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문고라서 당연히 한국사람이 쓴 것이려니 하고 읽어나가며 '한국인이 일본 역사에 대해 이런 방대한 지식을 갖고 촘촘한 연구를 하다니~' 하고 감탄을 했었다. 그런데 다 읽고나서 보니까 저자가 일본 사람이다. 이번에는 반대로 '일본사람이 자기 국가의 권력구조에 대해 이런 객관적인 성찰을 하다니! 하고 찬탄.'
[#M_별 관계없는 곁다리|less..|작년에 독일 관련 다큐멘터리를 할 때 번역 겸 여러가지 리서치를 도와준 독일 사람이 참고로 보여준 프로그램을 보면서 "너무나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다. 어떻게 이런 걸 전면에 드러낼 수 있느냐?"는 얘기를 했었다.
거기에 대해 일부 동감을 하면서 걔한테 말해줄 수 있었던 건 "너희는 가해자였지만 우리는 피해자였다. 때문에 너희는 그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드러내는 게 금기시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게 선일 수밖에 없었다." 라고 대답을 해줬었다.
협소한 민족주의자 내지 국가주의자의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난 그게 진실이라고 믿는다. 가해자들에게 우리는 피해자야~ 보상해~라는 징징거림이 아니라 그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그 현실을 보여주는 게 바로 기록자들의 의무라고 믿는다.
이 책은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인척 하는 일본인 대다수의 역사관이 깔려있지 않다. 80년대부터 서구의 일본학자들 사이에선 주류적 의견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일본인들은 최근까지 절대 인정하지 않던 일본의 이중적인 지배구조를 건조하게 사실 그대로 서술하고 있다.
기름기와 장식을 뺀 아주 건조하고 담백한 서술은 역사 기록에 기본이지만 불행히도 많은 일본의 역사책에선 찾아보기 힘든 방식이다. 다카시로 고이치가 주장하는 논거에 대한 찬반은 독자 각자의 몫이지만 서술 방식과 풍부한 논거들은 그 자체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얇은 문고판으로선 좀 버겁고 당의가 거의 없는 빡빡한 내용이지만 묵직하니 읽을 거리가 꽉 차있다. 하지만 입문서로서 잡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든다. 일본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수많은 덴노와 쇼군, 막부의 이름을 따라가는데도 정신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일본 역사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유용할 듯 싶다. 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