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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반성

by choco 2016. 3. 5.


오늘 내가 무지무지하게 싫어하는 편견이 내게도 강하게 잠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다시는 그러지 말자는 의미에서 공개 자아비판.


4시에 오는 전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좀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 앞선 차가 연착을 했는지 막 지하철 역에 도착한 즈음에 전철도 역시 들어오는 시점이었다.

잽싸게 뛰어 올라가면 아슬아슬하게나마 탈 수는 있는 타이밍.

열심히 달려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는데 앞에 선 두 젊은 아가씨들은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꼼짝을 않는다.

두줄로 설 수 있는 넓이라면 양해를 구하거나 아님 빈 옆으로 뛰어올라가거나 할 텐데 여긴 좁은 한줄짜리.

속만 바작바작 태우면서 바로 뒤에 서 있는데 중간 정도 올라가다가 내려오는 사람들 보고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올라가는 시늉을 하긴 했지만 당연히 전철은 막 떠나고....  ㅠ.ㅠ


에스컬레이터에 탔을 때 걷거나 뛰지 말고 서는 건 -한국의 현실과는 맞지 않지만- 안전을 위한 권장 사항이고 전철이 도착한다고 해서 그녀들이 빨리 올라가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탈 수도 있었던 전철을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놓친 짜증이 확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하필 뚱뚱한 것들이 내 앞에 서서' 라는 생각을 해버렸음.

그 젊은 두 아가씨는 좋게 말하면 좀 많이 통통, 요즘 한국의 기준에서 볼 때 뚱뚱했다.


그저 나보다 좀 느긋했고, 아마도 나와 달리 5~10분마다 오는 전철이 아니라는 걸 몰랐을 수도 있었고, 또 서둘러서 길을 비켜줘야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구만.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여자라는 것을 포함해 많은 사회적인 편견에 노출된 약자라는 건 마찬가지인데... 나도 모르게 외모가 주는 인상과 내가 받은 불편을 연관시켜 혐오를 표출한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은 속으로만 생각하고 -아마 얼굴에 표정으로 짜증이 올라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입밖에 내지 않는 자제력은 있었다는 것.


오늘 일을 거울 삼아서 내 안에 생겨난 편견과 짜증을 좀 털어내야겠다.

욕하다가 닮는다고 내가 욕하는 것들과 비슷해지면 안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