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작품은 카페 뮐러.
1970년대 초반에 초연한 작품으로 그녀의 초기작 중 하나이다. 그녀가 무대에 올라 직접 춤을 추는 몇 안 되는 작품의 하나로 올해 카페 뮐러 공연 때 피나 바우쉬가 직접 춤을 추려고 했었는데.. 작년 6월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작품만이 왔다.
갑작스런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 심장마비나 뇌출혈인가? 했었는데 프로그램에 보니까 암으로. 그런데 암이라는 소식을 들은지 5일만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떠난 건 아쉽지만 암의 그 고통스러운 투병 과정을 생각하면...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좀 불경한 생각일까?
각설하고, 부모님이 운영하던 카페에서 자란 그녀의 기억이 묻어나는 작품이라고 해설이 되어 있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춤 자체를 즐기기 위해 공연보기 전에 일부러 해설을 보지 않고 봤을 때, 왠지 카페를 몰래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정도는 내가 제대로 이해를 했나 보다.
무대에 등장하는 건 앞이 보이지 않는 여성. 더듬거리며 카페를 돌아다니는 그녀와 그녀의 연인으로 짐작되는 -더불어 불륜 내지 비밀스런 관계인- 남자를 중심으로 3쌍의 남녀가 서로 무관심하게 때로는 어떤 유기성을 가지면서 45분간 쉬지 않고 움직인다. 발레에서는 시선을 줘야 하는 중심점이 확실하게 있어서 내가 주목할 곳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반해서 이 작품은 많은 경우 각각의 무용수들이 다 비슷한 중요도를 갖고 움직여서 눈이 많이 바빴다.
움직임과 의미를 갖고 얘기를 하자면... 뭔가 다 상징이 있고 의미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뭔지는 대체로 모르겠다. 허무, 공허, 슬픔과 대립 등등 기본적인 감정 표현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걸 보여주는 내면의 코드랄지, 그런 부분들이 분명히 있는데... 그런 상세한 디테일의 이해는 안무가와 같은 문화권 내지 비슷한 철학과 문화적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허용된 특권이겠지.
하지만 보면서 참 놀라웠던 게, 그 모른다는 게 결코 감상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거다. 움직임에 부여된 상징 체계를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그 동작에 온전하게 집중을 할 수 있었다고 해야하나? 만약 알았다면 내가 아는 걸 발견하는 즐거움, 안무가와 공유하는 그런 비밀스런 기쁨이 있었겠지만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순수하게 즐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동작이나 테크닉이 화려하지도 않고, 클라이막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름다운 신체를 보는 즐거움을 주는 무용수들도 아니었는데 내내 집중하고 볼 수 있었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지루한 듯 하면서도 결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게 하는 그 묘한 긴장감 유지. 그게 피나 바우쉬의 특기인 것 같다.
공연장에 들어설 때부터 이미 컨디션이 꽝이었음에도 즐길 수 있었다는 건 꽤나 괜찮은 공연이었다는 반증이지 싶음.
30분간의 휴식 후 봄의 제전.
웬 휴식이 30분이나? 했는데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니 30분도 바빴겠다.
검은 흙으로 덮여진 무대 위에 여성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그 중 한명은 봄의 제전에 희생 제물로 선택될 처녀. 희생될 처녀가 입을 붉은 천이 발견되자 두려움에 떨면서 제전은 시작되고 그 흙 위에서 처녀들의 춤이 이어지고 이어 남성 무용수들의 등장. 서로 회피하지만 결국 샤먼에게 희생 제물이 선택되고 마지막 죽음의 춤을 추고 선택된 처녀가 죽으면서 엔딩.
말로 풀면 아주 간단한 내용인데 안무가 정말 격렬하다. 안무 자체도 역동적이지만 피나 바우쉬의 춤에 화룡정점을 더한 건 무대에 깔린 흙이 아닐까 싶다. 시커먼 흙 위에서 춤 추고 뒹굴고 하다보면 땀에 젖은 몸에 흙이 묻으면서 그들은 무대 위에 무용수가 아니라 정말 제전에 참가한 원시 부족들의 모습을 하게 된다. 스트라빈스키가 꿈에서 봤다던 바로 그 이교도의 제전에 가장 가까운 게 바로 이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적나라하고 꾸밈이 없다.
그리고 저 뻔한 스토리임에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구성에는 정말 감탄! 도대체 누가 재물로 선택될 건지, 마지막 희생의 춤을 추는 순간까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처음에 빨간 옷을 발견한 여자가 재물이겠구나~ 했더니 또 다른 여자에게로 포커스가 옮겨지고. 재물이 선택되는 그 순간에는 죽음의 후보자인 그 처녀들 만큼이나 긴장하면서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클라이막스까지 올라가는 과정이 워낙 박진감 넘치고 긴장이 폭발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희생 재물의 마지막 죽음의 춤은 오히려 살짝 맥이 빠진달까? ^^; 무용사 상 가장 격렬하고 숨 막히는 여성 솔로였다는, 니진스키의 안무로 마리아 필츠가 춤췄다는 그 희생의 춤을 직접 본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또 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만족스러운 공연, 제일 앞줄에 앉았기 때문에 번들거리는 땀과 거친 숨소리와 에너지 파동을 그야말로 바로 앞에서 함께 부딪치면서 느낄 수 있었다는 건 행운이었다. 춤추면서 앞으로 튀어나오는 흙벼락을 여러번 맞았지만. -_-;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이 공연은 앞 자리에서 한번 보고 또 그 전체적인 구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2층이나 3층에서 또 한번 관람하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공연을 보면서 내내 느꼈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표정을 바로 앞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군무의 구도를 보는 건 역시 윗 자리가 좋은데...
1978년에 한국에서 공연됐을 때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걸 고등학교 때 어떤 책에서 봤었고 그 이후 피나 바우쉬의 봄의 제전은 내가 꼭 보고 싶은 작품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저 바람이었지 그제 실제로 될 거라고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역시 잊어버리지만 않으면 이런 소박한 꿈은 대체로 이뤄진다는 걸 증명. ^^
그 센세이션이 30년이 넘는 시간 차 때문이 아닐까 라고 공연을 보기 전에 생각했는데 공연을 보고 난 지금... 아마 30년 뒤에 이 공연이 다시 한국에서 공연되도 비슷한 충격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꽤 많은 무용 공연을 봐왔지만 이 정도 레벨의 춤을 추면서 이렇게 무용수들의 몸매가 별로인 단체는 처음이었고 또 서양 단체 중에서 동양인이 이렇게 많은 무용단도 처음이었다. 남자 무용수들의 키가 큰 건지 아니면 여자들이 키가 작은 건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여성무용수들이 참 작다는 생각도 했었고.
바깥에는 몽고와 중국에서 날아온 흙먼지가 대기를 뒤덮고, 공연장 안에는 무대 장치인 흙먼지를 무대 제일 앞에서 직통으로 맞자 그렇잖아도 저조하던 컨디션은 바닥으로 급강하.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면서 돌아와서 짜장면 불러서 저녁 먹고, 라벤더와 장미를 듬뿍 넣어 진하게 우린 허브차를 한 잔 마시고 일찌감치 잤다.
역시 수면은 최고의 약이다~
피나 바우쉬 할머니.... 좋은 곳에 가 계시리라 믿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
다음 주에는 백조의 호수를 보러 간다. ^^
감상/춤
피나 바우쉬 부퍼탈 탄츠테아터 '카페 뮐러' & '봄의 제전' (2010.3.20)
지난 주 마감 2개의 후유증으로 무겁고 멍한 머리에다가 다리도 안 좋아서 절뚝거리면서 황사 바람을 헤치고 갔다 왔다. 좀 있다 쓰겠지만, 공연장 안에서도 흙먼지를 잔뜩 들이마신 덕분에 어제는 초저녁부터 쓰러져서 아침까지 그대로 죽은 듯이 잤다. 덕분에 두통도 사라지고 머리도 맑아진 좋은 컨디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