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쇼이 발레단의 지젤 첫날 공연. 작년 백조의 호수 공연 때 2진도 아닌 장장 3진을 데려온 기획사가 이번엔 정신을 차렸는지 첫날 캐스팅의 면면은 화려 그 자체. 그러나 분명 나쁜 무대는 아니었음에도 대단한 감동은 없이 그냥저냥이었다.
이 시큰둥한 반응에 대한 책임의 70% 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에게 있다.
지난주 키로프 오케스트라와 게르기예프의 사운드로(마지막 날은 제외. 신들의 황혼은 기운 빠진 소리...) 귀가 엄청나게 호강해 어지간한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수준 이하였다.
평균적인 코심의 사운드만 내줬어도 이런 험한 말까지는 안하겠는데... 오늘은 과연 연습이나 하고 무대에 섰는지 의심이 가는 삐그덕에 집중력 하나도 없이 호흡도 안 맞아 초보적인 삑사리에 그 빈약한 관악기의 사운드는 정말 불쌍할 지경.
이 부분은 지휘자의 문제도 큰듯. 오케스트라의 역량은 지휘자의 능력에 따라 몇단계가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이 파벨 클리니체프란 지휘자. 간간히 한국으로 오는 재미를 붙인 것 같은데 개런티가 싼가? 이런 평범한 지휘자를 왜 비싼 외화를 주고 데려오는지 모르겠다. 분위기나 사운드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아예 생각도 없고 그냥 박자 맞춰주기 급급한 느낌. 포르테와 피아노가 거의 하나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2막에서 그 요상한 템포. 차라리 더 빨라서 몰아치던가 아니면 느리고 끈끈하게 분위기를 잡던가 하지... 같은 악보를 놓고도 템포에 따라 이렇게 매력없는 연주가 가능하구나 실감. 특히 윌리들의 군무에서는 음악의 도움을 거의 못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나름 열심히 불고 그어댔을 내 동기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서울대나 예종까지도 필요없다. 서울 예고 애들 연습 시켜 반주 시켜도 이 정도는 했지 싶음. 오늘 무대 리허설 했으니 내일은 좀 더 낫겠지. 그나저나 이런 상황이라면 스팔타커스가 심히 걱정된다. -_-;;;
음악이 계속 신경을 거스르니 당연히 집중도 완전 하락. ㅠ.ㅠ 음악 때문에 불안불안하느라 춤에 도저히 몰두할 수가 없었다.
음악 탓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작년 백조의 호수 때는 주연들은 죽을 쒀도 군무의 집중력과 일사분란함만은 인정했는데 올해는 왠지 좀 버벅이고 타이밍을 놓치다고 할까? 음악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모조리 트집잡는 모드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기대와 고대에 마지 않았던 자하로바와 우바로프로 옮겨가자면... 정말 환상적인 신체 조건이다.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빛이 나는 존재. 바로 그런 느낌. 이 두 사람을 보면서 역시 발레는 신이 신경을 좀 써서 만들어 내보내줘야 가능한 예술이란 것을 새삼 실감했다.
자하로바는 발 뒷굼치에 공기 쿳션을 달고 있는 것 같은 가벼움. 1막보다는 2막이 그녀의 스타일이나 분위기에 잘 맞는 것 같다는 느낌. 전체적으로 대단한 발레리나라는 것은 인정하겠는데 지젤에서 받아야할 찐~한 감동이나 짠~한 느낌을 솔직히... ^^;;; 그래도 자하로바의 지젤을 봤다는 것으로 일단 만족.
우바로프는... ㅎㅎ; 공중에서의 동작이 이렇게 멋진 아저씨는 참으로 오랫만. 몸을 아끼는 것인지 아니면 본래 오버하지 않는 스타일인지 한번쯤 과시를 해줬으면 하는 부분에서도 늘상 깔끔하게 마무리. 폭발적인 파워나 그런 것은 없지만 깨끗하게 떨어지는 동작이나 섬세함은 인정해야할 것 같다.
갖고 있는 기량과 능력에 대해선 나무랄데 없는 주역들이었다. 그런데 건성으로 추는 건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 같지도 않다는 느낌. 이건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무대의 전반적인 느낌.
미르타도 잘 춘다. 깔끔하다... 그 정도? 도대체 그녀의 요요함이나 카리스마를 살릴 음악의 완급 조절이 되었어야 말이지. ㅠ.ㅠ 그녀에 대한 평가(?)는 9일날 스팔타커스를 보고 나서 나름 정리를 해봐야겠다.
힐라리온은... 기럭지가 좀 더 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ㅎㅎ;;;; 이건 하늘을 원망하는 수밖에... 북을 들고 추는 힐라리온의 짧은 솔로와 남성 군무를 보며 러시아적 색채가 강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고 무대를 보니 배경이 자작나무 같다. 바실리예프는 독일 라인 강변이 아니라 러시아의 어느 시골 마을을 머리 속에 그리지 않았을까?
바실리에프의 개정 안무라고 안무에 대해 기대를 많이 했는데 내 취향에는 그리가로비치의 안무보다는 이쪽이 나은 것 같긴 하다. 1막에서 가능한 지젤와 알브레히트를 부각시키려는 노력을 한 것 같은데 그건 모두가 그렇듯 큰 성공은 못 거뒀고... 힐라리온의 부각은 눈에 확연히 들어왔음. 그가 뛰어난 발레리노여서 그런지 남성 무용수들의 부분을 손 본 것들이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패전트 파드데를 재안무한 부분에서 남성 4인무들의 기량은... 휘휴~ 역시 볼쇼이구나하는 탄성과 저력을 느끼게 하는 부분. 어쩌면 그렇게 기분좋을 정도로 손발이 딱딱 맞고 정확한 포즈를 취해주는지. 솔직히 1막에서 그 부분이 제일 좋았다. ^^
정리하자면 돈 아깝다고 팔팔 뛸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너무 멋졌어~ 하고 감동의 눈물을 철철 흘릴 시간도 아니었음. 볼쇼이 발레단의 자하로바가 우바로프가 나온 바실리예프 안무의 지젤을 봤다. 그렇게 요약하면 될듯.
바라는 게 있다면 오케스트라가 제발 스팔타커스는 연습을 좀 하고 무대에 서길... 아멘.
오늘 하루 종일 싸돌아다니느라 한줄도 수정 안했는데.... ㅠ.ㅠ 또 밤 새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