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예술은 사람을 치유해주는 기능이 있다.
물론 이조차도 눈이나 귀에 들어오지 않는 극한의 상황에선 맞지 않는 소리겠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슬픔에 빈 자리가 남아있을 때는 그곳에 스며들어온 아름다움은 분명 치유의 기능이 있다.
사회적인 아픔이 내 개인의 기억을 일깨우면서 겹쳐지는 고통에 많이 힘들었는데 멀티플리시티를 보면서 가장 깊은 바닥은 치고 올라온 것 같다.
나초 두아토라는 안무가를 참 좋아한다.
국내 발레단에 의해 조금씩 소개된 소품들을 보며 호감을 가지다가 2002년 월드컵 때 한국과 ??의 경기가 있어 온 서울이 썰렁하던 날 예술의 전당에서 그가 이끌고 온 스페인 국립 무용단의 공연을 봤다.
그 이후 완전히 그의 팬이 되어 공연은 거의 다 쫓아다닌 것 같다.
2004년인가 그가 직접 출연하다고 해서 기대했던 공연은 허리 부상으로 김이 좀 빠지긴 했지만 몇년 전 역시나 엘지 아트에서 공연한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는 그가 춤추는 걸 드디어 볼 수 있었고.
스페인까지 쫓아갈 수는 없지만 한국에 있는 관객으로선 꽤나 그의 공연을 잘 챙겨봤다고 할 수 있는데... 새삼 느끼는 게 멀티플리시티는 내가 본 중에서 그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것 같다.
하필이면 스페인 안무가에게 독일의 도시가 바흐의 음악을 주제로 작품을 위촉했을까.
의문을 가졌었는데 라틴의 감성과 건축적인 바흐의 음악이 만나자 최고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
음악을 스토리로 잘 풀어내는 안무가가 있는 반면 몸으로 잘 보여주는 안무가가 있는데 나초 두아토는 후자 쪽에서 가히 최고 경지인 것 같다.
1부는 축제, 2부는 바흐의 죽음을 묘사한다는데 사실 스토리 라인은 큰 의미가 없고 이런 스토리 없이 음악과 춤만으로도 이 무대는 충분하다.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지면서 쌓아지는 레고 블럭 같은 바흐의 음악을 나초 두아토는 인간의 몸을 통해 눈으로 정확하게 구현을 해주었다.
눈으로 보여지는 음악을 보면서 미소가 떠오르고 바닥까지 내려가있던 감정이 조금씩 위로 올라오는 느낌.
이날 바흐 음악이 갖고 있는 치유의 기능에 내가 큰 수혜자가 되었다.
의상과 무대도 그의 의견이 크게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바로크의 포스트모던적 해석이라는 해설자 문훈숙 단장의 표현에 절대 공감함.
의상들에는 바로크의 특색이 살아 있으면서도 아주 현대적이다.
다만.... 그 의상들 일부가 서구형의 한없이 긴 하체에 적합하다는 게 유니버설 발레단의 비극이랄까.
UBC 무용수들의 체형은 한국인으로 볼 때는 정말 더없이 훌륭하고 부러운데 검정색 체조복 같은 의상을 입으니 정말 희한할 정도로 짜리몽땅하게 보이더라는.
예전에 UBC에서 노이마이어의 한여름 밤의 꿈 공연권을 사오려고 하다가 포기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한국인들은 그 의상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어서, 만약 입으면 시각 테러라는 얘기를 관계자에게 들었는데 이날 공연을 보니까
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넋을 놓고 있다보니 이날 공연을 예매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는데... 잘 다녀온 것 같음.
열심히 한주를 살고 또 다음 주에는 사라 바라스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엘지로~
같이 예매해놨던 동생은 미국 출장이 잡혀서 못 보게 됐다는...
ㅅ양 담주에 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