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수미 히로시 | 학산문화사 | 200?- 2006.8. ?
일본 만화의 특성상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잠수 타지 않고 몇년만에 상큼한 완결을 내줬다. 만화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일본 만화가로서는 아주아주 보기 드문 이 미덕도 기억하게 될듯.
쿠라키라는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이상적인 외교관에게 고용되어 베트남 일본 대사관저의 요리사가 되어 베트남에 도착하는 게 주인공 코우씨와 이야기의 시작. 중반까지는 베트남을 중심으로 타이 등을 포함한 동남아의 얘기가 펼쳐졌다.
스토리 작가가 실제로 대사관 요리사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외교가의 뒷 얘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데 거기에 한국에 관한 내용도 나오고... 실명을 살짝 한두 글자 바꾸고 민감한 국가는 이니셜로 처리하는 식으로 진행이 됐는데 그 생생함에 이 내용의 상당 부분이 사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 정도였다.
중반 이후엔 고이즈미 총리임이 확실한 히라이즈미라는 총리에게 발탁되어 쿠라키 대사가 일본으로 돌아오고 전세계를 상대로 특권대사라는 이름으로 전방위 외교를 펼치게 되면서 얘기의 폭은 넓어진다. 지루해질 수 있었던 내용이 무대를 자연스럽게 바꿈으로서 매너리즘에서 탈피하고 또 초반에 안배했던 조연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맛도 바뀐다.
주인공인 코우와 그의 요리 조수(스토리를 위해 당연하겠지만 항상 여자) 그들의 가족과 연인들, 쿠라키 대사와 외교가의 얘기들이 인간과 음식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스토리 라인을 끌어간다. 이것도 상당히 배울 점인 것 같음. 맛의 달인이니 아빠는 요리사 등등에선 음식에 너무 포커스를 맞추다 핀트가 어긋나고 지겨워지는 때가 있는데 이건 그런 부분이 없었다.
이런 류의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 치고는 드물게 혐한이 아니라 지한파라는 것도 내 호감도 상승을 분명 부추기긴 했을 것이다. 물론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는 가면을 쓰고 그 뒤에서 일목요연하게 일본의 변명을 하는 건 좀 거슬렸지만... 자기 모국에 원수가 지지 않은 한 국적을 가진 인간으로서 그건 당연한 일이겠지. 최소한 이해를 해줄 수 있는 수준이니 이 부분에 대해선 딴지 걸지 않겠다.
그래도 북해도를 소련에 뺏긴 일로 팔팔 뛰는 걸 보면서는 솔직히 시큰둥. 니놈들이 맘대로 중국에 넘겨준 우리 간도며... 독도 집적거리는 건 로맨스고 니놈들에게 북해도 뺏어간 소련은 불륜이냐. 이런 딴지가 팍팍 걸렸다.
딱 일주일 전쟁하고 북해도랑 한반도 북쪽을 홀라당 한 소련이 어찌 보면 참 얄밉긴 하지만 전세 파악을 못하고 소련을 끌어들인 미국의 뻘짓을 활용하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한 일이지. 입장 바꿔서 만약 같은 상황이었다면 우리는 덜 했을까? 여기엔 솔직히 아니오라는 대답이 주저없이 나온다.
2-3달에 한권씩 나오는 대사 각하의 요리사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끝나 아쉽긴 하지만 멋진 마무리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