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내려간 광주. 마침 시간이 남아서 국립아시아 문화 전당에 들렀다.
운좋게 도슨트 투어를 할 수 있었던 사유의 정원. 시각, 청각, 후각, 촉각까지 인간의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인터렉티브한 현재 예술 흐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전시. 현업에 한참 몸 담고 있을 때면 뭐 하나 건질 게 없을까 신경 곤두세우느라 제대로 즐기지 못 했을 텐데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는 반 은퇴 상태라 유유히 즐길 수 있었음. 사유의 정원 곳곳에 출몰하는 고양이를 찾아내고 만나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이런 전시회 좋아하는 냥집사인 디자이너 친구에게 가보라고 권유했는데... 여기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이 자기에게 일만 시키고 돈 제대로 안 주는, 단물만 쪽 빨아먹는 먹튀를 당했다고. 😑 아무리 고양이가 있어도 그러면 절대 즐길 수 없지. 나중에 알았기 망정이지 미리 알았으면 나도 씁쓸해서 제대로 만끽을 못 했을듯. 다들 일 시켰으면 돈 좀 제대로 주라고!!!!!
이어서 본 전시는 좀비주의. 좀비의 시작부터 최근 크게 흥행한 한국의 좀비까지. 역시 도슨트 투어로 즐겼다. 현대로 올수록 점점 빨라지는 좀비를 시간 순으로 감지하도록 한 아이디어가 좋은듯. 적당히 빨라지던 좀비는 한국에 오면서... 진짜 감당 못하게 속도가 향상. ^^; 바로 위 사진은 초콜릿으로 표현한, 녹아내리는 좀비. 제3세계 어린이 노동을 통해 유지되는 초콜릿 산업을 표현한 건데 좀 찔렸다. 가능한 공정무역 초콜릿으로 먹자고 다짐을 하는데... 쉽지는 않네.
사진에 없는 재밌는 전시물들이 많긴 했는데 좀비로 오면서 에너지가 슬슬 고갈되기 시작했고.
거대한 비디오 대여점 같은 원초적 비디오 본색은 입구 사진을 제외하고 사진도 하나 못 찍었다. ^^; 대여점에서 비디오 고르던 옛 추억이 솔솔 피어오르던 전시였다. 비디오 골라서 기계에 넣고 직접 틀어볼 수도 있도록 했는데 소림축구를 브라운관 TV에 오랜만에 넣어봤다. 그때는 아무 문제 없었던 화질이 왜 그렇게 지직거리고 구린지. 세월의 흐름과 영상 기기의 발전을 갑자기 확 느끼는 시간이었다.
전당 외부의 전시물.
아주 맛있었던 전당 카페. 가격도 그럭저럭 합리적. 컬처샵은 살 거 정말 없음.
가장 보고 싶었던 이 마나스의 길 전시회인데 시간 관계상 이거 하나만 찍고 나왔다.
송정역 시장 1913. 송정시장과 다른 곳이라고 함. 송정시장은 큰길 건너서 반대 방향으로 1KM 정도 떨어져 있다고. 과거에 송정시장 주변 떡갈비가 아주 맛있었으나 뜨면서 맛이 떨어져 광주시민들은 이 근방에서 안 사먹고 외곽으로 나간다고 함.
지나가다 아는척 했더니 슥슥 다가와서 당황했던 냥님. 빈손으로 불렀다고 고양이에게 실시간으로 냥냥냥냥 욕 엄청 먹었다. 😓
시장길 끄트머리에 서울 식당인가??? 어쩌고의 골뱅이 국수. 양도 많고 맛있음. 잔치국수는 6천원, 제일 비싼 이 골뱅이 국수는 8천원. 처음 시장에 들어갈 때는 먹고 싶은 게 엄청 많았는데 얘 먹고 나니 배불러서 식욕이 싹 사라짐.
시장의 저녁 풍경. 광주시에서 청년들 위주로 지원을 많이 했지만 딱히 엄청 잘 되거나 뜨지는 않았다고 함. 그런 것 치고는 제법 복작거리고 괜찮았음.
아침부터 밤까지 강행군하는, 내 수준에서 거의 유격훈련 일정이긴 했지만 중간에 이렇게 좋은 구경과 맛있는 거 먹었으니 괜찮은 시간이었던 걸로. 전라도는 어디를 가서 먹거나 구경해도 대충 중간 이상은 해서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가게 됨.
남(^^)의 돈으로 다닐 수 있을 때 열심히 다녀야지. 예전엔 출장 엄청(+미친듯이) 싫어했는데 요즘은 괜찮아지는 거 보니 나도 늙나보다...... 라고 쓰다보니 그건 아닌듯. 이제는 싫은 사람과는 일을 안 하니까 괜찮다는 게 정답인 것 같다. 돈도 없는데 벌써 이러면 어쩌나 싶긴 하지만 스트레스로 죽는 것보단 덜 먹고 덜 쓰는 게 낫지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