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박물관 담벼락. 들라크루아 박물관의 충격을 뒤로 하고 잽싸게 중세 박물관으로. 중세 시대 관련 유물들을 모아놓은 곳이라기에 딱 내 취향이다 싶어 갔는데 추천이다.
중세 박물관 건물과 중세 때부터 있었다는 우물이다. 바로 옆에 붙어 있다는 로마 시대 목욕장 유적은 철망을 너무 춤춤히 쳐놓아서 사진을 찍어도 철망에 가려서 영 아니어서 생략.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의 목욕장이나 근교 유적지를 가본 사람들에겐 솔직히 동네 목욕탕을 보는 느낌일 것 같다.
중세 박물관의 컬렉션은 두고두고 음미할만한 수준. 큐레이터가 관광객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을 해주는데 영어라면 대충 따라다녀보겠건만 불어였다. ㅠ.ㅠ 그리고 곳곳에서 학생들이 앉아서 열심시 스케치 중. 영국과 프랑스의 미술관은 이런 부분이 늘 부럽다. 아주 어릴 때부터 세계 최고의 예술품과 함께 하면서 길러진 심미안과 감식안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여자와 유니콘 테피스트리 시리즈를 사진으론 종종 봤지만 어디에 있는지 몰랐는데 여기 있었다. 그 수백년 전 테피스트리가 어떻게 이렇게 보관 상태가 좋은지. 감탄이 나온다. 그리고 원화(라고 해야하나?)의 감동이 무엇인지도 조금은 알 것 같음. 이 테피스트리 시리즈만 갖고도 충분히 60분짜리 다큐 한편이 나올 것 같다. 옆에서 가이드 투어하는 사람들에게 큐레이터가 뭐라뭐라 설명을 하는데 테피스트리 속의 그림이나 문양, 자세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다는 얘기인 것 같다. 테피스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역시 이곳도 조명 조도가 엄청 낮다. 다음에 이런 곳에서 사진 찍을 일이 있으면 야간 모드로 바꿔서 찍어야 하지 싶다.
인간이 아니라 모든 열정이 신으로 향했던 시대였던 만큼 예술품 역시 신에게로 집중, 대충 눈에 띄는 것만 찍었는데도 이 정도이다. 중세 컬렉션은 정말 자랑할만 하다.
굉장히 특이하달까. 잘 보지 못했던 색깔 배치이다. 악이 아니라 선에 해당하는 존재에도 이런 색깔을 쓴 것은 드문 것 같다. 성스러움이 넘치는 다른 그림들과 비교해서 강렬했음.
무기와 조각, 기도함 등등도 많았지만 내가 특히 주목한 것은 십자가 컬렉션. 정말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아름답다. 종교란 것이 인간의 역사와 자유에 많은 해악을 끼쳤지만 그걸 진심으로 믿고 승복한 사람들에겐 또 엄청난 영감과 열정의 원천이어던 모양. 거의 홀리다시피한 종교적 열정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완벽에 가까운 절대미가 그 각각의 십자가에서 느껴졌다. 결국 세상에 의미나 존재가치가 없는 건 없단 얘기인가?
종교적인 성물이거나 아니면 장식적인 용도의 뭔가였던 것 같은데. ^^; 잘 모르겠다. 실물이 끌려서 찍은 것은 확실하다.
중세 미술관에서 내가 특이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 스테인드 글라스. 제일 위 사진의 것은 솔직히 평범한 것들이다. 생 샤펠이나 노트르담 등등 파리의 성당에 가면 눈부신 스테인드 글라스가 넘쳐난다. 하지만 아래 두 개는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 중세부터 거의 현대로 오기까지 서양의 미술에서 애수 띄거나 신비로운 미소는 있어도 환한 웃음이나 밝은 기쁨을 인물에서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펠멜이 특이한 존재일 정도로. 얘기가 샜다. 그런데 이 스테인드 글라스의 주인공들은 중세 미술로는 드물게 밝은 표정을 띄고 있다. 사진상으로 여자는 좀 덜 발랄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훨씬 더 밝고 환한 분위기이다. 저 남자는 쳐다보고 있으면 괜히 나까지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게 신기해서 찍어왔다.
중세에 사용했던 접시들인 것 같다. 실제 식기로 사용했는지 장식이나 의식용인지는 잘 모르겠음. 내가 알기론 중세 후반까지도 딱딱한 빵을 식기 대신으로 썼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세 후반기에 나온 것일 수도 있겠지.
어디를 가나 천장을 좋아하는 나의 괴벽대로 또 한장. ^^ 바닥이나 구석을 잘 꾸며놓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저 높은 곳을 어떻게 저렇게 섬세하게 만들어놓을 수 있었을까? 감탄이 나온다.
4선보를 보고 옛 정(?)을 생각해서 또 한 커트. 그런데... ㅠ.ㅠ 이제 저 악보를 어떻게 보는지도 가물가물이다. 중세 음악하고 종교음악 빡세게 한학기 배웠건만... 그건 다 어디로 날아가고. -_-;;; 그래도 2년 전 노트르담 갔을 때만 해도 4선보를 읽을 수는 있었는데 이제는 그나마도 헷갈린다. 2년 동안 뇌세포가 많이 죽었나보다. -_-a
이건 중세의 갑옷.
이건 중세의 방패. 옆에 엄청 많이 걸려 있었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이 친구 하나만 찍어왔다.
이렇게 박물관 문 닫을 시간까지 미적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중세 박물관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퍼뜩... 돌아가면 바로 조카 하나는 돌, 하나는 백일이고 또 인사해야할 집 아이도 대충 근처가 돌, 또 친구가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 상기. 다시 라파예트로 돌아가 아기옷들 1차 쇼핑 및 찜하기. 아기옷들이 정말 예쁜게 많다. 내가 애가 없기에 망정이지 있었거나 아니면 내가 정말로 예뻐할 직계 조카가 있었으면 아동복 매장에서 파산했을 듯. 너무 작아서 인간의 옷이 아닌 것 같다.
돌아와서 저녁은 역시나 차이나 타운에 있는 tokyo choicy라는 일식집에서 초밥과 김밥, 꼬치 정식으로 해결. 여기 차이나 타운에서 가장 신기한 것은 분명 차이나타운이건만 중국식당보다 일본과 베트남 식당이 더 많다. 그리고 일식집 주인 중에 일본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 중국 사람들이 한다. 또 이태리와 인도 음식점도 있음. 희한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