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후반기의 발레팬들에게 까멜리아 레이디 = 마르시아 하이데였던 것처럼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반에 걸친 발레팬들, 특히 한국인들에게 까멜리아 레이디 = 강수진이니 제목을 그리 쓴다고 해도 과히 과장은 아닐 것 같다.
무용가에게 자신을 대표하는 작품이 있다는 걸 굴레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아무나 갖지 못하는 행운이고 영광인데 강수진에게 까멜리아는 바로 그런 작품인듯.
아주 운이 좋지 않은 한 아마도 내가 강수진의 까멜리아 레이디를 보고 다시 감상을 쓸 날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사설이 길어지는데, 마르시아 하이데의 영상물을 제외하고, 이 작품을 처음 본 건 오래 전 세계 발레스타 초청이었나, 한국을 빛낸 발레스타 초청이었나... 1999년에 강수진이 출연한 갈라 공연에서였다. 안무가인 노이마이어는 이 작품의 전막 공연 -그것도 아주 까다롭게 엄선된 발레단에만- 허용하지 갈라에서는 절대 공연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강수진의 부탁을 받고 처음으로 갈라 공연 허락을 했는데 그게 3막에서 아르망을 찾아온 마르그리뜨와의 마지막 밤이었다.
그때부터 이 작품을 강수진이 공연하는 무대로 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고 아마 2002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여간 꽤 오래 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드디어 공연이 있었다. 그날 내 평생에 세종문화회관이 그렇게 미어터지게 찬 건 처음 봤었다. 그리고 초연 날 내가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신현준과 당시 사귀던 그 손 뭔가 하는 탤런트 뿐이었지만 (그것도 신현준과 손 잡고 걸어다녀서 그녀라고 짐작) 한국에서 얼굴 좀 알려졌다고 하던 나름 셀러브러티들은 다 세종으로 왔었다고 함.
그때 로버트 튜슬리와 춤췄던 공연... 무대와 까마득히 먼 뒤쪽에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몸에서 표정이 느껴진다고, 정말 감탄하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또 다시 그녀의 까멜리아를 보는 행운을 맞았다.
이번에는 2년 전 갈라 공연 때 함께 왔던 라데인 라데마케르가 아르망을 맡아 강수진과 호흡을 맞췄다. 노련한 로버트 튜슬리와의 파트너쉽이 워낙 좋았어서 이 젊은 친구는 어떨까 걱정을 했는데 -2년 전 공연 때 받은 인상이 좀 방정맞기도 했었고- 여전히 살짝 방정맞은 듯하기도 하지만 젊고 열정적인, 그래서 사랑에 푹 빠지고 더 강하게 증오하는 젊은 아르망의 풋풋함이 풍겨 나오는 해석도 괜찮은 것 같긴 하다. (프로그램을 보니 첫 내한공연 때 군무를 췄고 3막에서 마르그리뜨가 아르망으로 착각하는 청년 역을 했다고 함. 정말 감회가 대단하겠군.)
이날 강수진의 공연은 이런저런 설명이나 해석이 다 사족이 되는 완전한 몰입. 오래 전 한국에서 그 까멜리아 초연 때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 무르익은 완숙함. 지금이 바로 전성기이구나를 감탄을 하며 내가 이런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에 내내 감사를 하면서 무대를 지켜봤다고 정리.
아마 아주 운이 좋지 않은 한 -이를테면 똑똑한 기획사가 그녀의 은퇴 공연을 한국으로 유치한다거나 등- 그녀의 까멜리아 레이디를 다시 보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두번째로 볼 수 있었고, 처음보다 더 아름다운 마그르리뜨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무용수들도 거의 실수없이 정말 착착 맞아떨어지는 모습.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무용수들은 입단 때 키 제한이 있나 싶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길쭉길쭉함이라, 키 작은 무용수들에게는 억울하겠지만, 확실히 눈이 시원하니 보기가 좋다.
뒤에서 저게 뭔 소린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던 아저씨를 보면서 그동안은 그냥 당연히 모두가 다 안다고 믿었던 까멜리아 레이디란 작품에 대한 단상을 끄적이자면... 이 작품은 발레팬들에겐 정말 걸작이지만 문학이나 발레에 소양이 없는 입문자에게 친절한 작품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기엔 당연히 올려야할 작품 해설을 하나도 띄우지 않은 기획사나 세종문화회관의 책임도 크다. 모두가 다 비싼 만원짜리 프로그램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작품에 대해 알고 오는 것도 아닌데 1, 2층에 줄줄이 달린 스크린에다 3층에서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에 매 막 전에 해설 올려주는 거 기본 아닌가? 어느 쪽의 잘못인지 모르겠지만 이건 엄청난 직무 유기였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라던가, 청소년기에 여자라면 한번쯤은 읽었을 춘희를 안다면 작품의 맥락을 따라가는데는 문제가 없을 거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하게 그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대표적으로 마르그리뜨와 아르망의 러브 스토리에 마농을 대입시키고 있는 중 중간중간 복잡한 코드들이 있다.
춘향전이나 심청전, 감자나 동백꽃처럼 평균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은 당연히 알고 있지만 외국인들은 모르는 문학 작품들이 많은 것처럼 아베 프레보의 마농 레스꼬는 서양 문학에 평균 이상의 관심이 있어야 읽어봤을 법한 소설이다. 그걸 캐네스 맥밀란은 마농이라는 걸작 드라마 발레로 만들어 세상에 내놨다. 까멜리아 레이디의 초연 연도가 1978년이니 노이마이어가 아마도 그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까멜리아 레이디 안에 액자 형식으로 삽입을 하지 않았을까 혼자 짐작 중이다.
여하튼 맥밀란의 발레 마농을 알거나 아베 프레보의 소설 마농 레스꼬를 알지 않는 이상 이 연관 관계의 절묘한 구성 고리를 즐기며 발레를 보기는 쉽지 않을 듯. 이것 외에도 아마 이 작품 안에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내가 모르는 수많은 코드들이 있을 거고 그걸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즐김의 폭이나 깊이는 더 넓어질 것 같다. 하지만 그걸 찾아내고 찧고 까부는 건 평론가나 연구자들에게 맡기고 나 같은 관객은 몸에 딱 맞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공연을 즐기는 것으로 족함.
삑사리 날 게 별로 없기도 했고 해서 그런지 오늘은 코심임에도 불구하고 반주 때문에 감상에 방해를 받는 일은 없었음. 피아니스트들의 쇼팽도 간만에 즐겁게 들었다. 까멜리아 레이디나 레 실피드처럼 발레 음악으로 나올 때는 이렇게 좋은 쇼팽이 왜 그냥 따로 들으면 지겹고 몸이 꼬이는지. 쇼팽과 나의 만남에는 반드시 춤이라는 중재자가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다다음주의 전은선씨와 드라고스 미할차의 공연, 다음 달의 줄리 켄트 지젤, 11월의 로파트키냐의 백조의 호수. 황혜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호화롭구나. 열심히 돈 벌어야겠다. 항상 결론은 이걸로 오는군. ^^
아까 ㅅ양과도 얘기했었는데 올해 오는 프리마돈나들은 다들 지구상에서 최종 보스들.
발레팬들에겐 복 많은 2012년이다.
덧. 까멜리아 초연 때 쓴 글을 우연히 찾았는데 기대가 너무 컸는지 2% 부족했다고 써놨더라. 그랬었구나. ^^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카피에 초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