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동 * 임지덕 공저 | 백산자료원 | 2012.6.?-27
책 날개에 저자에 대한 소개는 없고 번역자에 대한 소개만 나와 있는 특이하다면 특이하고 무성의하다면 무성의한 책인데... 실제로 번역과 교정도 무성의하다.
번역자가 명시된 걸 보면 중국인이 쓴 중국의 책을 번역한 게 아닐까, 아니면 조선족 학자의 연구물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정확한 내용은 모르는 관계로 일단 그 부분은 그냥 궁금증만 안은 채 넘어가고, 책만 갖고 얘기를 하자면 내 평생이 이렇게 오타가 많은 책은 처음이고 아마 다시 만나기도 힘들 것 같다.
번역자의 이름은 명시되어 있지만 -고고학자라고 함- 이 고고학 교수님이 한국어를 하는 중국인이나 조선족 고고학과의 대학원생들에게 책을 나눠서 번역을 시킨 다음 그걸 대충 모아서 책을 내지 않았을까.... 한 80%의 확률로 짐작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 챕터 안에서도 인물의 이름이 달라지고 고유명사가 바뀌는 오류들은 나오지 않을 테니까. 처음엔 오타인가 보다 했는데 반복되는 걸 보면 거의 확실하다.
이런 추론을 하는 이유는 많이 알려진 역사적인 인물의 이름마저도 틀린 국어 표기로 된 게 많고, 무엇보다 '은,는,이,가'와 같은, 한국인이라면 틀리려고 해도 틀리기 힘든 조사들에서 오류가 너무나 많다. 한국사람들이 영어 쓸 때 정관사 헷갈려서 어색하게 쓰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될 듯.
책의 내용이 전래동화책 수준이라면 위에 저런 얘기를 줄줄이 쓸 필요도 없이 돈 버렸다고 욕을 하면서 읽고 말았겠지만 내용은 상당히 알차다. 고구려가 워낙 남아 있는 자료가 없는 시대다 보니 새로운 내용을 접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 책에선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내용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물론 상당수는 모두가 아는 얘기)
고구려를 자신들의 변방 국가로 인식한 중국의 역사관이 드러나는 게 많이 거슬리긴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고구려를 본다고 생각하면 또 그럭저럭 읽을만 하다. 어차피 나는 역사관이나 시각을 보는 게 아니라 고구려에 관한 팩트 부스러기를 모으는 중이니까 그런 부분에 관해서 좀 더 너그러울 수 있기는 했음.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이 책은 수많은 국어 문법과 철자의 오류와 더불어 역사관에도 문제가 있는 책이긴 한데... 여하튼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전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엉망인 번역인 책을 읽을 때는 정말 한문을 잘 읽는 사람이 부럽고, 한문을 자기 언어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했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함. 조금만 더 유연하고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았더라면 좋았으련만... 한학에 대한 능력은 인정하나 조선 후기는 암흑기라는 인식은 못 버리겠음. 조선은 정말 세종대왕 하나로 모든 죄를 용서 받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