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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박완서

by choco 2007. 9. 11.
오늘 구리시에 있는 박완서 선생님 댁에 인터뷰를 하러 갔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쑤셔넣어도 넉넉하게 다 들어갈 넓은 집필실과 훤한 뜰이 있는 너무너무 예쁜 노란 집에서 살고 계신다.

성공한 작가의 삶이 바로 저런 것이구나 하는 부러움에 솔직히 가슴이 좀 쓰렸다.  누구는 취재를 받고 누구는 취재를 하고.  그렇지만 70이 넘은 나이에 저런 존경과 여유로움을 얻어낸 건 그녀의 작품 속에서 녹아났던 그런 아픈 세월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겠지.   세상에 공짜란 절대 없다는 신조에 입각해서... 큰 시련없이 평온하게 흘러온 내 삶에 감사하기로 했다.   (이렇게 포기가 너무 빨라서 난 발전이 없는 듯.  -_-;;;)

조용하고 번잡한 걸 싫어하는 노인이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작품과 작품세계에 아주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작가.  그리고 아직도 쓰고 있다.  올 10월에 단편집을 또 하나 출간하신다고 함.  한국전쟁이야 그녀 세대의 모두가 겪은 시련이니 당연하다고 치지만 그 이후 겪은 단장의 고통에 찌들지 않고 그걸 극복하고 아름답게 늙었다는 점에서 참 부러웠다.

매 작품마다 동일작가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변화무쌍한 주제와 문체를 구사하는 황석영 같은 작가도 드라마틱하니 멋지지만 조근조근 비슷한 톤으로 여자와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박완서 선생 같은 작가도 확실히 의미가 있다.   우리 다음 다음 세대에도 박완서라는 이름이 의미를 갖고 남을지는 지금 누구도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다고 봄.

내가 70 넘어도 살아 있다면... 그렇게 넓고 예쁜 집필실과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명망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맑은 정신으로 계속 세상과 공감하면서 그렇게 곱게 글을 쓰고 있으면 좋겠다.  그 글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한번씩 잘 나가는 사람들의 기를 받고 오면 예전에 유리 겔라의 쇼를 보고 잠시나마 숟가락을 구부렸던 것처럼 내가 아주 조금이지만 괜찮아지는 느낌.  ㅎㅎ   나쁘지는 않군. 

이래서 맹자 엄마가 이사를 그렇게 여러번 다녔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