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西遊記
어릴 때 집에 있던 50권짜리 계몽사 명작 전집에 서유기가 있었다. 당연히 한권짜리의 축약본. 그때는 그게 서유기의 전부인 걸로 알았는데 나중에 더 많은 얘기가 있는 두꺼운 책인 걸 알고 다 읽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솔 출판사의 30% 할인 이벤트가 있길래 적립금으로 확 질러버렸음.
화장실용으로 간택을 했는데 한 열흘 정도에 한권을 다 읽은 셈이다.
보통 번역자는 기록을 해두지 않지만 중국 고전은 번역이 누구냐에 따라 느낌과 구성이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에 남겨봤다. ~어요. ~지요. 하는 식의 구어체 문체가 상당히 거슬린다는 평이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일단 내게는 별다른 문제없이 술술 넘어간다. 삽화나 글 내용상의 시간 차 오류 -당 태종과 관련된 부분-를 각주로 설명을 해놓는다던가 하는 식의 충실도 면에서 아주 신경을 썼다는 느낌이 들어서 만족.
전 10권 분량인데 1권은 아직 각각의 장소에서 주인공들이 자기 삶을 살고 있다. 대하 드라마의 서주 부분이랄까... 아직도 프롤로그성 느낌이 강하다. 손오공의 탄생과 도를 얻고, 또 하늘에서 말썽을 부려 화과산에 갇히는 내용까지는 어디에나 빠지지 않는 익숙한 얘기지만 삼장법사에게 얽힌 부분들은 처음 읽는 내용이라 신기했다.
1권은 삼장 법사의 출생에 얽힌 비밀까지로 종결이 됐는데... 본 내용과 크게 상관은 없지만 본의 아니게 악한에게 능욕을 당하고 긴 세월을 살아온 삼장의 생모가 남편의 복수에 성공한 다음에 끝끝내 자결하는 부분을 보며 역시 작가는 자기가 살아온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배경은 당나라를 표방하고 있지만 저자 오승은은 명나라 사람. 명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폐쇄성이 강한 왕조였다. 그리고 중후기 조선과 함께 가장 유교적인 압박으로 사회 구성원, 특히 여자를 졸라매었던 시대라고 난 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모두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여자의 실절은 죽음으로서만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는 이런 유교주의적인 뉘앙스. 작가의 한계고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시대의 관점에서는 역시나 씁쓸이다.
여하튼 본격적인 스토리의 막이 오르기도 전이지만 재미있다. 그리고 토막토막 알고 있었던 도교의 신들이 등장해 활약하는 모습도 재미가 있고. 동양적인 환타지를 쓰려는 사람들은 서유기는 필수로 읽어야 할 듯.
책/픽션
서유기 1
오승은 (지은이),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 연구회 (옮긴이) | 솔출판사 | 2006.11.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