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 다니는 예쁜 누나(강수진에 대해 처음 알려준 친구의 관점. ^^)가 한국에서 은퇴를 했다.
이렇게 내 인생의 한 막도 닫혔다..... 고 쓰면 좀 오버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 오늘 내 심정이 그랬다.
발레를 좋아하던 한 아이가 동경했던 코스를 그대로 밟아나갔던.
로잔 콩쿨 입상 때부터 슈트트가르트 입단과 수석 무용수로 승급, 그리고 오늘까지.
어떤 의미에선 난 강수진을 통해서 내가 못 갔던 길에 대한 대리만족을 했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 길로 못 가는 게 참 슬프고 억울하고 아쉬웠지만 지금은 다행으로 생각을 하긴 한다.
모든 예술이 다 그렇지만 특히 발레라는 게 참 잔인한 예술이라 일단 재능을 떠나 신체부터 신의 특별한 사랑을 받기 전에는 절대 경지에 이를 수가 없다.
아무리 나를 과대 평가해도 신의 특별한 사랑은 고사하고 가벼운 관심이나 좀 받았을 라나?
비교를 하자면 강수진을 비롯한 프리마 발레리나들의 신체는 장인의 한땀 한땀 기워낸 오트쿠뛰르, 나를 포함한 기타 여러분은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 박아낸 양산품. ㅎㅎ
사설이 길었는데 베스메르트노바, 아나니아쉬빌리, 강수진 등에 나를 투영하며 참 많이 행복했었는데 이제 내 마지막 언니가 떠나는구나.
은퇴 공연이니 마지막 날에 뭔가 좀 더 찡한 느낌과 긴장감이 있지 않을까 하고 골랐는데 앞선 공연들을 보지 못 해서 비교는 할 수 없으나 적당한 선택이었던 것 같음.
슈트트가르트 발레단의 군무들이 세련되고 멋지긴 하지만 파리 오페라 발레나 컨디션 괜찮은 날 마린스키나 볼쇼이처럼 입이 떡 벌어지게 각이 딱딱 맞는 군무는 아니었는데 오늘은 "오!오!" 소리가 막 나오는 밸런스와 일관성.
코르 드 발레도 프라마 발레리나의 은퇴라는 사실에 좀 더 긴장감 있는 공연을 하지 않았나 싶다.
렌스키도 그레민 공작도 훌륭했지만 오늘 무대에서 특히 감탄했던 건 올가와 오네긴.
오네긴을 꽤 봤다고 자부하는데 늘 타티아나에 묻혀 존재감이 없었는데 이렇게 확연히 자신을 드러내면서 춤을 잘 추는 올가는 처음인 것 같고, 오네긴은 -나 뿐 아니라 같이 간 동행자들도 동감했는데- 이렇게 재수없고 대놓고 나쁜 놈처럼 보이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음.
동생은 ABT에서 줄리 켄트와 춤췄던 금발머리 오네긴이 더 열 받고 재수없이 보였다고 하지만 난 오늘 본 오네긴이 정말 최악(=최고)로 못 되게 느껴졌다.
오케스트라도 코리안 심포니가 맞나 싶을 정도로 목관과 금관이 안정된 사운드를 들려줬음.
임헌정 선생님이 상임으로 가신 뒤 확 업그레이드 됐다더니 그게 정말인 모양이다.
강수진의 타티아나는... 그냥 이게 마지막이라니 너무 슬프고 아쉽다는 걸로 정리하겠음.
그녀의 지젤을 한 번도 못 본 게 정말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