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비치한 책인데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과 달리 정말 재미가 없는데다 엄청나게 두껍기까지해서 장장 6개월을 끌다가 겨우 끝냈다. 그래도 화장실에 좀 재미없는 책을 갖다 놓는 게 건강에는 좋을 것 같다. 서유기를 갖다 뒀을 때는 책 읽느라고 다리에 쥐가 날 때까지 앉아 있었는데 이게 들어가고는 정말 볼일만 딱 마치면 총알같이 튀어 나왔다. ^^; 어쨌거나 우보만리라고 그렇게 띄엄띄엄 읽어내려가는데도 결국은 끝이 났다. 메피스토펠레스를 마지막으로 악의 역사 4권 시리즈를 쫑~
메피스토펠레스에서는 종교 개혁부터 지금 현대에 이르기까지 악과 악마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시대순으로 차분히 설명을 해주고 있다. 완전히 뜬구름 잡는 철학적인 내용이었다면 아마 포기했을 것 같은데 다행히 문학과 전설 같은, 내게 그나마 좀 친숙한 분야와 연관을 시켜서 거기에 등장하는 악마=메피스토펠레스의 존재를 설명하기 때문에 그럭저럭 흥미를 잃지 않고 읽어나갔던 것 같다.
메피스토펠레스하면 당연히 떠오르는 것이 파우스트 박사일 텐데 실제로 이 책의 상당 부분에서 파우스트 박사의 다양한 버전과 그걸 집대성한 괴테의 파우스트, 메피스토펠레스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에 한정짓지 않고 엄청나게 다양한 텍스트들이 등장한다. 아는 것도 꽤 있었지만 전혀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악이라는 개념과 전혀 연결시키지 않았던 소설들이 제프리 버튼 러셀에 의해 악마주의 등으로 새롭게 해석되는 건 꽤 재미있는 경험이긴 했다.
공포이자 숭배의 대상이었던 악마가 철학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그 힘을 잃고 우스꽝스런 존재로 전락하는 동시에 낭만주의 사조에서는 매력적인 안티 히어로로 변형되는 등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20세기를 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전반적인 스타일의 글쓰기가 내 취향에 맞지 않았고 또 이런 수준의 미학적, 철학적 서술을 소화해낼 능력이 부족한 거지 이런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읽을만한 내용이지 싶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제 발표를 위해 억지로 읽었던, 별반 재미 없었던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와 소년소녀 문학전집에서 축약해 읽었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제대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겨났다. 그러나 언제 읽을 지는 나도 모름. ^^
어쨌거나 4권을 완독했다는 것을 자축~ 수고했음. 동생이 화장실에 갖다놓은 뇌를 다 읽으면 예전에 반만 읽다 포기한 플루타르크 영웅전 전집을 이번 참에 격파해봐야겠다. 가능한 올해 안에 끝내는 걸 목표로 달려봐야지.
책/인문(국외)
메피스토펠레스 - 악의 역사 4, 근대세계의 악마
제프리 버튼 러셀 | 르네상스 | 2008.11.?-2009.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