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0년을 향해 가는 내 작가 인생에서 살짝 이정표적인 사건이라고 해야할까. 잘 나가는 작가들이 보면 우스울 수 있겠지만 나 나름으로는 의미가 있는 일이라 기록.
처음으로 작년 재방송에 대한 작가료가 입금됐다.
내가 처음 작가 생활을 하던 때에는 드라마 작가도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게 재방송에 대한 이득 분배. 그게 세월이 가면서 드라마는 작가 뿐 아니라 출연자들도 재방송을 할 경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추가 정산이 되는 게 당연한 시대가 왔다. 그 세월이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그건 드라마나 잘 나가는 일부 예능 스타작가의 세상이고 나처럼 그냥 먹고 사는 생계형 비드라마 작가에게는 관계없는 그들만의 세상.
물론 정부 표준계약서에는 비드라마도 재방송에 대한 추가 정산이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걸 요구한다는 건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일반 작가에겐 미운털이 박여 일이 안 들어오거나 짤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따먹을 수 없는 신포도 혹은 독사과에 가깝다. 나도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살았지만 이제 슬슬 작가 인생도 정리를 해가는 단계다 보니 남들은 몰라줘도 나만의 소소한 한 획이랄까,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 + 푼돈이라도 좀 받아보자는 욕심이 결합해서 저질렀다.
이것때문에 방송국에서 확인 전화 오고 할 때 간이 쫄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왕 저지른 거 밀고 나갔고 -이것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방송국은 나를 다시 부르지 않고. ^^;- 진행되면서 올해 작년 재방송료가 입금. 이걸 받고 오랜 거래처가 날아간 걸 생각하면 손해 난 장사지만 그래도 뿌듯~ 이런 건 이제 언제 이 바닥을 떠나도 크게 아쉬울 것 없고 그나마 먹고는 살 수 있는 노땅이 해줘야지 한참 일 하나라도 더 하고 싶고 치고 올라가는 젊은 작가들에게 총대 매라는 건 무리지.
여튼.... 이런 게 쌓여서 비드라마도 재방송 저작권료 지급하는 게 당연한 세상에 오면 좋겠다.
하루에 10명도 안 오는 변방 중에 변방 블로그지만 혹시 이 글을 보고 방법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 있을까봐 간단히 적어놓음.
방송작가협회 회원이 아니더라도 방송작가협회에 저작권 신탁을 해놓으면 매년 정산을 해서 보내줌. 방송작가협회에 전화해서 신탁 업무 담당자와 통화하면 필요한 서류와 절차 등 자세한 내용을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니까 찾아 먹을 수 있는 건 용기를 내어 잘 받아내길.
우울했는데 통장에 찍힌 재방송료를 보니 기분이 좋아지네. 잘 했다. ㅇㅇㅇ.
방송작가협회는 드라마 작가만 챙기지 비드라마 작가에겐 별무소용이라고 했었는데 그 말도 취소. 이럴 줄 알았으면 옛날에 가입이라도 할 걸 그랬다 싶긴 하지만... 이제는 가입 신청서 내기도 웃긴 연차라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