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스페셜 다큐 때문에 머리 속에 쑤셔넣은 책들 중 하나.
난 현대사 책 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와 교차되는 부분이 없는 고대사나 중세, 근대까지는 감정 이입 없이 볼 수 있지만 내가 직접 체험했거나 그 현장의 증언을 직접 들었던 시대부터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과 대입되어서 나와 일체화가 되기 시작한다.
'만약' 이라는 쓸데없는 가정이 난무하고 내가 이입되는 감정은 내 어렴풋한 기억이 연결된 현대사로 오기 시작하면 증폭되어 정말로 즐겁지 않음.
그럼에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꼭 이렇게 만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사설이 너무나 길었는데 이 책은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과 신문 기사 혹은 당시 지배 세력의 입맛에 맞게 각색된 교과서에서 얻은 오류를 상당부분 수정해 주었다.
부끄럽지만 난 어제까지 신탁통치는 소련이 주장했고 미국은 반대했거나 미온적이었던 것으로 알고 살아왔음.
역사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실감하는 대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돌린 저 머리에 털만 붙은 교육부 관계자들에게... 통신 용어를 날려주고 싶지만 품위 유지상 눈 한번 흘겨주고.
역사 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일반인들이 읽기 편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 책은 그게 되고 있는 것 같음. 거기에 칭찬을 해주고 싶다.
시각도 냉정하려고 하는 노력이 보였고. 난 나와 같은 성향이라도 '책'에서 그걸 강요하면 굉장한 거부감을 느낀다. 책이란 신문이나 언론이 갖지 못한 객관성과 중심을 어떤 경우에서건 갖거나 최소한 갖기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의인 고로. 노골적인 자기 색깔 강요가 없었다는 점에서도 만족.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가 주를 이루기 쉬운 역사 쓰기에서 문화와 사회 전반에 관한 시선이 있었다는 것에는 감탄. 상당히 폭넓은 관심과 시각을 가진 사학자인 것으로 생각됨.
책에 사용된 풍부한 사진과 그림은 작가의 서문을 볼 때 작가보다는 편집진의 노력인 것 같다. 100마디 설명보다 한장의 사진이 더 설득력있고 강렬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배치와 시도였다고 본다.
많은 글자 읽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요즘 세대들에겐 이런 접근이 효과적일듯. 솔직히 나도 나이를 먹을수록 글자 읽기가 싫어서 그림이 많은 책이 좋다. 그렇지만 얇은 책을 받으면 우롱당한 것 같아 욕하는 이 이중성은 무엇인지. ^^;;;
앞으로 많은 현대사 책이 나오겠지만 이 정도로 알차고 재미있게 잘 쓴 책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만은 않을듯. 역시 많이 알아야 쉽게 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감탄에도 불구하고... 가라앉아있던 기억의 앙금이 떠오른 휴우증은 조금 오래 갈 것 같다. 故박종철씨의 사진. 최루탄 파편에 맞아 막 쓰러지려는 故이한열씨를 부축한 친구와 그의 사진. 평양 학생 축전에 참가해 북한 학생들과 강강수월래(인가?)를 하고 있는 임수경씨의 그 앳된 모습. 그렇게 아들을 보낸 부모, 형제는 어떤 심정으로 살고 있을까? 그리고 통일의 꽃으로 불리다 최근 어린 아들을 잃은 임수경에게 그 시절은 어떻게 회상이 될까?
실시간으로 신문에서 봤던 그 일들이기에 십수년이 흐른 세월 속에 정지된 그들이 묘한 아픔을 준다. 이래서 내공 부족한 내게 현대사는 버거운 친구이다. 가능한 멀리하고 싶음.
책/인문(국내)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닷컴 / 2005. 8.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