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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뮤지컬

위키드(2012.8.14)

by choco 2012. 8. 15.

영국에 갈 때마다 요상하게 순위에 밀리거나 꼬여서 못 봤던 위키드.  글로벌 어쩌고가 좋은 거라는 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오리지널 캐스팅의 공연을 만날 수 있을 때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물리친 서쪽 마녀와 도로시에게 마법구두를 선물해 준 남쪽마녀(였던가?)의 이야기 위키드.  화려한 무대와 주연진들의 연기, 노래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찬사를 들었고 내용도 재미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정말 이 정도까지인줄은 몰랐다.

 

무용을 하던 이모 때문인지 덕분인지 어릴 때부터 자리를 채우러 공연장에 드나들기 시작해 이젠 '수많은'공연을 봤다고 해도 뻥은 아니다.  이날 이때까지 훌륭한 춤이나 음악, 연기에 감탄하고 때론 감동까지 하는 순간이 수없이 있었지만 단 한번도 '대본'에 전율을 느낀적은 없었다.

 

무대 예술이라는 게 짧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펼쳐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말까지 달려가는 과정에서 양해해야 할 것이 많고, 공연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피차 양해 각서를 쓴 것과 다름이 없다.  때문에 내용의 빈틈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수준이 아닌 한 거품을 물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 위키드는 내 공연 관람 인생에서 처음으로 대본에 감동을 한 작품. 

어떻게 단 2막 안에 관객들이 거의 눈치 채지 못하고 수많은 복선들을 깔아 놓고 그걸 적절한 시점에서 효과적으로 거둬들이고 뒤통수 치는 반전까지 준비할 수 있는지.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그 인물들이 하나하나 다 당위성을 갖고 연결이 될 수 있는지.

연극도 아닌 뮤지컬에서 이렇게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다 입체적인 것 역시 처음이었다.

 

그리고 스토리와 대사는 그냥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볼 수도 있지만 감상자 개개인의 경험과 그 사회에 따라 각자 다양한 감상과 해석이 가능하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다중적인 의미까지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클래식, 혹은 명작의 반열에 올려도 될 것 같다.

 

원작자의 치밀함과 상상력에 부럽다는 감정이 진심으로 폴폴폴.

난 지극히 현실지향적이고 자기 만족이 강한 타입이라 누굴 부러워하는 일이 별로 없는데 이 작가는 내 취향에다 또 내가 지향하는 쪽으로 너무나 이상에 근접해 정말 질투가 마구 샘솟는 경험을 참으로 오랜만에 했다.  

원작소설 작가 그레고리 맥과이어와 극본가인 위니 홀즈맨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꽉꽉 채운 별 다섯개!  

 

위키드 책을 구해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