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뭔가 찾을 게 있어서 본의 아니게 대청소....까진 아니고 묵은 서류봉투와 파일, 서랍, 책장 등을 열심히 뒤지고 버리고 하다보니 서너시간이 후딱 간다.
매년 연말에 큰 작업 끝나면 나름 정리를 한다고 했는데도 각잡고 털으니 정말 별 게 다 나온다.
그냥 잊고 지나가버리기엔 좀 아쉬운 것들이 많아서 그냥 소소한 기록.
1. 2006년 뽀삐의 약 영수증.
당시 다니면 이태원 동물병원의 영수증인데... 갑상선이 안 좋았던 우리 뽀양은 그때도 매달 165000원어치의 약을 드시고 계셨음. 지금 먹는 약은 오히려 저 약보다 한달치가 싸다.
1살 반 때 갑상선 이상 발견되서 중간에 몇년을 제외하고는 정말 평생을 약과 함께 사는구나. 그래도 돈 아깝단 생각보단 잘 버텨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내가 쟤를 많이 사랑하긴 하나보다.
2. 20프랑짜리 프랑스 지폐.
얘는 도대체 어떻게 그 공책 안에 있었는지 출처도 이유도 모르겠음. 유로 쓰기 전에 나나 내 동생이 프랑스에 갔던 게 20세기이니 아마 그때 둘 중 누군가가 남겨온 거겠지.
요즘 몽테 크리스토 백작 재탕 중인데 그래서 그런지 '프랑'이란 단위가 굉장히 그립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3. 93년부터 97년까지 일기.
나 죽고 누군가 보면 흑역사가 될 것 같아 이거 찾으면 태워버리려고 했는데 막상 찾아내니 이제는 내가 기억도 못 하는 그 시간의 소소한 순간이 버리긴 왠지 아쉽네. 그 오골거림이 그립고... 여하튼 설명할 수 없으나 오늘은 버려지지가 않음.
덥고 바쁘고 기운 없어서 몇장 후루룩 읽다 말았는데 좀 시원해지면 죽 읽어보고 그리고 그때는 정말 세상에서 지워버려야겠다.
4. 제빵 요리책.
한동안 열심히 찾았으나 이제는 빵에 대한 뭔가를 포기한 시점에 뿅~하고 나타나심. 근데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그 아이스크림 요리책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ㅜ.ㅜ
날 좀 시원해지면 이 책 찾은 김에 제빵기 한번 돌려봐야겠다.
금방 오븐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식빵만큼 맛있는 것도 드물지. 거기에 치즈가 듬뿍 들어있으면 더더욱. ^ㅠ^
5. 현상한 필름과 현상도 하지 않은 필름.
어떤 사진일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냥 현상하지 않는 걸로.
6. 주얼리 패턴 책.
정작 내가 필요한 단 한장이 빠졌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너저분하게 널려있던 서류들을 묶고 모으다보니 의외의 수확으로 어마어마한 분량의 파일과 서류봉투들이 생겨났다. 당분간은 팍팍 뿌리면서 써도 문제가 없을듯.
덥다. 샤워하고 일찍 자야겠다. 그래도 오늘은 습도도 좀 덜하고 바람이 살짝 불어서 이 짓을 했지 어제나 그제 같았으면 그냥 포기했을듯.
덧. 아마도 2000년대 초반에 적은 것이지 싶은 파리의 숨은 맛집 추천 메모도 있음. 파리에서 갓 돌아온 유학생에게 받은 정보인데 여러장의 메모 가운데 모로코 음식점 추천이 남아 있었다. 잘 간직해뒀다가 파리에 언젠가 가게 되면 꼭 들러봐야지.
그러나..... 과연 언제쯤 가게 될 것인가. 요즘 런던이랑 파리는 정말 너무나 삭막하고 무서움. ㅠ.ㅠ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20세기가 참 여행 다니기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낯선 언어의 장벽을 제외하고는 인종차별이나 위험도 별로 못 느끼고 외국에 나간다는 게 정말 설레고 즐거웠는데 지금은 솔직히 무서운 곳이 너무나 많다. -_-a