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한국어 더빙이 남아 있지만 나레이션 대본이 내 손을 떠났으니 공식적으로 나는 쫑이다. (물론 돈을 받아야 정말로 쫑이지만. ㅎㅎ;)
올 2월부터 기획을 시작해서 머나먼 독일을 놓고 별 상상을 다 하며 엎치락 뒤치락 정말 많이도 엎었다. 그리고 촬영이 끝난 다음에도 또 수도 없이 컨셉과 토픽을 바꿨고. 아마 내가 이렇게 공들여서 힘들게 해보기도 처음이고 또 앞으로도 힘들듯. 물론 이건 여유로운 일정 덕분이기도 하다. 방송 며칠 남기고 밤샘 편집해서 역시나 밤샘으로 후다닥 나레이션 대본 쓰고 뻗었다가 정신 차려보면 방송이 끝나있던 일이 부지기수라...
보통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으려고 일을 하는 중간에 이런 끄적임을 많이 남기는데 이번엔 그럴 기력도 없이 완전히 참기름 기계에 들어간 참깨처럼 압박을 받았다. ㅠ.ㅠ
사설이 길었는데 얘기하고 싶은 이런 잡담이 아니라 독일의 교육을 보면서 느꼈던 것들.
1. 극성 엄마는 절대 한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체적인 비율이나 숫자에 있어서 좀 더 많을지 모르겠지만 열정의 강도나 자식에 대한 투자는 개인주의, 독립주의란 딱지가 붙여진 독일 역시 절대 뒤지지 않는다.
방송에 나올 곳 중에 숲속 어린이집이란 곳이 있다. 말 그대로 숲을 학교로 하는 어린이집으로 아침 8시부터 애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 산속에 있는 공터에서 반나절 내내 뛰놀고 뒹굴다가 내려온다. 교사도 있지만 엄마들도 상당수 함께 그 코스에 동참하고 있었다. 멀리 산까지 애들 데려다주고 데려오느니 차라리 그냥 같이 올라가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긴 했는데... 그 교육 방식과 철학에 대해선 정말로 온 마음으로 공감하고 동감하지만... 한국에 그런 곳이 있고 또 내게 자식이 있다 해도 난 거기 못 보낼 것 같다. 애가 학교에 갈 때까지 3살부터 몇년간, 거기다 인터뷰한 엄마처럼 둘을 보내면 더하기 몇년 더 인생을 완전히 거기에 바쳐야 하는 거 아닌가. -_-;;;;
그 애들을 보면서 '넌 참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구나~'란 감탄이 아니라 '넌 정말 좋은 엄마를 뒀구나~'라는 감탄을 해버렸다.
2. 장애 아동과 정상 아동이 함께 공부하고 있는 어린이집.
만약 한국이었다면 멀쩡한 내 새끼 망친다고 어린이집이 몇번은 뒤집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실제로 경미한 장애를 가진 어린이 엄마들이 일반 유치원에 보낼 때 많이 겪는 상처라고 한다) 장애 아동과 함께 가르치기 때문에 일부러 여기로 보냈다는 엄마의 인터뷰는 거의 충격 수준. 자기와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걔네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 엄마만의 특별한 생각이 아니라 그 유치원에 형성된 공감대라는 것은 한국 땅에 사는 내겐 감동 수준이었다.
물론 성장해가면서는 능력차가 점점 더 드러나겠지만 현재 상태에서 애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다. 신체적이건 정신적이건 자신보다 뒤떨어지는 친구들과 돕는 것이 몸에 밴 아이라면 나중에 아무리 삑사리가 나도 최소한 인간 구실은 하겠지. 부럽다.
3. 교육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지만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 다는 걸 명심하고 있다는 사실. 무조건적인 애정 지상주의나 부모나 교사의, 어설프게 알거나 독단적인 교육 이론에 상당히 삐딱한 견해를 갖고 있는 터라 다양한 외부 기관과 전문가와 연계된 문제 해결과 접근이 내게 강하게 와닿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설 아는 것보다는 차라리 완전히 무식한 게 낫다. 그건 교육, 특히 아동 교육에 있어선 진리다.
4. 사회의 가장 약자인 어린이와 노인 세대를 함께 묶어서 만든 어린이집 등.. 배운게 많았음. 이게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파급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생각할 꺼리는 좀 되면 좋겠다. 공부만 쫌 하는 괴물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데... 냉정하게 얘기해서 독일에서도 혁신적인 이 대안 교육적 접근을 한국으로 끌어온다면 그 학교나 유치원은 텅텅 비거나 부모들 때문에 시끄러워서 문을 닫을 것이라는데 돈을 걸겠음. 사실은 그런 부분에 대해 좀 더 강하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나 역시 내 새끼가 생기면 어떤 엄마가 될지 스스로 자신할 수 없는 고로 말을 아꼈다.
5. 영어와 독어 버젼과 별도로 만든 한국어 판은 M모 방송사에서 틀기로 했다. 몇년 전 특집으로 내 아이템을 날로 먹은 이후 감정이 안 좋아서 여기랑은 절대 일 안한다고 (물론 내가 거기랑 일 안한다고 거긴 하나 아쉬울 것 없지만 스스로의 조그만 위로랄까. ^^) 이를 북북 갈고 있었는데... 역시나 세상 일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고 장담은 절대 하는 게 아니란 걸 또 실감.
6. 본래 계획은 이걸 끝내고 담주 초까지 푹~~~~~ 쉬는 거였는데 오늘 끝나는 걸 어찌 알고 전화를 했는지... 여수 엑스포 유치 영상을 맡아버렸다. 내년 12월 결선 투표 때까지 함께 가자고 하는데 글쎄.... 내년 10월 여행 가는데 지장만 없다면. 아시안 게임에 엑스포.... 정말 동계 올림픽 유치 영상은 누가 안 시켜주나? 그건 정말 더 잘 할 자신이 있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