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광장에서 또 뭔가 한다고 설치는 통에 또 여유로울 도착을 아슬아슬하게. -_-;;; 요즘 주말에 시내 들어가기 겁난다. 어쨌거나 세이프,
간단히 정리만 하면.
오케스트라. 어제 잠시 약을 먹었던 것인지 오늘 다시 64화음으로 복귀. -_-;;; 가끔 괜찮은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빈약의 극치를 달리는 금관악기 사운드는 차라리 없는 것만 못했다. 지휘자가 인사하러 올라왔을 때 박수도 안쳤다. 박수 받을 자격도 없음.
스팔타커스, 알렉산드르 보로비예프. 열심히 하는 것은 인정하고 크게 흠잡을 것은 없으나 무색무취의 별반 매력없는 스팔타커스였다.
보는 내내 누구를 닮았는데? 고민하다가 2막 끝나고 드디어 찾았음. 이렉 무하메도프와 닮았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한테는 이게 욕이다. ^^;;;-
약간 맹하게 생긴 것. 엄청난 높이, 밍숭맹숭한 해석. 어쩌면 그렇게 나쁜 것과 봐줄만한 것을 함께 닮았는지. 무하메도프보다 좀 더 잘 생겼던데 무엇보다 연기는 그보다 좀 더 잘 하길.
프로필을 보니 아마 이게 스팔타커스로서 그의 데뷔인 것 같은데... 몇번 더 무대에 서고 깊이가 생기면 지금보다는 낫겠지? 캐릭터 해석이 너무나 단선적이고 특징이 없었다. 그래서 더 크라수스에 밀린듯.
크라수스는 알렉산드르 볼코비치.
생긴 것도 약간 비열하고 성깔있게 생긴 것이 크라수스 비슷한데다 캐릭터 표현이나 춤도 딱 그쪽으로. 당당한 로마 장군다웠던 어제 네포로지니와 달리 오늘은 보는 내내 퇴폐란 단어를 떠올렸다. ^^; 1막 연회 장면에서 어제 네포로지니는 그냥 화려한 연회와 여흥이구나~ 그런 느낌이었는데 오늘 볼코비치의 춤과 연기는 룸살롱에서 홀딱 벗고 걸판지게 노는 퇴폐 향락의 도가니였다. '아이, 심심해! 지겨워! 좀 더 재밌는 일 없나!' 이런 외침이 1막 연회에서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크라수스 라인이 정확하게 그려지는 그 공중동작. 몸이 확 젖혀지다 못해 꺾여지는 각도에선 미친듯이 박수를 치고 싶었지만 다들 조용해서 혼자 속으로만. ^^ 어제 크라수스의 매력과 해석도 멋졌지만 이런 임팩트나 모두가 기대하는 정형성에선 오늘이 한 수 위.
스팔타커스를 압도하는 크라수스. 가뜩이나 오늘 스팔타커스가 강렬하지 못한 판에 크라수스의 개성이 너무 강하다보니 두 사람이 함께 무대에 서도 스팔타커스가 아닌 크라수스 쪽으로 시선이 간다. 국립 발레단의 공연에선 크라수스는 조연으로 느껴졌지 단 한번도 주연을 압도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데 아차 하면 스팔타커스가 눌려버릴 정도로 대단한 배역이란 걸 알았다. 어제는 스팔타커스와 크라수스의 기량이 팽팽해서 몰랐는데 오늘은 스팔타커스를 먹었음.
주연을 압도하는 조연은 만화나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것인줄 알았는데 오늘은 몸소 목격했다. 앞으로 종종 만나고픈 발레리노~ 그의 야쉬카나 압더라흐만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음.
프리기아는 니나 캅초바.
역시 딱히 흠잡을 데는 없지만 1막과 2막에선 무난하다 정도의 춤과 연기를 보여주다 3막에서는 확 몰입. 그때 몸이 풀렸는지 아니며 서서히 고조시켜서 3막에 올인했는지 모르겠지만 3막에선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해석과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단히 파릇파릇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직은 젊은 나이니 다음 만남을 기대하면서...
아에기나 역의 마리아 알라쉬.
미르타에서 약간은 밋밋했던 느낌을 확 날려버리는 카리스마틱 아에기나. 어제와 오늘 아에기나는 둘 다 전형적인 요부 스타일로 자신의 매력을 한껏 발휘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면적인 비극의 표현보다는 이런 강렬함이 더 눈에 드러내기 쉽겠지.
나 혼자만의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알라쉬는 음악을 참 잘 타는, 음악적인 발레리나인 것 같다. 아에기나의 모놀로그가 너무나 색정적인 잉글리쉬 호른(아니면 섹스폰? 이제는 귀가 맛이 가서. ㅠ.ㅠ) 솔로, 그리고 클라리넷과 끈끈하게 엉긴 목관악기 앙상블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걸 오늘 비로소 알았다. 멜로디를 기가 막히게 타는 그녀의 춤 덕분에 허접한 반주 가운데에서도 음악을 잠시 잠깐씩 즐길 수 있었음.
그러나 금관악기 나오면 바로 몰입 해제. 어쩌면 그렇게 거칠고 빈약하고 조악하게 따로 노는 사운드인지. ㅠ.ㅠ 속으로 게르기예프를 수백번은 불렀다.
전체적으로 크라수스와 아에기나에 스팔타커스와 프리기아가 밀리는 공연이었다. 그러나 이벤트 당첨된 공짜표였기 때문에 너그럽게~ 군무들도 멋졌고 볼쇼이의 스팔타커스를 언제 또 다시 보랴~ 일요일 오후를 희생한 보람이 그럭저럭 있는 시간이었음.
다만... 오늘 좀 더 감동받을 수도 있었던, 나의 멋진 크라수스가 한껏 매력을 발휘하는 그 1막 1장을 망친 것은 세종문화회관. 처음엔 그래, 그럴수도 있지 했는데 스팔타커스의 모놀로그까지 늦게 들어온 관객들을 끝도 한도 없이 입장시켰다. 땅굴 잡는 두더지 머리를 때리는 뿅망치나 파리채로 그 사람들 머리를 한대씩 쳐주고 싶었음.
1막 끝내고 항의했더니 오늘 20분까지 늦은 관객들 입장시키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함. 세종문화회관이나 기획사인 중앙일보 둘 중 하나가 미쳤나 보다.
그리고 초대권을 엄청나게 뿌린 날 늘 그렇듯 최악의 관객 분위기. 늦게 온 인간들 다 집어넣은 건 세종의 문제라고 치고 간단한 예,
지네끼리 떠들고 "쟤 몸매 죽인다" <-- 물론 나도 이런 소리 한다. 단 공연 끝나고나 내 홈피에. 이게 스팔타커스가 한참 심각하게 모놀로그를 추고 있는데 홀이 울리도록 나와야할 소리냐고! 같은 여자로서 아줌마를 욕하면 안되지만 그런 아줌마는 욕 먹어도 싸다.
물을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시고. -_-;;;; <-- 여기가 영화관이냐고. 중간에 좋은 자리로 옮겨가는 관객은 바로 따라가 잡으면서 음료수 들고 들어오는 건 (손에 들고 들어오더라) 왜 가만 놔두는지. 자리 옮기는 사람만 보이는 눈인가보다.
공연 끝나기도 전에 나가는 사람들. <-- 박수치다 나가는 건 얼마든지 이해. 그런데... 레퀴엠이 시작되는 찰나 군데군데 일어서서 나가는 사람들. 당연 머리를 수그리는 예의같은 건 전혀 없다. 초반을 망치더니 마지막도 망침. 아마 틀림없이 늦게 온 인간일 것이다. 한팀은 늦게 온 인간들. 늦게 들어온 주제에 애는 내내 섰다 앉았다. 그러더니 레퀴엠 직전에 결국 나가더라. 아예 오지를 말지. 으르릉.....
초대권 많이 뿌린 걸 모를리가 없을 텐데 이런 날은 하면 안되는 일들 사전에 방송이나 좀 하지. 최악의 관객과 운영이었음.
쓰고보니 욕이 더 많은데.... ^^;;;;;; 공연 외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나쁘지 않았음~
공연 끝나고 삼정에 갔더니 역시나 일요일은 쉰다. 동행자는 모르지만 사실 전날 토요일에도 삼정에 갔기 때문에 나로선 아쉬움 없었음. ㅎㅎ 뽐모도르도 일요일은 쉬는 걸 알기 때문에 아예 프레스코로 갔더니 보리밥집으로 바뀌어서 개업. 하긴... 그렇게 장사가 안되는데 비싼 땅에 오래 버틸 수는 없었겠지. 세종 근처 식당들이 미어터져도 프레스코만큼은 자리가 늘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선 아쉬움.
광화문 돈가스로 결국 낙찰. 그 집 코돈 블루는 가격대비 최고란 것 재확인. 치즈 탈까봐 덜 튀겨져 흐느적거리는 다른 돈까스 체인점들은 따라갈 수 없는 타이밍. 또 먹고싶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