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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울 부친

by choco 2016. 10. 13.

오전에 회의 하나 뛰고 들어와 다음 회의 나가기 전에 잠시 시간이 비는 동안 생산적인(?) 기록 하나.

이건 내 혼자 기억 속에만 남다가 사라지긴 좀 아까운 것 같아서.  ㅎㅎ

아는 사람은 알지만 울 부친은 무척 예민하시다.

그중에서 미각과 후각은 정말 지금 시대에 태어났으면 황교익 씨 류를 다 찜쪄먹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

물론 밥을 해주는 사람의 뚜껑을 확확 열리게 하고 정말 아버지만 아니면 밥상을 엎어버렸을 경우가 왕왕 있기는 하지만...  -_-+++++

수많은 일화들이 있지만 지금 잠깐 근래의 몇가지만 끄적.


1. 대구

지난 겨울인가 올 초인가 여하튼 단골가게에 아저씨가 싱싱한 생대구를 지리용으로 장만해놨다고 추천하길래 한끼 때우려고 사왔다.  (참고로 울 부친은 생선이라고 이름 붙은 것이 냉동실에 들어갔다 나오면 냄새 난다고 안 드심)

잘 끓여서 내놨는데...

부친: 어디 대구냐?

나: 몰라요, 국산이래요.

부친: 대구는 가덕도 대구가 맛있는데.

나: 가덕도 대구는 거기서 먹기도 바쁜데 서울에 올라올 게 어딨어요.

머리 부분을 드시면서 또 한마디

부친: 대구는 왼쪽 볼살이 제일 맛있는데... 

내가 가덕도 내려가서 대구 직접 잡아서 왼쪽 머리 부분만 떼어오기 전에는 못 드려요!!!! 라고 하고 싶었으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참았음.

이날 너무 열받아서 마친 전화온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데굴데굴 미친듯이 굴렀다.

그날 이후 대구지리 안 해드리고 있음.  -_-+++++


2. 가자미와 광어

지난 봄 부친이 동창분들과 함께 단체로 경주로 놀러가셨다.

거기에 나름 유명한, 현지인에게 추천받은 횟집에서 점심을 드시는데 광어회에 가자미가 섞여나왔다(고 하심. 울 부친을 제외하곤 아무도 몰랐고 아마 영영 모르실듯)

기분이 팍 상하셨으나 수십명이 함께 잘 먹고 있는데 그걸로 컴플레인 걸어서 분위기 깰 수 없어서 꾹 참고 드신 뒤 나오시면서 한마디를 던지셨다고.

부친: 광어라고 하면서 가자미를 내놓으면 어쩝니까.

주인: 가자미라니요. 광어에요. 어르신이 뭘 잘못 아시고..

부친: 광어랑 가자미랑 식감이 완전히 다른데 그걸 누가 몰라요. 한번 지나가는 단체손님이라고 그렇게 장사하면 안 되죠.

주인: 죄송합니다. 주방에서 아마 실수로....  깨갱.... 

어떻게 가자미랑 광어를 같이 내놓고 구별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집에 돌아와서도 불을 뿜으셨으나... 솔직히 나도 구별 못 했을 것 같다.  백종원이나 황교익 씨 정도 돼면 구별했을 수도.  

싼 생선을 비싼 생선에 섞어 폭리를 취하려는 주인과 주방장이 분명 나쁜 X이긴 하지만 하필이면 울 부친에게 걸렸을까 안 됐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3. 장어

바다장어와 민물장어...  그냥 소금구이를 해도 잘 모르겠지만 특히 양념을 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난 구별 못 함.

울 부친은 식감과 감칠맛이 다르다고 바닷장어 싫어하심.

정말 구별하는지 괜히 딴지 거는지 테스트 겸 통영에서 싱싱한 바닷장어를 공수해서 아무 말 안 하고 구워서 내놨다.

한입 드시더니.

부친: 이거 어디서 샀냐?

나: 왜요?

부친: 퍽퍽하니... 씹는 맛이 좀 이상하고 맛이 없다.  이상한 걸 보냈나... (투덜투덜)

나: 알았어요. (속으로) 민물장어 주문할게요.  -_-;;;;


4. 열무

여름에 덥고 입맛없을 때 만만한 게 열무김치.

내가 담글 리는 절대 없고 시장에 입맛이 맞는 반찬가게에서 사옴.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됐건만 드실 때마다...

부친: 열무는 콩밭에서 자라 햇볕을 잘 못 받아서 여리여리하게 부드러운 열무로 담궈야 하는데. 요즘 열무는 너무 억세고 맛이 없고.... 블라블라...

이것 역시 내가 콩을 키우며 그 옆에서 열무를 심어 키우지 않는 한 불가능이라 무시 중. 


음식평론가가 딱 천직이었는데... 울 부친은 정말 시대를 잘못 태어났음.

이외에도 몇가지 더 있지만 이제 나갈 시간이라 여기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