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가 상당한 뮤지컬이라 본래 초대권이 돌지 않는 건데 오늘 토고전에 이 뮤지컬도 무릎을 꿇었다.
동행자는 월드컵을 보지 않을 권리도 달라고 절규하는 선배 언니. ^^ 다른 때 같으면 공연 끝나고 충무 아트홀 바로 건너편에 있는 떡볶이 골목에 들러 즉석 떡볶이를 먹고 왔을 텐데 강제로 축구를 봐야 하는 그녀가 너무 불쌍해서 집으로 곧바로 귀가.
그녀는 축구를 엄청 싫어한다. 2002년에 월드컵을 피해 이태리로 여행을 갔을 정도. 나름 머리를 썼지만 축구를 너무 싫어하다 못해 정보마저 부족했던 그녀가 몰랐던 것이 이태리가 한국보다 더 한 축구팬들의 나라라는 것. ㅎㅎ
거기서도 축구를 피하지 못했다고 울부짖으며 전화한 전력의 소유자.
요즘 밥벌이용 글을 계속 쓰다보니 글쓰기에 좀 지친 관계로 간단히 감상.
남녀와 사랑, 결혼에 관해 배를 잡고 웃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뮤지컬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원작을 사왔다는데 이런 가벼움 속에 많은 성찰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각본가에게 감탄. 그리고 그걸 멋없이 가져다 번역하는데 그치지 않고 너무나 맛깔스럽게 번안을 해준 번역자와 한국측 각본가에게도 박수!
사랑을 찾아 헤매는 남녀들, 결혼과 출산. 늙음에 이르기까지 옵니버스 형식으로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나이와 상관없이 남과 여는 서로를 계속 찾아 헤매고 필요로 한다는 게 궁극적인 메시지인 것 같음.
이렇게 가볍게 즐거우면서 가슴을 팍팍 찌르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부럽다.
무대는 큰 돈 들이지 않고 심플한 가운데 암전과 4명의 배우들이 계속 역할을 바꿔가면서 펼치는 내용.
이전까지 남경주는 거품이 많이 낀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돈값을 충분히 한다는 걸로 결론 변경, 분명 가수로서의 파워는 요즘 치고 올라오는 젊은 배우들에 비해 떨어지지만 무대에서 갈고 닦은 세월의 노련함과 관객을 끌고 가는 능력만큼은 이제 인정해줄 단계에 오른 것 같다.
다만 아무리 대사와 내용이 웃겨도 배우 자신은 그걸 극복해야 하는데 가끔 자기가 웃겨서 감당 못하는 부분이 좀 거슬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