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네긴을 본 날짜를 확인하면서 벌써 3달이 흘렀구나 놀라는 중이다. ^^;
그땐 다큐 때문에 정말 총체적으로 스트래스에 짓눌려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때라 진이 완전히 빠져서 블로그에 포스팅조차도 힘들던 시절이었다.
마음에 맞지 않는 팀과의 일은 정말 굶어죽지 않는 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시기이기도 했는데... 문제는 마음이 맞을지 안 맞을지는 일단 맞춰봐야 한다는 거. 결론은 해본 사람들과만 일한다가 되는 건가?
각설하고 이제는 파편만 남았지만 그래도 내가 이 발레를 봤다는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 부스러기를 긁어모아 끄적이자면... 로베르토 볼레와 서희의 공연을 봤다.
로베르토 볼레는 정말 능글능글 얄밉고 여자에게 엄청 재수없는 오네긴의 전형을 보여줬음. 예전에 강수진씨와 공연했던 오네긴은 좀 풋풋하니 귀여운 맛이 있었는데 볼레는 정말 세상만사 다 귀찮고 염세주의에 쩔어 있는 나태한 상류층이란 느낌이 표정이며 동작 하나하나에 다 묻어났었다.
서희는 이상하게 한국에만 오면 평소보다 못하는 징크스가 있어 걱정했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그런 염려가 기우란 생각이 들게 깔끔한 연기와 춤을 보여줬다. 책을 좋아하는 몽상가인 순진하고 귀여운 타티아나에서 실연의 슬픔을 겪었다가 돌아온 사랑 앞에서 결국은 남편에 대한 신의를 택하는... 강수진의 파괴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절절함은 모자라지만 그건 경험과 연륜이 해결해 주겠지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진에 나온 것보다 실제 무대 의상이 좀 허접했다는 기억도 있고... 그외에는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네. ^^;
다시 한 번 볼레는 정말 느끼하니 멋졌다~ 담에 ABT 시즌에 뉴욕이나 밀라노에 갈 일이 있으면 그의 다른 공연을 꼭 봐야겠다고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