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KBS홀에서 하는 연주를 가려고 했는데 여차저차 길게 쓰기 귀찮은 사정으로 인해서 간만에 예당으로 고고~ 콘서트홀에서는 이 연주가, 바로 옆 리사이틀 홀에서는 친구의 독주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공연 예매를 안 했어도 어차피 19일은 예당에 갔어야 하는 운명이었군.
함신익 지휘에 바이올린 협연은 김규영.
1부 브루흐 바협 감상을 최대한 간단하게 끄적이자면.... 매끄럽기는 했지만 브루흐에서 기대되는 예리함이나 폭발력은 약했다... 내지 많이 모자랐다 정도. 오케스트라야 합창을 위해서 힘을 아끼느라고 관쪽은 아예 수석들이 나오지 않았으니 이해를 하겠지만 협주자는 왜?
여자 협주자였다면 힘이 딸려서 그러려니 하겠는데... 김규영씨는 상당히 여성스러운 소리를 내고 음악도 전반적으로 굉장히 아카데믹하다. 취향의 문제겠지만 바이올린에 있어서만큼은 오이스트라흐나 젊은 시절 날이 시퍼렇게 선 정경화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고로... 내게는 좀 약했음.
2부는 단골 메뉴인 베토벤 9번 합창. 역시 함신인 지휘에 소프라노 김은경, 메조 이아경, 테너 김남두, 바리톤 고성현. 국립합창단과 안양시립 합창당 출연.
역시 간단하게 하자면, 지휘자에게는 미안하지만 키타옌코가 많이 그리웠다.
브루흐 때 힘을 아껴서 여기에 쏟아부운 것까지는 인정하겠는데... 폭발력은 있었을지 몰라도 다듬어지지 않은 생소리가 많이 거슬렸다. 키타옌코라면 피아노는 더 정교하고 작았을 거고 포르테는 더 크면서도 훨씬 다듬어진 소리를 내줬을 텐데... 똑같은 오케스트라인데도 사운드 전체를 쥐락펴락 몰아치는 힘이나 그 폭이 많이 줄어든 걸 보니 슬펐다.
합창단은 그럭저럭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정도. 소프라노와 메조 소프라노도 그럭저럭. 트럼펫처럼 3층까지 확 찔러들어오는 바리톤은 정말 모처럼만에 시원스럽고 만족스런 솔로였다. 소리가 크고 좋은데다 음정까지 맞아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테너는 소리의 질은 좋은데 그 주변에 퍼지는 음성이지 좍좍 멀리까지 뻗어나가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1층에서 들었다면 소리 정말 죽이네~라고 했을지 모르겠지만 3층에서 들을 때는 힘이 좀 약했음.
뭔가 조금만 더 몰아쳐서 임계점을 확 넘어줬으면 하는, 그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다가 확 넘어가 몰아칠 거라는 기대감이 끝까지 충족되지 않아 좀 김이 빠졌지만 그래도 간만에 9번을 직접 들었다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
[#M_별 관계없는 개인적인 잡담. |접기|사실 이 곡은... 베토벤 9번 실황에 있어서는 내가 궁극으로 모시는 푸르트뱅글러 선생의 연주를 들어도 완벽하게 즐기지 못한다. 한때 이 업계에 있었을 때 하도 스트래스를 받아서 내가 아마도 죽을 때까지 마음 편하게 즐기지 못할 곡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9번 합창이다.
모짜르트는 협주곡 2개라도 써줬지만 이 베토벤 아저씨는 솔로곡은 하나도 안 써준 주제에 실내악이나 교향곡에서 바순을 그야말로 원수라도 진 것처럼 미친듯이 잡는데 그 극강의 궁극점이 바로 이 9번 4악장의 바순 솔로이다. 모두들 우~아하게 ODE JOY의 테마를 연주하는데, 헷갈리기 딱 좋은 엇박자에 싱코페이션으로 이어지는 솔로를 구겨넣어 혼자 딴소리를 하게 만드는 것은 무슨 심통인지. 이거 한다고 하면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솔직히 잠도 잘 안 왔었다.
이건 오케스트라 초짜도, 짬밥 수십년도 똑같이 받는 스트래스. 이걸 매년 하고 계신 내 첫 선생님께서 지금 얼마나 긴장하고 계신지 1악장부터 함께 떨면서 반쯤은 같이 연주하는 상태라 4악장 솔로 끝나고는 내 목이 다 뻐근. ^^; 기억 상실증에 걸려 내가 뭘 했는지 잊어버리지 않는 한, 아니 그러더라도 이 곡이 나오면 난 무의식중에 긴장하면서 손가락을 움직일듯.
프로그램 산 걸 보니 2008년 KBS 정기 연주회들 안내가 있는데 5월에 밀란 트로코비치가 왔었구나. 알았으면 가봤을 텐데. 밀란 트로코비치. 정말 같은 악기를 하고 있는 내가 밥 먹고 숨 쉬고 사는 걸 부끄럽게 하던 연주자였다. 한숨 돌리면 이 아저씨의 생상을 좀 틀어봐야겠다.
KBS 연주에 가면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늙었는지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한데 이번에 보니 동기며 후배들이 많이 없어졌다.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까 교수로 많이들 빠지셨군. 좋겠다. 특히 이00. 대학원 시험 때 난 붙고 걔는 떨어졌는데 한예종 교수라니... 진짜 인간만사 세옹지마로구만. ㅠ.ㅠ
쓰고 나니 투덜투덜이었지만... 사실 취향차만 제외한다면 다들 들을만한 연주였고 또 귀걸이에 쿠키에 책까지 얻어 왔으니 아주 수지 맞는 하루였다. 콜레스테롤 어쩌고 하면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반을 먹었음. -_-;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군 점심 모임에는 선물받은 새 귀걸이를 하고 가야겠다~ ^^
선물 주신 분들 모두모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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