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에노테카에서 좀 충동적으로 구입한 와인. 가격도 꽤 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난 토요일에 새우 먹으면서 뜯었다.
리슬링=독일이라는 공식을 깨고 호주 남부에서 재배된 리슬링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리슬링 포도들이 좀 달달해서 본래대로라면 지나쳐갔을 친구인데 판매하는 언니가 이건 드라이한 스타일이라 입에 맞을거라고 추천을 해서 구입했는데 에노테카의 판매원들의 권유는 믿을만 하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케이스. ^^
신대륙 와인답게 뒤에 자세하게 써놓은 설명을 읽어보자면 라임과 그레이프후르츠의 아로마가 부드러운 꽃향기와 잘 어우러져 나타나고 마지막엔 열대과일맛이 상큼한 레몬향과 함께 느껴질 거라고 하는데 내가 라벨 뒤쪽의 설명을 마시기 전에 꼼꼼히 읽었다면 꿈보다 해몽이 더 좋다는 소리를 했을 거다.
설명대로라면 반드시 마셔보고 싶은 와인인데... 냉정하게 얘기해서 설명만큼의 맛은 아니다. 약간 새콤한 듯 하면서 부드러운 아로마가 감기는 건 사실이지만 내가 절대 미각이나 후각이 아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설명한 것 같은 그런 복잡미묘한 과일과 꽃향기의 어우러짐은 느끼지 못했음.
그러나 설명에 못미쳤을 뿐이지 사실 만족이다~
먼저 뚜껑이 따기 힘든 코르크가 아니라 그냥 돌려따는 마개였다는 것. 리코르킹까지 하고 묵힐 정도의 투자용 와인도 아니고 이렇게 마실 친구들은 대충 2-3년. 길어야 5년인데 코르크로 힘들게 막을 필요가 뭐가 있냐는 노선이라서. 유럽에선 펄펄 뛸지 몰라도 신대륙의 이런 실용주의는 상당히 마음에 든다.
메인이 맛이 좀 강력한 편인 새우기 때문에 병을 따고 향을 맡아봤을 때 살짝 달콤한 향기가 나와서 속으로 아차! 했다. 추천해준 언니의 말을 믿긴 했지만 그래도 맛의 기준은 주관적인데 그 언니 기준에서 드라이한 게 아니었나. 그러면 낭패인데 어쩌나 했었다.
그런데 맛은 향기와 상당히 다른 행보를 보이는 드라이하면서도 목넘김이 좋은 부드러운 맛~ 아주 살짝 새콤한 것 같으면서도 동글동글 쏘지 않고 그렇다고 가벼워서 밍밍하지도 않은 스타일이다. 만약 게와 함께 먹었다면 와인이 밀린다는 소리를 했겠지만 새우와의 궁합은 환상이었다.
와인만 마셨다면 라벨에 설명한 라스트 노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새우란 놈이 힘이 상당히 세기 때문에 거기에 묻혀서 잘 모르겠음. 해산물과 잘 어울린다는 기억을 할 친구다. 가격이 좀 쎘던 걸로 기억하기 때문에 자주 만나진 못하겠지만 충분히 추천은 해주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