만 혼신의 힘을 다 한 영웅 폴로네즈를 들은 것만으로도 인색한(?) 앙코르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었다.
키신이 치니 쇼팽도 좋구나~
나를 위해 기록을 해놓자면 첫 앙코르는 바흐의 시실리아노, 두번째는 스크리아빈의 연습곡 op.42 중 5번, 마지막은 쇼팽의 영웅 폴로네즈.
금요일에 다소 실망스러웠던 부퍼탈 탄츠 테어터의 풀 문의 아쉬움을 다 날려주다 못해 에너지를 팍팍 채워주는 환상적인 저녁이었다.
다음 번에는 조금 더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말년에 힘 빠졌단 소리를 듣는데도 환상이었던 호로비츠를 보면서 그의 전성기 때 공연장에서 직접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무슨 복이 있었을까 했는데 내가 늙었을 때는 키신을 갖고 자랑하면 될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