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수 셰프의 레스토랑으로 예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와인 한잔 마시면서 식사를 하려면 지갑이 기절하는 소리가 나는 곳이라 내내 눈팅만 하다가 부친의 생신을 핑계로 과감하게 예약.
건물 4층인 걸 모르고 1층에서 한참 찾고 헤매다가 다행히 동생을 만나서 제대로~
예약을 일찌감치 해놓기도 했고 또 평일이라 그런지 자리는 좋았으나.... 실내임에도 너무나 추웠다. 내내 난로 있으면 좀 갖다달라고 할까말까 했을 정도.
파티션으로 실내 구분을 해놨는데 우리 옆쪽 룸(?)에 들어온 일행이 너무 시끄러워서 그것도 살짝 좀 짜증났음. 비스트로처럼 왁자지껄. 댁들만 있는 게 아니라고!!!! -_-;;;;
쉐프 시그니처, 시즌 코스 , w 코스 3가지가 있어서 하나씩 먹어보려고 했으나 그렇게는 안 된다고 해서 부친은 쉐프 시그니처, 우린 시즌 코스로.
먼저 나온 빵. 쫀득하니 식감이 다른 곳의 빵과 좀 다르다.
파프리카 버터. 버터 플레이트가 참 예뻤음.
이날 뭔가 여기가 좀 삐걱이는 날이었는지 아니면 본래 그런지 모르겠는데 버터 좀 더 갖다달라고 했는데 한참 있다가 추가로 요청한 뒤에서 겨우 더 받았음. 저 양으로 볼 때 그냥 1인 1버터를 주는 게 맞지 싶음.
계절 아뮤즈는 하나씩 서빙되어 3가지가 나오는데 동생이 먹느라 깜박하고 3가지 다 있는 사진을 안 찍었음. ㅎㅎ
제일 위에 있는 달걀 노른자 어쩌고는 정말 고소하고 독특한 맛. 바로 위 사진에 있는 비트 어쩌고는 밑에 요구르트가 깔려 있는데 상큼하니 정말 식욕을 돋우는 맛. 저 빈 그릇엔 라끌렛 치즈에 ?? 올려서 구운 어쩌고인데 라끌렛은 집에서 심심하면 해먹는 거라서 우리 입에는 평범.
와인을 가져가고 싶었으나 코키지가 5만원이라고 해서 그냥 여기 하우스 화이트, 레드 반병씩 시켰는데 와인 셀렉팅이 정말 기가 막혔다.
술 좀 마시는 3인 정도가 가면 잔보단 하프보틀 페어링을 하는 게 더 싸게 먹힐듯.
우리 코스의 첫 메뉴인 항정살 샐러드. 구은 가지 위에 항정살 구운 것과 채소, 블루치즈 드레싱을 올린 건데 드레싱이 참 맛있었다.
가지를 저렇게 구워 플레이팅하는 것도 괜찮겠구나 아이디어도 하나 얻었음~
사진이 늦어 잔해만 남아 안 올렸는데 이때 부친은 달팽이와 렌틸콩 소스 & 크로와상이셨음.
그 다음엔 왕가리비 구이. 부친도 마찬가지.
가리비가 크림처럼 녹아내리는, 기가 막히는 구움이었다. 이거야말로 전문가만이 가능한 맛.
난 달팽이가 먹고 싶어서 가리비 대신 달팽이를 달라고 했음. 이게 우리가 항정살 먹을 때 쉐프 시그니처 코스의 첫 요리였음. 렌틸콩 소스 정말 고소하고 맛있었음. 술이 술술 들어가는 맛. ㅎㅎ
이날 모두가 가장 칭찬했던 도미 스프. 굵게 간 후추로 매콤한 맛을 은은하게 냈는데 정말 개운하고 시원.
이때까지 마신 화이트와인 반병이 순식간에 해장되는 느낌이랄까?
우리는 스프 마신 뒤 잠시 대기하는 동안 부친 코스에 나온 랍스터 구이. 잘 구웠음. 고기도 고기지만 이 집은 해산물도 참 잘 다루는 것 같다.
솔직히 스테이크는 고기만 좋은 거 고르면 기본만 지켜도 평균 이상의 맛이 나오지만 해산물을 맛있게 조리하는 게 진짜 까다로운데 그런 의미에서 파인 다이닝 프렌치다웠음.
고기 먹기 전에 입을 씻어내주는 소르베~
예전에 양재동에 아테네던가 아테나라는 프랑스 레스토랑에 갔을 때 중간에 이 소르베가 나와서 왜 디저트가 벌써 나오지? 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 ㅎㅎ 거기도 참 맛있었는데.... 진짜 옛날이구나.
발사믹 소스가 환상적인 동생의 양갈비.
내 입맛엔 미디움이 딱인데 동생은 미디움 웰던으로 할 걸 하고 후회했음.
부친의 포트와인 소스의 등심. 등심이 굉장히 부드러웠던 게 인상 깊었다. 흡사 안심 같았음.
내가 시킨 사프란 소스의 안심. 사르르 녹아내리는 진짜 잘 구운 안심.
작년 어버이날 엘본 더 테이블에선 스테이크 고기가 좀 꽝이라 부친이 무지하게 분노하셨는데 (아직도 거기 얘기만 나오면 불을 뿜으심. 아마 평생 잊지 않으실듯 ㅎㅎ) 여기선 너무나 조용히 해피하게 드셨다.
앞서 자기들이 많이 삐걱거렸다는 걸 눈치를 챘는지, 아니면 모종의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뜬금없이 서비스로 나온 샐러드.
이런 코스요리 먹을 때 솔직히 풀이 좀 많이 땡기는데 감사했음. 앞서 상했던 빈정이 많이 사라졌다.
후식과 차. 커피, 마리아주 프레르 홍차(마르코폴로를 줌). 카모마일티 중에서 선택. 카페인에 약한 나랑 부친은 카모마일, 동생은 마리아주라는 말에 홍차로.
단호박 케이크, 망고 초콜릿 케이크가 나왔는데 코스에 비해서 내용이나 플레이팅이 상당히 부실한 디저트. 화룡정점이 될 수 있었는데 디저트를 보면서 솔직히 속으로 '웽?' 좀 했었음.
쓰다보니 까칠한 것 같긴 한데 전체적인 소감은 만족.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노동의욕을 고취시키는 건설적인 식당.'
현대카드나 하나 신청해야겠다. 고메위크 한번만 갔다와도 연회비 뽑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