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무진들은 뭐랄까... 냉정하게 느낀대로 말하자면 집중력이 현저하게 부족했고 솔리스트들은 메르세데스와 에스파다를 제외하고는 국내 UBC 의 솔리스트보다 잘 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천하의 ABT니 능력은 비슷하거나 위일지 모르겠지만 너무 대충 한다는 느낌. 특히 3막의 그 요란뻑적지근한 체리핑크 코스츔을 입은 여자들! "너희들 밸런스 정확하게 좀 잡고 진짜 제대로 하지 못해!" 라고 소리를 버럭 질러주고 싶었음.
만약 전체가 이랬다면 계속 버럭버럭거리고 있겠지만 에단 스티펠과 질리안 머피가 나머지 군중들의 모든 지를 사하게 해줬다. ^^
1막에서 에단 스티펠은 진짜 노장의 노련미는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얄미울 정도로 영리했다. 살짝 실수한다.....는 느낌이 있으면 적절한 시점에서 점잖은 발레 관객들의 리액션을 끌어낼 정도로 무대를 쥐락펴락 하는 능력을 백분 활용하면서 힘을 아끼면서 움직인다. 그리고 1막 마지막 부분에서 그 모았던 힘을 확 터뜨려서 최대한의 호응을 이끌어낸다. 1막의 꽃인 원 핸드 리프트에서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잘 하는 척 그 여유만만하게 박수까지 유도해내는 커플이라니. 긍정적인 의미에서 그래 너희 참 잘 났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날 시오마라 레이즈와 코르네흐의 무대를 봤던 ㅇ씨는 1막의 테크닉은 낮공연 커플이 훨씬 좋았는데 무대 장악력이나 전체적인 매력은 스티펠과 질리언 머피 커플이 훨씬 좋다고 역시 발레는 테크닉이 모든 게 아니여~를 연발.
2막은 요정 여왕 역할을 맡은 무용수의 그 놀라운 몸매와 멋진 기럭지가 만드는 춤과 대조되는 큐피트의 깜찍한 솔로의 대비. 선술집에서 에단 스티펠의 능글맞은 연기를 보면서 즐겼다고 보면 됨. 그다지 큰 인상은 없었다.
3막 결혼식 파드데는 사실상 그랑 파드데 하나가 중심이 되는 막이고 나머지는 자그마한 솔로들이 끼어들어가는 형식인데 앞서 말 했듯 진짜 ABT 단원인지 의심되는 사람들이 있어서 좀 깨다가 주연 커플의 그랑 파드데가 모든 불평불만을 진화시켰다.
에단 스티펠은 이때도 첫번째 바리에이션에는 몸을 아낀다는 느낌. 좀 오버를 해줄마도 한데 딱 정석대로 움직였다. 약간 실망을 하려는 찰나 키트리의 마지막 바리에이션에서 질리언 머피가 우리 모두를 기함시키는 놀라운 훼떼를 선사.
질리언 머피의 별명이 '미스 터너'라고 했을 때 저게 뭔 소린가 했는데 이제 나도 그 별명에 100% 동의. 내가 실제로 본 훼떼 32회전 중에 최고로 난이도가 높은 훼떼를 선보였다. 초반부에는 트리플 턴을 몇번씩 넣어주고 후반부에까지 더블턴을 중간중간 넣으면서 돌고 있다. 누군가 4회전도 넣었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건 솔직히 확신을 못하겠다.
더 죽이는 게 사실 훼떼는 그냥 정자세로 32회전을 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돌면서 팔을 조금 움직여주는 것도 - 국내 발레리나 중에서는 유일하게 김지영씨가 팔동작을 다채롭게 바꿔가면서 훼떼를 돈다- 힘든데 부채질까지 하면서 트리플 턴을 돌아대니 이건 당연히 기절.
오래 전에 김지영씨가 백조의 호수에서 흑조 바리에이션 중간에 3회전을 두번 넣었고, 막판에 좀 비틀하긴 했지만 김세연씨가 4회전을 넣었을 때도 엄청 감동했었는데... 그 이후 정말로 오랜만에 입이 딱 벌어지는 -만화에서나 등장할- 훼떼를 눈앞에서 목격을 했다. 니나 티모페예바가 전성기 때 컨디션 좋았던 공연에서 32회전 모두를 더블턴으로 돌고 그것도 모자라 중간중간 4회전을 넣었다고 하던데 그것에 필적할 유일한 전설은 질리언 머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인정하기 싫지만 현역 중에 최고의 '미스 터너'는 질리언 머피인듯.
티모페예바의 32회전 더블 턴은 영상으로 봤으니 열외로 하고.... 내가 실제로 본 훼떼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것이었고 질리언 머피가 컨디션이 좋은 날 또 만나는 일이 없다면 이 정도를 실제로 보는 건 힘들 것 같다.
이렇게 32회전으로 질리언 머피가 혼을 쏙 빼놓자 점잖게 가던 에단 스티펠도 갑자기 대결모드로 돌변. 마지막 삐루엣에서 중간중간 점프를 넣어주는 무시무시한 동작으로 또 엄청난 박수를 자아냈는데... 기술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우아하거나 멋지다기 보다는 좀 우스운 동작이었음. (쏘리 에단) ㅎㅎ
질리언 머피가 입단하자마자 에단 스티펠이 꼬셔서 -그러나 에단은 죽어도 1년 뒤부터 사귀기 시작했다고 우기고 있음. 왜냐면 그가 처음 꼬셨을 때 질리안 머피는 미성년자였거든. ^^;;;- 둘이 오랫동안 사귀고 있는 관계라 그런지 키스 장면이며 곳곳에서 커플 특유의 아우라가 비쳐 더 좋았던듯. 마지막에 꽃을 받자 남친에게 주는 염장질까지. -_-+++
객석 반응이 좋아서 그런지 커튼콜도 엄청 오래 해주고 마지막 인사 때는 멋진 모습으로 튀어나와주는 센스까지. 역시 스타는 괜히 스타가 아니다. 그래서 버벅거리는 군무와 삑사리 내던 드미 솔리스트들은 다 용서를 받았다. 주연을 제외한 캐스팅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투우사 에스파다는 마르셀로 고메스가 아니었나 싶기는 한데 확실치는 않음. 이 아저씨의 오네긴 데뷔 스토리도 진짜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데... 언제 오네긴을 한번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ㅇ씨 덕분에 r석에 앉아서 보는 호사를 누려서 더 생생하게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듯. 여하튼 어제는 팔자에 없이 시작부터 끝까지 럭셔리였음. ㅎ양이 초행길에 새차 냄새가 빠방하게 나는 새로 뽑은 벤츠를 끌고 나온 덕분에 면세점 -> 세종 -> 우리집까지 벤츠로~ 근데 야간운전이 처음인가 두번째인 ㅎ양이 비까지 오는 초행길 운전에 공포에 질려 버벅이다가 세종에서 직선코스인 우리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헤매서 후암동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는 전설이. 살짝 긋기만 해도 수리비가 100만원이 기본이라는 얘기에 모두 사람은 걱정 안하고 차의 안위만을 걱정. ^^;;;; 진짜 버라이어티한 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