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타 유미 (글), 오바타 다케시(그림) | 서울문화사(만화) | 2007.2.16-17
몇년을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다 봤다. 그리고 결론은 정말 재미 있었다. ^^
시작부터 끝까지 스토리 작가는 일본만화의 전형적인 흥행 공식을 밟아간다. 자기 능력을 깨닫지 못하는 천재 소년. 특별한 계기에 의해 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자기만큼 뛰어난 라이벌과 거대한 산맥들과 경쟁하면서 실력은 일취월장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 그게 내가 본 일본 만화의 기본 공식이다.
그런데 이 공식에 충실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변형을 발휘하는데 그게 재미가 있는 동시에 기대와 살짝 틀어지는, 전형성을 좋아하는 내 스테리오타이프 부분에는 살짝 아쉽기도 하다. ^^
주인공 히카루는 바둑판에 스며 있다가 바둑에 대한 그의 잠재 능력에 의해 깨어난 헤이안 시대의 바둑천재이자 혼인보를 이끌었던 유령과 만나면서 전혀 관심없던 바둑에 눈을 뜨게 된다. 사실상 세계 최강의 고수랄 수 있는 유령 사이의 손이 되어 바둑을 두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바둑을 하기 원하기 시작. 그리고 그가 바둑에 진정한 열정을 갖고 눈을 뜨면서 임무를 다 한 사이는 사라진다.
일본 바둑을 사실상 예술의 수준으로 격상시켰던 슈우사쿠처럼 몸을 내주고 사이의 바둑을 두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긴 했는데... ^^; 그러니까 영혼이 결합이 되어서 둘이 하나가 된다거나 하는. 작가는 소년의 각성과 독립을 원했다. 사실 그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기도 하다. 전형성에서 어느 정도는 탈피한 색채를 보여주기 시작했으니까.
사이가 완전히 떠난 뒤가 2부. 이제 히카루만의 바둑 인생이 시작되는데 이건 1부에 비해 현실적이긴 하지만 조금은 용두사미가 된 느낌. 엄청난 대결을 위해 안배한 걸로 여겨졌던 인물들은 그냥 주인공의 재능을 알아보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정도 끝이 났다. 좀 더 격렬한 대결을 기대했던 라이벌과도 이미 1부 후반부터 협력관계가 되어 버렸고.
바둑판 위를 전쟁터로 여기는 한국의 치열한 싸움바둑과 달리 바둑을 춤이나 그림처럼 일종의 예술로 생각하는 일본의 바둑관이 결국 작품에도 반영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좀 이채로운 일인데 -뭐 아직은 한국의 밑인 일본 바둑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끝까지 현실적으로 가기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대결에 주인공이 한국인 기사에게 진다. 내 20년 만화 인생에 주연이 아닌 조연이 이기기를 바라기는 처음인데 여하튼 바램되로 되었음. ㅎㅎ 일본 만화가가 자국인인 주인공이 패배하고 타국인의 승리로 결말을 짓기는 참 힘들었을 텐데 그런 면에서 만화가나 그걸 받아들이는 마인드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는 이름들이 철자나 음 한두개만 바꿔서 등장하는 것을 보고 실명찾기 게임하는 느낌, 일본 바둑계가 어떤 구조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되는 점에서도 흥미로웠다.
일본 만화 특유의 네버엔딩 스토리가 가능했는데 여기서 정지를 한 건 작가의 결단이 대단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뒷심이 부족했다고 해야할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처음 기획의도보다 축소한 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