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하던 나초 두아토의 공연을 드디어 봤다. 2005년에 멀티플리시티에는 부상으로 녹음한 음성만 들려줬던 이 마성의 게이 아저씨께서 드디어 내한해 농익은 춤까지 보여주셨다.
연출가인 토마스 판두르가 다른 무용수들은 천사의 역할이 요구하는 존재감과 원숙함을 연기하기엔 너무 젊다는 이유로 나초 두아토가 직접 무대에 서라고 권유했다던데 훌륭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나초 두아토 말고는 일단 내 머리속에는 다른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으니까.
ALAS 라는 단어가 상당히 입에 익어서 뭔가 했는데 이게 스페인어로 '날개' 작품의 제목이고 나초 두아토의 의상에서, 또 중간중간 춤 못지않은 비중으로 등장하는 독백에서도 그 의미나 중요성은 드러난다.
공연에 대한 느낌은 '어렵다.'로 요약이 될 것 같다.
3월의 실비 기엠 공연은 엄청 지루할 거라는 예상에 잔뜩 기합을 넣고 갔던 게 허탈할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었지만 이 공연은 반대. 나초 두아토 작품이 주는 그 다채로움과 몰입을 기대하고 갔지만 머리속을 복잡하게 하는 사유와 지루함이 공존했다.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가 끝까지 보는데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했는데 무용 역시 만만찮은 난해함을 품고 있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아주아주 집중을 해서 본다면 안무가와 연출가의 의도를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 그냥 편안한 자세로 즐기기에는 만만치가 않다.
영화를 보고 그 스토리 라인을 머리에 그리고 간다면 그 역시 실망스러울 듯. 이 작품은 그 모티브와 이미지만을 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의 안무가이자 주연으로 출연한 나초 두아토는 '날개'를 드라마틱하다고 자평하지만 글쎄... 드라마틱이란 단어의 범주를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이 평가는 달라질듯.
작품 전반에 관한 부분들은 아직 내 머리속에서 정리가 덜 된 고로 일단 패스.
그냥 춤언어랄까. 움직임과 아이디어 처럼 간단히 눈에 들어오는 부분들에 대한 감상만 정리를 해보자면...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는 있지만 정리는 덜 된 느낌. 한 두번 정도 더 숙고하고 가다듬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물을 이용한 부분은 엄청난 자신감이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자신과 무용수들의 신체 컨트롤에 자신이 있으면 무대를 물바다로 만들어 거기서 새로운 움직임을 도출해날 생각을 했을까? 아차 하면 치명적인 부상이나 실수로 이어질 수 있는데 시도했고 제대로 해냈다. 그냥 물만 뿌리고 끼얹는 수준이라면 진부하다고 했겠지만 물로 덮힌 무대는 물에서만 가능한, 물이 주는 자유를 활용한 새로운 움직임들이 나왔기에 가치가 있었다.
1층 제일 앞열이 비교적 싼 가격에 나왔을 때 신난다~ 그러고 덥석 잡았는데 오늘 가볍게 물벼락을 맞고 왜 싼지 이유를 알았다. -_-;;; 그래도 이 가격에 앞에서 보게 해준다면 아무리 찝찝한 물이라도 맞아줄 수 있음.
신곡이라는 작품에서도 물을 활용했다던데 에이프만이 천과 리본을 이용한 공간을 즐기는 것처럼 두아토는 물을 엄청 좋아하나보다.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1시간 20분이었지만 휴일 저녁을 헌납한 데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무대에서 인사하는 나초 두아토를 보면서 친구들과 나눈 대화의 요점. 매튜 본이나 모리스 베자르가 게이인데는 별 유감이 없는데 이 아저씨가 게이인 건 아쉽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어차피 내가 못 가질 거 세상 여자들이 모두 못 갖는게 나을 수도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좋아졌음. 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