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약속 잡고 어쩌고 없이 바로 혼자 갔었어야 하는데 같이 보려던 약속이 두번 엎어지는 와중에 영화도 빛의 속도로 내려가버렸음. ;ㅁ;
너무 난해하다는 혹평들이 꽤 올라왔지만 욕하는 내용들이 딱 내 취향인 것 같아서 두고두고 아쉬웠던 영화인데 어제 케이블 TV에서 해준다기에 만사 제쳐놓고 10시부터 각 잡고 TV앞에 앉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워쇼스키 남매 만쉐~
댁들은 정말 내 스타일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엮어지는 6개의 시대와 생들을 일일이 설명하는 건 설명 싫어하는 내게 불가능한 작업이라 그냥 통과.
간략하게, 지극히 주관적인 내 느낌만 정리하자면...
엄청 난해하다고 해서 잔뜩 긴장을 하고 앉았는데 의외로 친절하게 복선을 눈에 띄게 깔아줬고 그걸 남김없이 다 회수를 해간다.
그 복선들만 따라가면 별 무리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생을 거듭하면서 당신을 만나는 꿈을 꿨어요."란 대사가 결국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복선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들이 과거의 사람이면서 미래의 어떤 광경을 데자뷔처럼 보거나 느끼는 그런 것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다차원적으로 이어진 교차적 환생을 암시하는 거겠지. 비유를 하자면 기존의 영화들에서 등장했던 환생은 2D라면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3D 혹은 4D. ^^
초반에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 의도적으로 강조해 보여주던 그 흉터랄까 흔적이랄까 긴 점(?)은 누가 누구인지를 구별하는 가장 쉬운 표식이다.
그렇지만 6개의 시대와 사건이 각각 그 안에서도 과거로 갔다 왔다 하니 잠깐이라도 놓치면 뭔 소린가 어리둥절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하튼 그 점과 연결된 인물만 기억을 해도 일단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는데는 큰 문제가 없을듯.
제목인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뭔가 했는데 1936년에 살았던 작곡가인 주인공 로버트 프로비셔의 6중주 작품으로 이건 6개의 생을 상징하지 싶다.
TV 볼륨을 빵빵하게 틀어놓을 수 있었다면 음악에서 또 다른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부친의 수면을 방해할까봐 최소한의 볼륨으로 보다보니 음악은 거의 포기 수준이라 이건 그냥 대사와 희미한 음악 소리로 그냥 짐작하는 얘기.
어제는 감독과 작가 깔아놓은 떡밥들을 다 회수하면서 스토리 라인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나중에 좀 더 여유있게 복기를 해보면 워쇼스키 남매가 영화에 묻어두기 좋아하는 다양한 상징과 코드를 찾아내는 소소한 재미가 클 것 같다.
오디오 빵빵하게 해서 한두번쯤은 더 보고 싶은 영화.
이게 히트를 쳤다면 매트릭스처럼 2~3탄이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
완벽하게 나와 내 동생의 취향이긴 했지만... 복잡한 거 엄청 싫어하는 미국의 보통 사람들이 좋아할 스토리는 아니라는 건 인정해야겠지.
워쇼스키 남매의 다음 영화를 즐겁게 기다려야겠음.
덧. 네오서울은 너무 우울했다. 진실을 감추고 압박하는 지배층의 행태가 현재 서울과 너무나 닮아서 더 우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