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징크스가 유감없이 위력을 발휘해서 어제는 생일 + 황금같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내내 촬영장에서 뺑이를 쳤다. 아주 맛있는 와인과 살라미를 ㅎ양이 생일선물로 사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접수만 하고 패스. 친구들과 예정했던 생일 식사는 11월로.
비록 그 전에 회의가 끼긴 했지만 그래도 전야제를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보냈다는 것을 올해의 위로로 삼아야겠다. 그리고 2년 뒤 정기 휴가 때는 가능한 이 즈음에 맞춰 유럽으로 가야겠다는 결심도...
내일과 모레 연짱 마감이라 그나마 시간이 있는 오늘 밤 감상이나 올리려고 앉았음.
발레는 8명의 대규모(?) 인원이 함께 관람.
잠이 충분하지 못하면 상당히 까칠해지고 날카로워지는 내 특성상 이날은 아주아주 까칠해 조금만 거슬려고 무지하게 부풀려질 상황이었음에도 오케스트라 반주 말고는 신경을 긁어대는 게 없었던 걸 보면 괜찮았던 공연인 것 같다.
5년 전인가? 초연 때와 안무가 꽤 많이 달라져 있었다는 것이 이채로웠음. 그때보다 줄리엣이 굉장히 적극적이고 강하게 변화했다고 해야하나? 보호받고 사랑받던 조그맣고 수줍은 소녀가 아니라 로미오를 본 순간부터 적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바로 직전 빈 슈타츠오퍼에서 크랑코 안무로 본 로미오와 줄리엣과 자꾸 비교를 하면서 보는 건 인지상정인데... 둘이 같았던 건 다른 안무와 달리 크랑코와 비노그라도프는 양 가문의 싸움에서 방관자적이었던 로미오를 적극적인 대립의 선두에 넣고 있다. 사실 해석적으로는 그게 이해가 된다. 다른 발레에서는 티볼트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로미오를 못 잡아 먹는지가 그렇게 와닿지 않는데 크랑코나 비노그라도프 안무에서는 100% 이해가 됨. 1막 초반부터 그렇게 칼부림을 하던 사이인데 당연하지.
각 장면의 아이디어나 춤은 아름답지만 뚝뚝 끊어져 연결성이나 클라이막스가 약했던 크랑코의 안무와 달리 비노그라도프는 -그리가로비치에게서 살짝 컨닝한 듯한. ^^- 커튼을 이용한 막 전환으로 아주아주 매끄럽게 흐름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유모는 아예 등장시키지도 않고 다른 안무에서는 굉장히 강한 부모나 패리스의 역할을 축소시켜서 가능한 모든 중심을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집중. 춤도 아마 다른 안무에 비해서 꽤 고난이도고 많이 늘렸다는 느낌. 아쉽다면 줄리엣의 황혜민에게는 그게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 몸에 착 달라붙어 줄리엣 그 자체로 연기한다기 보다는 안무와 춤을 제대로 추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듯한 느낌이 군데군데서 나타나 안타까웠다. 물론 아주 심하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고...
엄군의 귀여운 표정과 춤은 여전히 반짝반짝. 황혜민 안티는 아니지만 이 자리에 김세연이 있었다면 둘이 얼마나 근사한 아우라를 보여줬을까 하는 아쉬움이 내내 들었다.
기럭지가 전체적으로 좀 짧고 들쑥날쑥하다는 걸 제외하고 무용수들의 훈련상태나 전체적인 수준은 빈 슈타츠오퍼나 유니버설 발레단이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했음. 기럭지야 하늘이 점지하는 것이니 인간의 영역 밖이고, 수준 높은 외국 발레단 공연을 무더기로 본 직후에 무용수 수준에 대한 불만없 이 국내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러.나!!!!! 오케스트라는 정말 깨다 못해 미칠 것 같았다. 과연 내가 같은 작곡가가 작곡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듣고 있는 것인지 자꾸 의심. -_-; 분명 똑같은 악보를 갖고 연주하는 건데 어쩌면 이렇게 화음 자체가 다른 것인지... 불가사의다. 볼륨이나 표현력이 떨어지는 건 이해한다손 쳐도... 어떻게 이렇게 음정이며 밸런스가 하나도 맞지 않는지. 춤으로 감정을 좀 탈 만하면 절정부에 어김없이 터지는 그 삑사리의 향연에 불협화음들. ㅠ.ㅠ
수원시향에 괜찮게 하는 동기나 선후배들이 꽤 많이 들어간 걸로 기억하는데... 지휘자의 능력 부족인가??? 차라리 코심이 여기 앉았으면 최소한 몇번은 해본 곡이니 이것보다는 좀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내가 코심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조차 못했는데... 인간사는 정말 아무도 장담 못한다. -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