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마감이 다가오면 딴 짓이 하고 싶은 건지.... -_-;
어쨌든 오늘까진 놀아야지~ ^^
어찌나 바쁘신지.
세계 평화시인대회 때 잠시 짬을 내어 인터뷰 해주셨다.
한쪽 귀가 잘 안들리시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정정+짱짱.
YH 여공 사건에 이분이 관여되었다는 것도 이날 인터뷰에서 처음 알았다.
시랑은 전혀 친하지 않지만 만인보는 한번 사서 읽어봐야겠다.
2009. 이때도 고생을 많이 시키셨지만 그 이후에 또 이분을 모시고 다큐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다들 죽음이었다. ㅎㅎ; 촬영 따라간 작가는 머리통을 한 대 얻어맞았다는 전설이...
0021 질문
0032 어 우리에게는 우리 한국인에게는 평화라는 말이 입가에 늘어붙어있는 말이 아니라 심장속에 붙어있는 말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현대사 100년동안 갈망해온것이 평화였습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우리는 늘 불안가운데서 지속을 해왔습니다만은 아직도 완성되있는 가치가 아니죠
0117 또 우리는 우리만의 평화를 염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세계 여러지역들의 평화, 그 고유의 평화가 골고루 이루어지기를 목마르게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가장 절절한 평화의 요구장소인 한반도에서 세계 여러나라 시인들을 불러서 함께 평화를 이야기하고 평화를 노래하고 하는 이 시인의 축전 에는 다른 의미가 있지 않고 내가 이제까지 얘기한 의미가 있다고 할수 있죠
2009. 너무 지쳐서 무작정 휴가를 잡아버린 터라 포기했던 팔레스타인 관련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그 PD랑은 정치 성향이 맞아서 결과물이 항상 즐거운데... 그녀가 그 다큐에 던졌던 화두가 '평화' 였다. 가해자인 이스라엘인들도, 또 피해자인 팔레스타인 인들도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평화를 원한다'고 답을 했다. 아마 우리 이상으로 그들의 심장 속에도 평화에 대한 갈망이 클 텐데... 과연 양 민족이 가진 그 평화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큐를 보면서 고민.
그리고 이때만 해도 우리도 어느 정도는 평화를 얘기하고 축제를 할 자격을 얻었다는 자부심을 가졌건만... 2009년의 한반도는... 경제 뿐 아니라 평화에 대해서도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리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이 생긴다.
0212 질문
0230 내가 1950년대를 하나의 집단전 사회 자살이라고 쓴 것은 그 시간 그 공간의 처절성을 현대화 시키기 위해서 였었죠 아주 오래전에 쓴것입니다 우리시대는 전쟁에 먹었고 또 전쟁이 우리를 먹어버렸던 세대입니다
0301 나는 내 동세대의 절반가까이가 죽어버린 나머지로써 살아남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죽은 그들에게 지울 수 없는 부채가 있습니다. 흔히 말해 원죄의식 이라는것이죠
0327 그래서 그들에 대한 진원도 필요하고 또 살아남은 자들의 가치를 재연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1950년대는 산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산자를 포함한 죽은자들의 이야기까지도 내포하고 있지않을까 이야기하고있는것인데 그냥 나는 이제는 이런건 옛날일이 됬으니까 잊어버리고 싶은데 출판사 친구들이 이따금씩 나를 긁어대가지고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내게 되고 그래서 냈습니다. 그런데 나는 참 거절이 약해요. 그래서 냈습니다
--> 부채의식. 갑자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제는 잊고 싶다는 말... 김지하 선생도 같은 소리를 했는데 너무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일까? 하긴 징글징글하기도 하겠지.
0420 질문
0440 내 문학의 고향은 폐허야 그말은 내 태어난 고향 항구는 폐허가 되버렸고 내가 서울에 올라왔을때 서울은 억새풀만 우거져 있었고 벽돌조각만 널려있었고 함부로 얘기하면 아무데나 오줌을 누어도 될정도였고 그 폐허에서 임시 가건물이 바라크가 세워지고 구호물자 표지, 포장지로 이런걸로 어떻게 지붕만들고 그런데서 살기 시작하고 술집도 당연히 노점, 드럼통 하나 놓고 거기에다가 막걸리 놓고 술마시고 비가 오면 술을 마시는 사람도 비를 맞고 막걸리도 비를 맞고 막걸리 파는 주인도 비맞고 그렇게 시작했죠 그래서 내고향은 폐허라고 할수 있습니다 0556 그렇게 이 폐허에서 하나둘 건물을 짓고 도시를 세우고 옛날의 거리를 회복하고 그래서 오늘날 명동도 있고 세종로도 있고 종로도 있고 그랬어요 근데 옛날에는 이것이 종로인지 이것이 을지로인지 모르는 상태였죠
질문- 서울의 봄 이후 투옥된 상황?
0640 아니요 나는 뭘 잘 알고 와야지 --> 다들 주루룩 앉아서 학교에서처럼 혼났다. ㅠ.ㅠ 필요한 것은 한 부분이거든요... -_-;;; 그런발언을
나는 1970년대부터 감옥을 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70년대 두 번을 갔고 처음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두 번째는 국가 보위법 위반 그게 YH사건이라고 있습니다
0712 그래서 이제 노동자들이 야당당사를 가게 만든 장본인의 하나가 나에요 김영삼 총재를 만나가지고 그때 보냈어 그래서 그때 YH사건이 발달해서 부마항쟁으로 하고 그래서 이제 박정희라고 하는 사람이 이세상에 사라지게 됬죠
--> 이건 우리 중 누구도 몰랐던 사실. 70년대부터 투사로 나서신 건 알고 있었지만 YH사건의 중심에 서계셨던 것은.... 인정한다. 공부 부족이다. -_-;
0739 그 이후에 바로 그 공간이 서울의 봄이었습니다. 근데 서울의 봄이 아니라 서울의 겨울이었습니다. 뭐 하나 가능성 이 없고 내가 시를 하나 발표하려고 해도 내이름을 바꿨어요 다른 이름으로. 또 그이름도 그쪽에서 알아볼까봐 다른이름으로. 이런 정도로 가혹한 겨울이었죠 그걸 이제 사람들은 서울의 봄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물론 프라하의 봄 이런걸 옮겨다가 비유적으로 쓰는건데 서울의 봄이 아니었습니다 겨울이었죠
0824 근데 그 겨울이 더 심화가 된 것이 신군부가 출연해서 전두환정권이 태어났죠 그렇게 되니까 나는 그와함께 내란음모죄로 다시 도 감옥에 기어들어갔었고 그대는 우리가 극한상황에서 언제 어떻게 처리될줄 모르는 생명의 경각속에 있었죠 그대 육군교도소 특별감방에 갇혀있었는데 마침 내가 들어갔던 방이 박정희 대통령을 쏴버린 김재규 라는 사람이 있었던 방이에요 7호실인데 그때 내가 들어가니까 육군 소대관이 헌병 대리인인데 아 이방에는 역시 심각한 사람이 나가고 심각한 사람이 들어오는군요 라고 한 기억이 납니다
0931 그리고 내가 들어갈때까지는 공간이 있어 얼마동안. 김재규는 얼마동안 거기서 살다가 서대문으로가서 교수형을 새벽에 당했죠 그 후에 그 빈방에 내가 들어갔죠 그때는 우리는 살지 죽을지 이런걸로 지금같으면 도가 튼건데 그때는 내 생명이 어떻게 될줄은 전혀 분간할 수가 없었고 그때는 내가 시간을 한시간 두시간 지난지 아는 것은 그 공간은 보통 일반교도소의 감옥이 아니라 아주 밀폐된 사진 암실현상하는 암실같애 불꺼지면, 철창이 없습니다 불을 꺼놓으면 깜깜한데 앉아있어야 되요 이런데 앉아서 뭘 하냐면 구상하는거 그런 것이 구원이다 나를 이겨내는 살려내는
1039 그때 내가 살아서 나가면 이런걸 쓰리라 하는 구상. 구상이 나를 구원해준거야 그래서 서사시 백두산 구상했고 이거는 전체 우리민족이 우리민족이 제대로 살지 못하게 됫을대 독립운동을 하는걸 형상화해야겠다는 거대한 집단의 동작을 그린것이고 그게 백두산서사시 전 7권으로 끝냈습니다.
1113 그때 이걸 구상했고 아니다 이 전체가, 집단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얼굴을 그려야겠다 그의 간은 그의 겨드랑은 어디에 붙어있고 땀은 어디나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많이 흘리고 어떤 사람은 힘이 세고 이런 어떤 하나의 개별체들의 독특한 삶을 형상화해야되겠다 그게 만인보였습니다.
--> 서울의 겨울. 전두환. 2부의 이 시기를 다룰 때 난 냉정해지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야할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 말기를 국민학교 시절 잠깐 경험했을 때는 일방적인 주입을 거의 비판없이 쏙쏙 빨아들이던 시기였고 또 박정희 아니었으면 돈 없고 빽없는 가난한 농민 자식이 절대 공무원 같은 건 못했다는 부친의 세뇌교육 때문에 솔직히 그쪽에 대해서는 호감에 가까운 비판자이다. 그러나 이 전씨가 '나 잘났어~'를 하던 때는 고학년이라 삐딱선을 타는 천성이 발휘되기 시작했고 또... 고등학교 때 너무나 재수없던 애들의 부모가 다 그쪽 라인이었다는 개인적인 이유 + 예매해놓은 대한민국 음악제 표에 갑자기 전씨 막내아들이 되도 않게 등장한 황당 사건도 작용해서... 여하튼 이쪽에 대한 감정은 바닥을 지나 땅굴 수준. -_-; 최소한 바닥까지는 올라오도록 노력을 해야겠다.
2009. 아마... 10년이나 20년 뒤 2008년부터 오늘을 얘기할 때 민주주의의 겨울 내지 퇴행, 암흑기 등등의 단어를 쓸 거라고 확신한다. 그때 지금 이 시간에 대해 그런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망해있는 거겠지.
이렇게 치열하게 현실을 지키고 변절하지 않은 분들이 다 돌아가시기 전에 증언이 쌓여야 할 텐데... 시간과 세월의 힘으로 덮어져서는 안 된다.
1148 만인보는 하나하나를 그린거고 백두산은 집단, 하나하나가 집합이 됬을때 이루는 서사시고 또하나는 있습니다 아직은 완성하지 못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만인보입니다
1207 나는 육군교도소 잇다가 일반교도소로 옮겨졌을때 내가 고대인도 산스크리스트어를 공부를 할까 아니면 영어를 깊이 공부를 해볼까 아니면 독일어나 다른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니다 내 언어를 다시 공부해야 되겠다 우리나라언어를 다시 공부하려고 사전을 차입을 요구했어요
1239 사전하나를 외우려고 했는데 사전을 외우는데 거기다 표시하는것도 준집필행위니까 안되 그래서 내가 단식을 2주일을 했어요 2주일을 했더니 무엇이 어찌 됬는지 이거를 중앙정보부까지 갔다가 왔어 그래서 이 점하나 찍는거다 그러니까 나중에 이제 단식을 오래하니까 내려와서 그 교도관이 볼때만 사전을 주겠해서 찍 내가 요긴한거 외워놓은거는 내가 교도관이 봐야 찍어 그래서 고거를 외우기 시작했어 그래서 난 감옥에서 내 모국어를 언어를 완전하게 학습을 했어요
--> 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무식한 군00란 말이 절로 나온다. 시베리아로 추방된 정치범들의 경험이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었구만.
2009. 경찰이며 검찰, 안기부의 공안 계통이 그동안 이 짓을 못해서 몸살이 났던 거겠지. 능력 발휘할 지금 이 세상이 얼마나 좋을지... 암담함.
1331 머릿속에 내 사전이 하나 들어갔죠 치열하게 공부를 해가지고 세상에 만약 내가 살아서 나가면 이것가지고 새로운 시인이 될 수도 있겟다 그래서 그뒤로 몇 년있다가 이세상에 나왔는데 가석방으로 해서 하나도 기억하는게 없어져버렸어 다 썰물처럼 어디로 빠져나가버렸어 그래서 다시 사전공부를 했어 그래서 다시 들어와, 그뒤로 쓰기 시작한 것이 만인보야
1410 우리의 할머니 외할머니, 핏줄에서부터 고향사람들 이웃마을 사람들 그러다가 나중엔 역사속에 있는 사람들 또 모르는 사람들 뭐 이런걸 막 쓰는게 이렇게 만인보는 반드시 숫자를 채우는 수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아라비안나이트 있죠 천일야화 천일이라는게 THOUSAND 이런게 아니라 그냥 많다는 거거든요 많은 낮과 밤
1451 이런것처럼 많은사람 하나하나를 그리는 것이. 그래서 아주 여러사람을 그렸어요 30권을 쓰게된 것이 현재는 20권은 세상에 나왔고 지금 쓰고 있는게 25권까지고 또 한번 더하면 30권이 내년쯤 내후년쯤 마칠겁니다 그리고 또 더 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더 쓰기도 하고, 또 모르겟어 다른 유혹이 많아서, 진즉 끝났을 것을 다 완성을 못했습니다.
1533 질문- 만인보가 어떻게 읽혀졌으면?
1555 이 만인보는 물론 인간을 그릴때는 아주 조건으로서는 지금 여기있는 사람을 그리질 못합니다 있었던 사람을 그리는거에요 여기 있었던 사람도 다른 장소에 다른 시간속에 있었을때를 그리는 것이죠 그래서 어차피 지난날을 그리는 과거를 우선은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과거가 길이가 있지 않습니까. 길이속에 들어있는 여러 기억속에 있는 인물들 그거를 살려서 오늘 나에게 대면하게 만드는 행위, 역사 행위죠 그런것으로서 그렸죠 물론 한인간을 그릴때 전신상을 초상화로 그리는건 아니죠
1654 그의 머리카락이 바람이 나부낄때 머리카락 하나를 그린다든지 그가 흘린 눈물 한방울을 기억한다든지 그가 막 삿대질하면서 욕설을 퍼부었을때 어떤 야생적인 자기표현을 그린다든지 할수 있겟죠 근데 이런게 인간은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절대적인 운명하나씩을 다 가지고 있다 이 다양한 총천연색들의 인간의 벽화 이걸 그리고 싶고 난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한반도에 삶을 살고있는 사람 살앗던 사람 이런 민족을 하나의 벽화로써 민족사를 벽화로써 그리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근데
1747 이게 얼마나 달성이 됬는지는 사람들이 평가할 문제구요 그런 꿈을 가지고 잇었습니다
1804 최근에 쓴 만인보 주인공?
1813 야 그건 아주 아주 커다란 명제가 내포되있는 질문이다 그건 --> 마지막에 쓸 만인보의 주인공이 누구냐는 질문으로 알아들으신듯.
1824 그건 대답할 수가 없어 무서워 최후에 쓰는건, 옛날에 쓴 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무덤을 모릅니다 전쟁때 세상을 더나서 어디 뭍혔는지를 몰라 그게 아주 가슴에 남아있죠 외할머니에 대한 절실한 그림을 그린것같고 최근에 모르겠어 여럿을 썼으니까. 무한복수야 어떤놈이 어떤놈인지 모르겠어
1909 질문- 남북정상회담에 참여한 의미
1920 물론 내가 참여했던 내가 불참했던 간에 현대사에서 최대의 사건이죠 분단 60년만에 또 분단이라는 것이 광복 60년이라고 되지만 광복의 의미보다 분단의 의미가 더 강하죠 광복과 함께 갈라져버렸으니까. 광복이라는 것을 함께 만나서 어떻게 합하는 고민을 해보자고 서로 서로 다른 원칙들을 가지고 하나의 원칙에 접근해가자고 하는 그런 최고의 행위입니다. 우리민족의 축제에요 이거는
2007 우리 민족사에. 여기에 내가 참가했다고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고 마침 뜻한바도 아니지만은 내가 어떻게 거기서 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된 절정에 이르렀을때 내가 시를 통일을 꿈꾸는 시를 어떻게 그렇게 됬어요
2032 처음에 일정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고 사람들이 그 시를 남북의 동포들이, 남쪽이나 북쪽이나 중계가 되서 잘 들었다고 내가 어디 묘향산을 가건 북쪽의 어디를 가건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거죠
--> 북한을 지옥이라고 묘사한 김훈씨와는 다른 감격과 감상이 있는 대답. 한 존재에는 여러 각이 있는데 이 분은 또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각을 보신거다.
2002 질문-시대별
2118 나는요 처음부터 역사인식이 없었습니다 물론 광복을 어린시절에 십대초반에 만났습니다 해방이라는 말을 듣고 이게 무슨의미인줄도 모르고 가슴속으로 뭉클해졌고 감동받았죠 해방이라는 의미를 알게되면서 또 분단이라는 현실과 만나 분단속에서 살게 됬어요 최후의 선택으로 또 전쟁을 만났고 전쟁속에서 살아남았고 60년대까지 나는 전쟁을 통한 아픔을 가진 허무주의자 였었죠
2200 이게 무슨 서구세기말에 니힐리스트 이런게 아니라 우리 민족이 만들어내는 무가치에 여러사태에 대해서 난 허무상태였죠 나 자신이 만든 허무죠 이런걸 있다가 또 70년대에 와서 사회현실, 사건과 만나기 시작합니다.
2224 예를 들어서 한 노동자가 분신자결한다든지 이런걸 유신헌법이 세상을 지배한다든지 이렇게 되버려서 걷잡을수 없이 돌아쳐서 역사의 거리로 펴버려서 나오게 된것이죠 그래서 이제까지 왔었고 그러나 지금은 한국은 일정한 민주화를 달성했고 내 사명은 거기서 마쳤고 그러나 이제는 우리 민족이 하나로 되는 통일을 꿈꾸는 일 이런 것을 생각을 하면서 내문학 남아있는 부분을 완성을 하고 죽어야되죠
--> 그래도 변절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신 게 대단하십니다. 다 같은 물결에 휩쓸렸지만 대응은 각기 달랐으니까요. 행동했다는 것. 그것을 개인적 영달에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 거기에 난 의미를 두고 싶다.
2009. 이런 부분들이 있어서 촬영 때마다 그렇게 고생 시키고 소위 진X을 떠셔도 다 이해가 된다는... ^^ 근데... 문학하는 남자들이 은근히 여자들에게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고은 선생님 부인도 대단한 미인이셨음.
2310 질문- 한단어
2315 한 인간 한 시인의 생애를 간략하게 나눠서 토막토막 생선한토막을 갖다가 탁탁썰어대가리, 가운데 한토막 이렇게 나눌수 없어 생명체니까 나누면 그게 과오가 생겨 --> 또 혼났음. ㅠ.ㅠ 어떻게 간략하게 나누냐고...
2336 재질문
2339 내가 전쟁을 할때에는 그냥 전쟁을 했고 그다음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먹고 살아야 되니까 산업을 해왔고 산업하는 중에서 모순이 드러나고 그러니까 이 모순을 인간화 시키는데 일을 우리가 해야되니까 민주화를 달성했고 민주화를 달성하고 나니까 또 세계로 나아가는 다양성의 시간으로 우리가 우리민족의 자존심을 나아가서 참여해야 되고 여러 가지고 일을 할 수가 있겠죠 근데 그게 내가 살아온것만 아니라 나와 똑같이 동시대 모든사람들이 살아내는 경로입니다. 이상!
--> 귀여우셔라. ㅎㅎ;;; 질문 더 나올까봐 그냥 딱 잘라버리고 홀홀 떠나심. 중요한 말씀은 다 해주신 관계로 이쯤에서 만족. 나도 늙나보다. 왜 이리 노인네들이 귀엽고 정이 가는지...
세계 시인대회에 윌레 소잉카가 왔다. 회장인 모양. 많이 늙었더라. 허연 수염과 허연 머리. 그래도 피부는 여전히 탱탱. 목소리도 카랑카랑. 아직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을까?
2009. 노벨상 발표 때가 되면 매번 언론에 등장하는 이름.
노벨상이란 것이 정치나 국가가 움직이는 트랜드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고로 지난 10년간 한국 작가 중에서는 노벨상에 가장 근접하다는 식으로 국내외 언론의 중심에 있기는 했지만... 시인이 노벨상을 받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게 해외에서 들리는 얘기이다. (+ 스스로 노벨상 후보군에 근접해 있다고 믿는 국내 소설가들의 의견도. ^^)
그의 사상과 정치적인 궤적, 거기에 기반한 작품 세계에 그나마 동감하던 사람들이 힘을 잃은 지금, 현 정권에서 이문열이라는 이름을 밀어올릴 거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리던데... 솔직히 그것도 과연?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받을 때 그거 못 받게 하려는 모당의 거국적인 전방위 로비에 학을 뗀 스웨덴 한림원이 한국에는 앞으로 절대 노벨상 안 줄거라고 이를 갈았다던 카더라~ 통신이 진실이라면... 과학 분야처럼 뭔가 뚜렷하지 않은 이상 문학 부분에서 노벨상은 당분간 힘들지 않을까?
여하튼... 작가분들 섭외할 때는 '노벨상' 만큼 잘 먹히는 단어가 없다. 이 깃발을 흔들어서 섭외가 안 되시는 분이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