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메뉴가 롤이었기 때문에 본래 롤과 어울리는 와인을 준비해뒀었는데 어영부영 다들 밥만 열심히 먹는 분위기가 되어 버려서 두 병의 와인은 모두 식후에~
처음 딴 병은 CANDIDATO TEMPRANILLO 2004
스페인 와인이다. 김군이 선물해준 것. 그동안 계속 키핑하고 있다가 오늘 멤버에 김군이 포함된 관계로 개봉.
지금까지 맛봤던 스페인 와인들이 상당히 묵직하고 향이 강한 쪽이라고 식사 후에 마시긴 좀 강하지 않을까 걱정을 살짝 했는데 기우였다.
풍부한 부케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과 달리 맛은 굉장히 가벼운 편에 속한다. 값싸고 밍밍한 가벼움이 아니라 바디의 볼륨이 있으면서도 산뜻한 느낌. 내게 있어 스페인 와인의 재발견이라고 할만 했음.
수다 떠느라 컬러나 다른 부분엔 별로 신경쓰지 못했지만 끝까지 남는 은은한 향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살짝 아쉽다면 아주 약간 새콤한 듯 만듯. 새콤한 와인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차라리 떫은 게 낫지 신 것은 별로라서...
두번째 개봉한 건 JORIO MONTEPULCIANO D'ABRUZZO
줄줄줄 엄청 길게 써진 라벨의 족보들을 대충 챙겨보니 이태리의 오시모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인 모양이다. 오시모 혹은 오지모 아카데미에 유학 가서 공부했던 선후배들이 몇몇 있어 눈에 익은 지역인데 와인 생산지인지는 몰랐었다.
몬타텔푸치아노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오크통에서 11개월을 숙성하고 부드럽고 풍부한 맛과 향을 자랑한다는 설명이 뒷 라벨에 붙어있는데 얘가 부드럽다면 도대체 세상에 부드럽지 않은 포도가 몇 종류나 있을까?
식사가 아니라 가벼운 안주와 마시는 식후술이라 부드럽다는 문구에 끌려 선택했는데 상당히 거친 맛이다. 솔직히 조금은 부담이 갈 정도. 향은 앞서 마신 CANDIDATO TEMPRANILLO에 밀려 별다른 인상이 없었다. 거칠고 야성적인 맛에 압도되어 다른 것은 기억에 없다는 표현이 정확.
고기 요리와 함께 마셨다면 상승 작용을 훌륭하게 했을 테지만 선택 목적과는 별로 부합하지 않았음.
얘도 나의 안목을 넓혀주긴 했음. 이태리 포도도 이렇게 거친 맛을 내는구나...
많이 먹고 마시고, 젊은 남자들의 힘이 필요한 일도 오늘 다 해결하고... (하면서 왜 장어를 먹이나 했다는 투덜거림이 잠시 나왔다. ㅎㅎ;;;;) 보람찬 집들이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