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안 | 을유문화사 | 2010.5.3
오늘 낮에 전철 안에서 읽은 책이다. 두권을 들고 나갔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워서 이 한권만 다 읽고 들어왔음.
저 저자인 강희안은 우리가 역사 책에서 만나던 바로 그 강희안으로 이 책은 그가 살던 당시 있던 화초며 나무들에 대한 품평과 그가 직접 키운 식물들의 특성이며 어떻게 하면 잘 키우고 월동은 어떻게 하는지 등등을 기록해 놓았다.
책의 정체성은 조선 초기의 선비가 쓴 식물 가꾸기 교본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어떤 식물은 어떤 흙과 어떤 조건을 좋아하는지는 물론, 화분에 키울 경우 어울리는 화분 종류와 월동 방법까지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강희안처럼 화초 가꾸기를 즐긴 사람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지침서였을 것 같다.
하지만 한 500여년이 흐르다 보니 이 책은 단순한 실용서를 넘어서 이제 조선 초기의 식물학 도감인 동시에 당시 화초에 대한 역사서로서 가치를 갖게 된 것 같다.
매란국죽 사군자 외에 치자, 백일홍, 서향, 작약 등등 참 많은 꽃과 식물들을 우리 조상들이 키우고 완상하고 또 그 안에서 많은 작품과 생각들을 쏟아냈구나 하는 그런 깨달음을 준다. 그리고 식물 배치에 대한 유행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화초들에 대한 선호와 평가에 대한 기록들도 지금 보기에는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게 많다.
이 책 중에 개인적으로 조금 궁금한 것 하나. 세종대왕이 밤새 고생하는 집현전 학사들에게 유자를 내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어릴 때 역사책에서 읽었던 부분으로 그 책에서는 분명 귤이라고 했었는데? 그것도 제주도 귤보다 훨씬 달고 최상품인 동정호 귤. (<- 중국산 수입품이란 얘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거나 하는 말을 유자로 써놓은 걸 보면 아마 당시에는 귤을 유자로 부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건 나중에라도 기회가 닿으면 한번 확인을 해보고 싶다.
조선 후기로 가면 일부 실학파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공자왈 맹자왈만 해서 재미가 없는데 그래도 국가의 역동성과 학문의 유연함이 살아있던 조선 전기까지엔 재미있는 책들이 많은 것 같다. 이런 책들의 번역이 많이 이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